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언젠가 EBS에서 본 다큐 실험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사람 셋이 길가에서 뭔일이 있는 것처럼 하늘을 높이 올려다보거나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으면, 주변의 행인 역시 덩달아 위쪽을 두리번거리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고 보면, 트위터에서 유명한 우스갯소리 중에는 ‘3명이면 메이저’라는 말도 있다. 스컬리와 멀더는 저 너머의 진실을 좇는 데 수십 년을 바쳤지만,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여갈수록 내 안에 확고해지는 믿음은 ‘인간은 진실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거였다. 홀로코스트나 일본군의 성노예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을 때면 기가 차지만, 막상 그들의 주장을 직접 마주하게 되면 중요한 건 옳고그름이 아니라 그저 이 싸움에서 당장 이기는 일이라는 생각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
여기, 또 하나의 싸움을 시작한 인물 효신이 있다. 배우자에게 목을 졸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반격으로 내리친 물병 때문에 그의 배우자 재우가 사망한다(당시의 정황이 아직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으므로 일단은 남편1은 이미 죽었고, 남편2는 아예 다른 인물인 걸로 가정하겠다). 대한민국 법체계에서 효신의 정당방위가 온전한 보호를 받으리란 기대는 하지 않지만, 그동안 미드 등을 통해 어쭙잖게 쌓은 지식을 동원해 유추해 보자면 본격적인 문제는 이 다음부터다. 사망한 배우자의 사체를 유기하고 시멘트로 묻어 은폐한 행위의 고의성.
물론 현실 세계에서의 처벌 방식을 따져보자면야 그렇다는 말이지, 이건 어디까지나 픽션이니까 독자들의 생각은 더 넓게 더 멀리 뻗어가도 좋다. 효신이 알고 있는 건 이미 재우가 자신의 손에 사망했다는 명백한 진실이다. 극중에서 이 진실을 아는 건 효신과 필주 두 사람뿐이다. 허나 별안간 돌아온 재우2는 사건 현장을 전혀 목격하지 못한 이들을 통해 자신의 신원을 확인받는다. 재우2의 등판으로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될 이 싸움의 최종 승자가 누가 될는지 절로 궁금해지게 만드는 흥미진진한 전개로 술술 읽히는 작품이다. 비유를 하자면, 극중 김재우는 죽었지만 죽지 않은 존재인 것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그리고 그 죽음, 혹은 죽지 않음의 서사를 더 치밀하게 논리적으로 구성하는 쪽이 이 이야기의 주인이자 승자가 될 것이다.
이 작품을 재밌게 읽은 분들께는 기리오 나쓰오의 《아임 소리 마마》, 넷플릭스 <데드투미> 같은 작품도 함께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