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쓰인 리뷰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제각각으로 생겼다. 쌍둥이마저도 지문은 다르다 한다. 하물며 생각하는 것은 그 얼마나 다를 것인가.
경비 할아버지가 우산도 없이 빗속을 헤치고 영선의 손에 쥐여준 떨어진 리본 장식은 샛노랗게 빛났다. 손녀딸 같은 주인공-영선-이 행여나 떨어뜨리고 나서 찾지나 않을까, 애타하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굵은 주름살 속에 폭 안기었던 작은 노란 리본은 한동안 그녀를 그 자리에 서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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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선의 어머니는 ‘어떤’ 집회든 ‘그런 곳’,’이상한 데’라 표현하며 가지 말라 만류한다. 영선은 ‘그런 곳’에 가지 말라는 어머니의 전화를 ‘그런 곳’에서 받아 안심시킨다. 묘한 아이러니다.
-영선 어머니의 노란 리본은 ‘안정된 삶’이다.
영선의 할머니는 대통령이 파면되는 시국에도, 대통령의 불행한 과거사에 대한 방송을 즐겨 본다. 사실 단지 굴곡진 삶을 가졌다는 이유로 그의 치부를 덮으려 시도하는 방송이라 말하는 것이 정확하겠지만. 영선은 그녀를 보고서, 문득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결심한다. 촛불 집회에 나가려 예약한다.
-영선 할머니의 노란 리본은 ‘연민의 대상인 대통령을 괴롭히지 않는 국가’이다.
집회에 나가는 날 아침에, 영선은 엄마에게서 경비 할아버지가 그녀의 칭찬을 하더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인사라도 할까 싶어 괜히 경비실 근처를 지나가지만, 다른 할아버지가 앉아계실 뿐이다. 그녀는 아쉬움을 느낀다.
그녀는 촛불 집회에 나가서는, 십 년 회사생활을 등떠밀리다시피 마치게 되었을 때 미처 받지 못했던 위로를 받는다.
– 영선의 노란 리본은 ‘민주적인 국가, 자유로움, 격려, 위로’ 이다.
아침에 어딜 가셨는지 보이질 않았던 경비 할아버지를, 영선은 집회 현장에서 만나게 된다. 대통령 옹호 측 집회의 적극적인 참여자로. 그리고 그는 경찰 버스의 차벽을 격렬하게 흔들다 넘어진 차량에 다리가 깔린다. 영선은 힘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노인을 발견한다. 주변 사람은 경멸의 어조로 수군대지만, 영선은 어쩐지 목구멍이 막혀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그의 보호자를 자처한다.
– 경비 할아버지의 노란 리본은 ‘대통령을 끌어내리지 않는 국가’ 이다.
이 작품이 더 와닿는 것은, 이 모든 노란 리본들이 너무도 평범하기 때문일 것이다. 주변에 하나쯤 존재할 인간상. 우리는 그 어느 것에서도 완벽하게 벗어나지는 못한다.
평범함 속에 산다.
신념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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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각자의 노란 리본을 가지고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