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이지 않은 동기 읽기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동기 (작가: JIS, 작품정보)
리뷰어: 글 쓰는 빗물, 9월 22일, 조회 32

<동기>는 살인이라는 중범죄를 저지른 여성이 범행에 이르기까지의 심리를 그린다. 주인공은 남편의 실직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축적된 상태에서,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무더위에 두 시간이 걸리는 먼 길을 도보로 걸어가며 분노와 수치심을 쌓아간다. 그리고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마지막 희망을 상실한 채 편의점으로 향한다. 거기서 여자는 자신과 달리 깔끔하게 치장한 아르바이트생을 마주한다. 아르바이트생은 자신을 훑어보고는 물건을 한참 고르는 손님이 못마땅하다.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건다. 대답이 없자 기분이 상한 그는 돌아서며 중얼댄다. ‘별 이상한 아줌마네, 엉망진창인 주제에.’ 그 말은 여자가 마지막으로 붙들던 이성을 놓고 두 건의 살인을 하게 하는 촉발요인이 된다. 이 비극을 막을 방법은 정녕 없었을까.

 

1) 수치심과 분노

수치심과 분노는 사람이 경험하는 강렬한 부정적 감정의 대표격이다. 주인공의 가정사가 불러일으킨 분노와, 어려워진 경제 사정 때문에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마땅한 길을 걸으며 경험하는 수치심은 그가 가진 감정조절의 임계치를 아슬아슬하게 건드린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발언은 그 분노와 수치심을 극대화하고, 여자는 그를 살해한다. 이로써 주인공은 오래 축적해온 자신의 분노와 수치심을, 실상 그와 무관한 대상에게 옮겨 쏟아낸다.

 

주인공은 남편에 대해 애증의 마음을 갖고 있다. 모든 것이 남편의 탓 같고, 게으른 남편이 한심하면서도 좋아하는 고기를 잘 먹지 못하게 된 남편에게 고기를 사주고 싶다. 그래서 버스비를 아껴가며 한참을 걸어 대학교로 향한다. 정황상, 일자리를 구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체포되기 직전, 여자는 남편에게 문자를 남긴다. ‘정육점에 가 고기를 사서 아이와 나눠먹으라’고. 그 고기가 무엇이기에. 고기나 바깥 음식을 먹는 횟수의 감소는 주인공 가족이 잃은 과거를 상징하는 듯 해 마음을 괴롭혔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잃더라도, 주인공의 삶과 가정을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았을까. 땡볕을 걷는 내 옆으로 차를 탄 사람들이 지나가도, 그 시선보다 중요한 것은 주인공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것 아니었을까. 그래서 독자는 주인공이 이해 가면서도 안타깝다.

 

2) 마지막을 잃고도 나를 지키는 법

사람은 언제 가장 극적으로 무너지는가? 희망이 없을 때가 아니다. 희망을 가졌다가, 그 마지막 희망이 파괴될 때. 희망으로 부풀었던 기대감이 훼손되며 실망이 밀려오면, 그 낙차에서 오는 분노와 좌절은 겉잡을 수 없다.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통해, 홀로코스트에서 생존확률이 높았던 이들은 누구였는가를 말한다. 어떠한 계기만 생기면 상황이 나아질 거라 막연히 희망을 품었던 이들은 그 희망이 좌절됐을 때 견디지 못하고 망가지거나 죽었다고 한다. 반면 상황이 좋아지지 않을 확률이 높음을 직시하고, 그 가운데서도 스스로 존엄을 지키려 한 이들은 끝까지 자신을 지켰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 길 끝에 내가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면, 버스를 타고 편히 집에 가서 고기를 먹을 수 있을 거야. 이 희망이 무너졌을 때 주인공의 심정이 얼마나 비참했을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객관적으로 힘든 상황에 처한 주인공을 마냥 탓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러 자신과 남의 존엄을 해친 순간, 그는 발언권을 잃는다. 주인공이 해결하지 못한 분노와 수치심에 휘말리기를 넘어, 그리고 근거 없는 희망을 넘어자신이 지키고 싶은 것을 우위에 두었다면 살해 동기가 아닌 다른 것을 발언할 수 있었을 터다. 독자는 소설을 읽으며 나와 닮은 주인공의 심리에 연민하고 공감한다. 그리고, 결코 따르고 싶지 않은 주인공의 행동을 보며 다른 길을 상상해본다. 그렇게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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