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글은 바쁜 일을 마치고 습관처럼 켠 브릿G 중단편을 훑다가 ‘학살사건’이라는 단어만 보고 ‘음 고어 향이 물씬 풍기는 정통 호러인가’ 하고 펼쳐 본 작품입니다.
안 해도 될 이야기를 굳이 해 놓는 것은 제가 ‘일반’이라는 카테고리에 들어있는 작품들을 많이 읽지도 않고 솔직히 작품에 대한 리뷰를 남기는 것 자체가 작가님께 실례가 아닌가 하는 고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만, 그래도 제가 글을 쓰는 목적은 추천이기 때문에 부족한 글을 남겨볼까 합니다.
나방 파리에 대해서는 저를 비롯해서 몰랐던 분들이 많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직장의 화장실에서 지겹도록 보는 녀석인데 이름을 알아 볼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습니다.(직장 동료분들중엔 ‘구더기나방’, 똥벌레(…)등으로 부르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본문에도 나와 있지만 보통 화장실에 많이 살고 밖에서도 흔히 지저분하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많이 발견되는 벌레입니다.
글의 화자인 ‘나’는 타지에서 혼자 생활하는 직장인인데 혼자 사는 방에서 나방 파리를 발견하지만 특별한 조치를 취하진 않습니다. 방충망을 열어주거나 하는 행동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소극적인 대처라고 할 수 있지요.
그는 직장에서 ‘주변인’에 가까운 존재입니다. 익숙해진 자신의 일을 하는 게 편하고 주변과 깊은 관계를 맺기 싫어하고, 아마도 요즘 직장인 대부분이 같은 생각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변인보다는 ‘평범한 직장인’이 더 바른 표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야말로 평범한 직장인인 ‘나’가 원치 않던 프로젝트 참가와 동기의 이적과 같은 일련의 사건들을 작품에서는 한 편의 에세이처럼 잔잔하게 그려가는데 그래서인지 후반부의 나방 파리 학살이 더욱 강렬한 장면으로 인상깊게 남습니다.
흔히들 말없고 차분한 사람이 화가 나면 더 무섭다고들 하지요. ‘나’는 직장에서 벌어졌던 사건들로 인해 쌓여왔던 스트레스와 화를 분출하는 대상으로 굳이 찾지 않으면 발견하기도 힘든 나방 파리를 택하게 됩니다.
‘겨우’ 나방 파리를 말이죠. 그가 나방 파리의 무엇에 그리 분노하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저분한 곳에 별 의미도 없이 항상 붙어있는 모습이 아무런 열정도 꿈도 없이 회사를 다니는 자신의 모습에 투영된 것일까요? 나방 파리는 모기처럼 사람을 보고 재빠르게 도망을 치는 생존 본능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물을 뿌리면 그저 물을 맞고 손바닥으로 치면 맞아 죽을 뿐이죠. 그런데 또 잘 죽지는 않습니다. 짜증이 날 만도 하네요.
타의에 의해 흘러가는 자신의 삶에 대한 마지막 저항이 ‘나’의 퇴사라고 한다면 그가 처음에 나방 파리들이 나갈 수 있도록 방충망을 열어주는 장면이 일견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결국 ‘나’는 스스로 세상으로 나갈 수 있도록 방충망을 열어준 게 아닐까 싶은데 그게 해피 엔딩일 지는 모르겠습니다.
상관은 없겠죠. 힘이 들면 또 어딘가에 붙어 있으면 됩니다. 저도 그렇고 다들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요.
분명 제 스타일은 아닌데 이상하게 끝까지 읽게 된 독특한 작품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하자면 ‘제 일상을 함부로 들여다보지 마시죠.’라 해야 할까요?
소품 같은 일상을 멋부림 없이 수묵화처럼 적어주셨는데 글에 묘한 재미가 있네요.
호러, 스릴러만 찾아다니지 말고 가끔은 이런 이야기들도 찾아봐야겠다는 좋은 가르침을 준 재미있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가끔 울컥합니다. 지하철에서 운 경험도 있어서 뜨끔하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만, 이 작품을 읽고 나니 울컥할 때 숨 쉴 수 있도록 방충망을 열어주는 누군가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살아있는 게 아닌가 하는 마냥 고마운 마음이 드네요.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또 보내야겠습니다. 좋은 글을 써 주신 작가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