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선호 사상이 만들어낸 끔찍한 비극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환상괴담 단편선 : 귀한 딸 (작가: 환상괴담, 작품정보)
리뷰어: 이사금, 8월 24일, 조회 65

소설의 제목은 ‘귀한 딸’이지만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어린 딸들은 결코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말하자면 소설의 제목은 소설 속 딸들이 처한 상황을 부각시키는 일종의 반어법이지요. 극도로 불행한 상황을 극도로 행복한 상황으로 비유한다면 사람들은 거기서 아이러니와 함께 굉장히 참담하고 슬픈 심경을 느끼게 될 거예요.

소설 속의 시점은 핍박 속에서 살아남은 딸 하나가 장성한 이후 과거의 사건을 회상하는 시점을 취하고 있으므로 지금보다는 수십 년 전이라고 파악이 됩니다. 지금은 예전보다 덜해졌을지 모르지만 남아선호 사상은 아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아직 보수적인 집안엔 일부 남아있어 부부나 집안끼리 불화를 일으키고 이혼 사유가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네요.

과거에는 유교적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었고 지금보다 아들을 중시하는 집안이 많았기에, 결혼을 한 여성이 아들을 낳지 못할 경우 구박을 받거나 쫓겨나는 경우도 있었고 딸들이 학대를 당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있었다고 하니까요. 그래서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학대 상황은 단순 허구의 것이라고 넘어가기보단 현실에 있을 법한 사건이 어느 정도 허구가 가미되어 그려진 것 같아 그 현실적인 색채에 암울함을 느끼게 됩니다. 시점이 과거의 것이긴 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저런 상처와 트라우마를 품고 살아가고 있을 테니까요.

어쩌면 저런 식으로 반항도 하지 못할 어린 아이에게 화풀이하듯 폭력을 가하고도 시골이라서, 범죄라고 생각 안해서, 다들 그런다고 여겨 신고도 안하고 넘어가 버린 케이스도 없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어 으스스해지는 구석도 있습니다. 어쩌면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과 유사한 분위기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영화는 아직 다른 사람들을 통해 줄거리만 접하고 직접 볼 용기는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같은 범죄라 하더라도 그 대상이 저항을 하지 못하는 약자라고 한다면 그 참상을 지켜보는 상황은 분노를 넘어서 끔찍하고 참담하다고 느껴지기 마련이며 그래서 사람들은 아동학대와 같은 범죄에 더 분노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갓 태어난 동생이 할아버지 손에 살해당하는 장면은 가해자(할아버지)의 가책없는 태도 때문에 그 어떤 장면보다 끔찍한 장면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거기다 그런 학대와 살인 자체를 과거 구시대적 사상으로 합리화하고 있으니 보고 있는 독자 입장에서조자 가해자에게 살의를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사회적인 약자, 저항도 못하는 갓난 아기를 살해하는 태도는 단순 시대적인 한계 때문이 아니라 그냥 인간이 글러먹어서 저렇다는 소리 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 막판에 미쳐서 비참하게 죽는 것은 자업자득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솔직하게 말해서 저런 인간은 좀 더 대가를 치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니.

그리고 만약 현실에 저런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면 원혼의 복수는 커녕 어린 아이와 어머니의 죽음은 그대로 묻혔을 것이며 과연 가해자가 제대로 된 죄값을 치렀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소설 속에서 원혼들이 복수를 하는 것은 그나마 사이다였기도 했습니다. 문득 공포 장르 속에서 등장하는 공포의 대상은 필연적으로 원한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그 사회 속에서 버림받거나 핍박받은 대상인 경우가 많으며 공포물 자체는 그런 존재들의 원한을 다른 방향으로 달래며 해소하고 사회가 갖는 죄의식을 동시에 그리는 것이라는 평을 본 적이 있는데 이 ‘귀한 딸’은 그에 해당하는 작품이라고 여겨집니다.

예전에 일본의 원로 공포만화가의 인터뷰에서 공포물은 사회적인 약자의 고통을 다루기 때문에 매우 휴머니즘적인 장르라는 이야기를 본 기억이 있는데 아마 그 인터뷰가 저런 의도에서 나온 거 같습니다.

소설 마지막에서 살아남은 딸들은 어린 동생의 원혼에 홀려 할아버지가 미친 것을 그래도 가엾게 여기지만은, 살아남은 딸들이 이런 선택을 했던 것은 죽은 동생이 덜 가엾어서가 아니라 구시대적 사상에 미쳐서 살아있는 사람을 해코지하는 할아버지 같은 인간과 다른 길을 갈 수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장치였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현실에 저런 집안이 있고 여기 등장하는 딸들이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면 저런 영감탱이 따위 그냥 비참하게 죽게냅두라고 할 것 같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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