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으면서 내내 이 작품이 떠올랐어요.
많은 분이 리뷰에서 소설의 재미와 별개로 어떤 ‘우려’를 표현했었죠. 그 우려가 구체화한 것이 44712의 주인공의 행위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정의에 취해 익명성 뒤에 숨어서 휘두르는 폭력. 결과는 다르지만, 이 두 작품을 관통하는 큰 줄기라고 생각해요. 정의의 일격을 읽으면서도 이게 이래도… 되나? 하는 우려를 하게 되죠. 왜냐하면 그게 현실에서 휘둘러지는 순간들은 보통은 44712와 크게 다르지 않을테니까요.
44712로 돌아와서 굉장히 혐오스럽고 끔찍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리고 너무나도 실제로 있을 법하다는 것도. 자기가 하는 게 나쁜 짓이라는 자각보다는 자기가 옳고 상대가 몰락하는 것이 옳다는 그런 질투심이 생생하게 느껴졌어요.
이정도면 단문으로 남겨도 되는데 굳이 길게 리뷰를 쓰는 이유는 목표가 호러라는 말을 들어서에요.
무서운가? 생각해 봤어요. 역시 혐오스럽단 생각만 들더라고요. 이렇게 표현하는 게 맞나 싶은데, 어떤 정신적 고어물을 보는 그런 느낌이에요. 물론 이게 고어물이라고 주장하고 싶은건 아니에요. 그저 이런 내면묘사를 보는 게 고어물을 보는 거 같단 기분이라는 것인데, 조금 비약일까요.
개인적인 이론이지만 호러라는건 어떤 내 상식 속에서 상상력의 메아리가 칠 때, 그때 오싹함이 올라온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건 비교적 깔끔하게 끝나지 않았나 하는 그런 기분이 드네요. 그러니까 메아리칠 여지가 없어 보여요.
어떤 박제된 벌레의 해부표본을 보는 느낌이에요. 포르말린 통에 들어간, 단단히 밀봉된. 집에서 벌레를 잡느라 짓뭉갰다면 좀 끔찍한 기분이 들 거에요. 혐오스럽고 징그럽겠죠. 하지만 그 벌레를 놓치면 그때부터는 두려울 거에요. 자는 동안 벌레가 내 몸을 기어 다니는 게 아닐까? 내 몸이 아니라 입으로…? 하는 그런 상상의 메아리 때문에 으스스함을 느끼겠죠.
그렇지만 이건 이미 짓뭉개진 벌레를 보는 느낌이에요. 끝에 다리를 조금 떠나? 싶지만, 그래도 이걸로 끝났단 생각이 드네요.
다만 그런 생각도 들어요. 끝마무리가 깔끔한 게 아니라, 깔끔하다고 느끼는 게 아닐까. 어떤 사람은 박제된 벌레의 해부표본만 봐도 끔찍한 게 아니라 두려움을 느끼잖아요? 그렇듯 저런 끈질긴 스토커가 붙은 사람에겐 다른 기분이 들지 않을까.
실제로 마지막에 단념했다는 표현은 없으니까요. 그러나 저에게 그런 경험은 없고, 그래서인지 그냥 무섭진 않고 그저 혐오스럽기만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