예.
한 마디로 말해서, 이 종교 이야기는 힙합니다.
솔직히 전 종교 이야기를 굉장히 좋아하는 편입니다. 제가 철저한 무교(無敎)임에도 불구하고 교회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솔직히 말해서 중세와 맞닿아 있습니다. 뭐라고 해야 하지…이게 아마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제가 가진 작가로서의 음습함(피머꽃 작가님께 여쭤보십쇼)일텐데, 가장 추악한 곳에서 가장 아름답거나 숭고한 무언가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아름답거나 숭고한 무언가마저도, 결국은 추악한 토양에서 나온,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곤 하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상당히 힙합니다.
작가님의 블로그에 가 봤는데, 의도하신 바가 정확히 먹혀들어가는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한히 내려오는 천사들의 군대는, 예, 2차 세계대전 때부터 인간들의 군세를 이길 수 없었다… 매력적인 설정입니다. 천사들의 피부에 명료하게 조사된 수준의 방탄 레벨을 부여한 것 또한 굉장히 인상깊습니다. 권총탄에는 방호가 되고, PTSD도 겪지 않으며, 어디든 노-딜레이로 나타날 수 있는 천사 군대 VS 현대 과학을 온몸에 두른 근미래 UN군의 대결은 설정부터도 흥미로웠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진정한 가치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딱 거기서 끝난다면 사실, 참신한 아이디어 하나 가지고 승부하려 하는 수없이 많은 썩-괜찮은 소설들과 다를 바가 없겠지요.
작중에도 아마 이 비슷한 표현을 썼던 것 같은데, ‘우리 악독한 하나님’은 정말이지 결국에는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곳곳에 쌓인 천사들의 시체에서 가스가 나오고, 이를 들이마신 이들은 기괴한 모습으로 변하다 죽습니다. 주인공 또한 죽음에서는 예외가 되었지만, 그 기괴한 모습에서는 예외가 되지 못했죠.
그 고농축의 천사-가스를 들이마시고도 죽지 않은 선택받은-인간들은 다만 한 가지의 제약을 가집니다. 흥미롭게도, 인간들의 영혼에 임플란트처럼 스스로를 삽입하고, 자신의 강력한 힘과 권능을 나누어준 체, 주도권을 내주어야만 한다는 거죠. 저는 여기서 두 가지 심상을 떠올렸습니다. 하나는 C. S. 루이스 작가가 쓴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이고, 나머지 하나는 영화 ‘겟 아웃(Get Out)’입니다.
그거 아십니까? 작중에 묘사된, ‘천사-가스를 들이마시고 살아남은 선택받은-인간들’의 모습은 악마와 하등 다를 바가 없습니다. 사실 그 검고 끈적거리는 입에서, 저는 묘사 자체에도 감탄했습니다. 그들은 인간들에게 기생해서만 살아남을 수 있죠. 영화 겟 아웃에 나오는 그…무슨 방이라고 하죠? 몸의 원래 주인이 갇혀 있는 정신의 방? 그것과도 비슷한 기분일 것 같습니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 왜 인용했느냐고요? 작가의 가장 독특한 상상력과 엄밀한 교회 교리가 함께 뒤섞인 훌륭한 종교 문학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두면 이 이야기는 굉장히 서구적이고-기독교적인 이야깁니다. 하지만 배경이 한국이에요! 강동스피드군단? 폭주족 클럽 이름인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은 네이밍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빨간 마스크’라는 이명을 지닌 여성 라이더에 대한 지극히-20대-한국-남자-스러운 괴담은, 순식간에 이 이야기를 재앙 직후의 한국으로 끌고들어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한순간에 더없이 한국적인 반종교 아포칼립스 소설로 후딱 변신했습니다.
앞서 말했듯 , 저 또한 교회의 몰락이라던가, 신의 재앙이라던가, 이런 소재의 글을 제법 쓰는 편이고, 또 그런 소재의 장편소설을 마침 계약한 편입니다. 하지만 중세의 추악함에 집중한 저와는 달리, 이 작품의 작가는 근미래의 추악함에 집중했습니다. 그 와중에 신앙을 잃지 않은 ‘바보같은’ 수녀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요. 역시 종교 이야기에는, 그게 어떤 갈래든, 무슨 이유에서든, 신념을 가진 캐릭터가 한 명 쯤은 있어야 맛이 아니겠습니까? 그 수녀가 옳았든, 글렀든, 훌륭한 이야기의 향신료임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래서 작가님, 이거 100화 이상 써 주실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