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단골 서점이 있다. 그들에게는 적어도, 자신이 책을 좋아하는 데에 이유가 되어준 공간이 있으며, 지금은 뭐든지 최고라는 의미로 ‘인생’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시대이기에, 우리는 그곳을 ‘인생서점’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런 곳은 어떨까. 누구의 인생에도 개입하지 않으려는 듯, 은행나무 아래에 자리 잡은 책방. 영업시간이 아님에도 ‘허가받지 못한’ 모임이 이루어지는 비밀스러운 서점 말이다.
어쩐지 그 모임의 구성원들은 낯빛이 어두워 보인다.
사람이 아니므로.
허가되지 않은 것 1 – 인생
<인생서점>은 <만회반점> 이후 두 번째로 읽은 서계수 작가의 작품이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무섭지 않은 순간이 없었고, 웃지 않은 구절이 없으며, 깨닫지 못한 생각이 없었다. 네 글자로 이름 붙인 두 개의 소설에서 나는 셀 수 없는 감정과 여운을 느꼈다. 그래서 결국 또, 이렇게 눈물을 찔끔 흘리며,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놀리고 있다. 중국음식점이든, 서점이든 내가 몹시 좋아하는 곳이니까.
서점은 독특한 장소성을 지니는 공간이다. 다양한 경험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곳이며, 이쪽 세상과 저쪽 세상의 소통구이기도 하다.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서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비 오는 날 우산이 필요하다는 황당한 이유로도 우리는 영업시간이 아닌 서점의 문을 열어볼 수 있다. 땡그랑,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문을 젖히고 들어가면 종이냄새와 함께 서점 특유의 포근함이 훅 밀려온다. 보이지 않는 목소리가 인사를 한다. 사람이 아닌 것이 사람의 얼굴을 하고 우리를 맞는다.
잠깐. 뭔가 이상하지 않았는가. 이 서점은 영업시간이 지났는데 왜 문이 열리는 걸까. 그리고 왜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는 걸까. 어딘지 텅 빈 표정을 한 이들이 빙 둘러앉은 것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그림자처럼 어두운 존재가 하나 있다는 것도, 이름이 괴상한 한자의 조합이라는 것도. 보통의 상황은 아니다. 이들이 귀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조금 무섭겠지만, 그 내막을 듣고 나면 약간 측은하다. ‘인간으로서 허락되지 않은 존재들’이 서점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모습은 온전한 자신들의 공간을 지키기 위한 투쟁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귀신이라도, 영험한 존재가 아닌가. 그들은 왜 다 끝난 서점으로 숨어들어야 했을까. 왜 인간의 눈을 피해 무허가의 독서회를 가져야 했을까. 은행나무 그림자와 귀신의 모습이기에 인간의 삶에 편입되지 못했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 ‘청목영’이라 불린 은행나무 그림자에게서 인물 각각이 지닌 이면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
청목영은 서자 출신으로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한다. 그는 살아있을 때 일반의 사람들과 (당시의 신분제 사회를 감안 했을 때) 다른 위치에 존재했고, 죽은 이후에도 ‘인간’이 아닌 ‘은행나무’의 몸을 빌려야만 살아갈 수 있었다. 그에게 ‘인간’으로서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짧았고, 게다가 사후에도 한 존재로서 지위를 온전히 인정받지 못했다. 그의 부하라고 불리는 다른 영혼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이들이 모여, 소박하게 책을 나누는 독서 모임을 생각해보자. 단지 “쾌적한 한데 둘러앉아” 책을 나누는 것이 소원이었던 그들의 마음을 상상해 보자. 이제는 조금, 그들이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가. 영혼과 그림자가 아닌, 개개의 인간으로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가.
허가되지 않은 것 2 – 장소
이들에게 허가되지 않은 것 중 다른 한 가지는 바로 ‘장소’다.
서점은 독특한 장소성을 가진다. 여러 특징을 들어 그 공간을 설명할 수 있겠지만, ‘둘 이상의 세계를 연결하는 접점’에 서점이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서점은 독자와 책을 이어준다. 이쪽과 저쪽을 접합시킨다. 느슨하고 때로는 팽팽하게 이어지는 여러 세계의 고리들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매만졌던 기억이 혹자에게는 존재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인생서점’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서점은 ‘영업 중’이어야 한다. 하지만 소설 속 인생서점은 ‘영업종료’를 외친 상태다. 누구도 그 안에서 책을 읽을 수 없으며, 문이 열려 있어서도 안 된다.
“지역 모임을 위한 장소를 찾는 분들을 환영합니다.”
지역 모임을 위한 장소를 찾는 이들에 보통 ‘귀신’은 포함되지 않는다. 당당하게 문을 젖히고 들어온 귀신이 ‘독서회를 위한 장소를 좀 제공해 주시오’라고 말한다면, 그 말을 맺기도 전에 서점 안 사람들의 절반은 몸과 혼이 분리될 것이다. 그것을 잘 알고 있었던 청목영과 부하들은 어쩔 수 없이 밤을 택한다. 낮에는 사람을 위한 공간이었던 서점에 잠입한 귀신들은 그들만의 독서회를 조직한다. 한동안 서점은 낮에 인간들의 장소로, 밤에 귀신들의 공간으로 기능한다.
이 ‘영업종료’의 경계에서도 신기한 방법으로 세계는 결국 연결된다. 21세기 대한민국과 조선시대의 영혼이 손을 맞잡는 전개, 그리고 결말은 잠시 이 작품이 ‘호러’의 계열에 서 있다는 것도 잊을 정도로, 퍽 따뜻하게 느껴진다. 일생을 허가받지 못한 사람과 그저 비 오는 날, 우산만 있었으면 좋겠는 사람의 만남은 평범한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완결되지 않은 만남은 그것대로 어긋남의 매력이 있다.
말에 있어서 중도를 지켜야 했던 주인공과 사람에게 지독한 배신을 경험한 은행나무 그림자, 살아있는 존재의 생기를 맡으면 사정없이 죽이려 드는 죽은 자들. 이토록 어울리지 않을 것들이 만나 이어질 수 있는 통로가 서점이라면, 그곳은 ‘인생서점’이라고 불릴 자격이 충분하지 않은가.
허가되지 않은 것 3 – 시간
마지막으로 이 모임에 허가되지 않은 한 가지는 ‘시간’이다.
서점이 문을 닫은 시간에 비밀스럽게 이루어지는 독서회를 해산시키기 위해, 감시읍은 서점 주인의 시간을 돈으로 산다. 시간을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다는 말이 조금 우습긴 하지만(인간은 자신들이 시간을 사고팔 수 있는 존재들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무튼 시가의 두 배 금액으로 구매한 시간은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허가받지 못한 이들의 모임은, 허가를 내리는 주체가 등장할 때 비로소 위기를 맞는다. 감시읍은 자신이 청목영에 대해 추리했던 내용을 털어놓으며 그것이 어느 정도 사실이었음을 확인한다.
청목영은 마지막 모임을 끝내며 이렇게 말한다.
“나무들의 죽음, 나무들의 인생. 그게 책이고, 책을 사고파는 곳이 서점이지. 그래서 이 서점의 이름은 썩 마음에 들더군. 사람의 삶은 인생, 나무들의 삶은 책이 되어 머무르는 곳. 낮에는 인생들이, 밤에는 귀신들이 독서회를 하는 곳이라···”
인간의 삶과 나무들의 죽음이 공존하는 곳이 서점이다. 나무의 죽음으로 만들어진 책에서 또다른 이의 삶을 읽는 곳이 서점이다. 그러나, 책 속에는 나무의 삶 역시 얇게 저며져 존재한다. 인간의 삶뿐 아니라 나무의 생애 역시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서점이다. 어쩌면, 서점 안에서 보내는 시간만은 인간 이상의 존재들에게도 허락되는 것인지 모른다. 그랬기에 사람 이외의 존재들이 서점에 마음을 두는 따뜻한 소설이 탄생한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부터 서점에서 다른 이들의 생을 읽는 데에 좀 더 힘을 쏟기로 한다. 종이에 새겨진 활자로서의 감각이 아니라, 서점에 숨어들어온 존재들을 손가락으로, 생각으로 짐작하고 싶다. 모두에게 공평한 시간을 타인에게 힘껏 허락하는 사람이 되리라.
그러다 어쩌면 나도, 이 세계에 온전히 허가받지 못한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수 있으리니.
허가받지 못한 영혼들은 오늘도 구천을 떠돈다. 우리는 그 존재들과 간혹 몸을 부대끼고 있을지 모른다. 살아있든, 죽어있든, 모든 존재는 어긋남의 무수한 경계 위에 서 있다. 파울리라는 사람은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세상을 이루고 있는 어떤 작은 입자가 도무지 다른 것과 같은 상태에 존재할 수 없다는 주장을 했다. 그러므로 세상은 모든 어긋난 입자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졌노라고, 힘써 주장해보려고 한다. 나와 다른 궤도에서 돌고 있는 인생들이 겹겹이 쌓인 것이 아마 세상이고 우주이지 않을까. 누구에게나 허가되지 않은 것이 있으며, 누구도 타인의 무엇을 제한할 권리가 없다. 그러니 우리 마음을 조금은 편하게 먹어도 되겠다. 귀신을 보게 되더라도. 우리도 그들과 크게 다를 바 없을 테니.
서점은 나에게 각별한 곳이다. 지난 시간 동안 책을 좋아했고, 앞으로도 별다른 이유 없이 나는 책을 좋아할 것이다. 마음의 한구석에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이 보관된 공간이 있다면 나는 그것에 ‘서점’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문앞에 은행나무를 심어야겠다. 아. 그리고 이런 팻말을 붙이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24시간 영업 중, 나도 모르게 세상과 어긋난 어떤 존재라도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