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극히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이 눈깔, 이 눈깔! 설렁탕을 사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현진건 작가의 「운수 좋은 날」. 하루 종일 불안감과 싸우다 설렁탕을 들고 집에 들어간 김첨지가 오열하는 장면이다. 안개처럼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불안. 그와 직면하는 순간을 두려워하여 하루 종일 집에 들어가질 않았던 김첨지가 떠오르는 것은 비단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이 작품에서 쥐로 대변되는, 삶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마주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피하려는 달국씨의 삶은 애처로워보이기까지 하다.
술과 두부김치, 그리고 신선놀음이 있는데 왜 행복하질 못하니! 실은 마음 깊은 곳엔 자조하는 달국 씨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작가는 영리하게 풀어낸다. 다리를 쓰지 못하니 노가다에도 나가지 못해 신선놀음을 할 수 밖엔 없고, 그런 현실이 매서워 소주가, 속을 아리게 하는 술에는 두부김치가 필요하다.
조촐한 주안상을 차려준 작가는 이제 달국씨에게 현실을 외면한 억지 행복을 주입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펑, 터트린다. 무엇을? 쥐를.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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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꾹, 딸꾹. 오토바이 사고로 다리를 다친 뒤 방향을 잃고 술에 절어 사는 박 달국씨의 딸꾹질 소리다. 매일 흰자를 내보이는 마누라가 긁는 바가지와, 딸이 자신을 한심하게 생각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함께 사는 그다. 그리고 그의 인생을 괴롭히는 하나의 불청객, 쥐.
공사판에 딸린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고, 게을러 터져서 매일 술만 먹는 남편에 대해 여기저기서 욕을 하는 마누라. 그녀가 유일하게 바들바들 떨며 달국씨에게 달려오는 때가 있다. 바로 부엌에 나타난 쥐를 잡아달라는 부탁을 할 때인 것이다. 달국씨는 겨우 쥐 한 마리 가지고! 라며 허세를 부리지만, 실은 그가 가장 징그러워 하는 것이 쥐다.
얼큰하게 올라오는 술, 찍찍대는 -무섭고, 소름끼치고, 징글징글해 징그러운-쥐, 그리고 달국 씨의 자조가 섞여 상황은 호러로 치닫는다.
찍찍, 병신.
찍찍, 병신 같은 낙오자.
찍찍, 패배자.
어릴 적 딸아이와 정답게 놀아주던 달국씨는 이제 코가 빨개져 딸꾹대는 사람에 지나지 않게 되고, 영미에게 아빠는 더 이상 전처럼 달려가 안기기엔 무서운 사람이 되어 버린 이 상황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이 작품은 술을 벗삼아 “나는야 행복하다, 나는야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박 달국씨의 속사정을 여지없이 꼬집어낸다. 사실은 병신인거야, 사실은 낙오자에 패배자인거지. 사실은 병신같은 낙오자에 지나지 않아, 라고 생각하는 자기 자신을 이기지 못해 술을 들이켜는 불행한 가장. 그게 박 달국씨의 적나라한 모습인 것이다.
달국 씨는 기어이 쥐를 잡아낸다. 그래, 요리조리 도망다니는 마음 깊은 곳의 달국 씨를 잡고 싶었던 게다. 온 사방이 어질러지고 피가 다 튀도록 쥐를 잡아 족쳐도 귓전에 윙윙 울리는 소리는 사그라들지 않는다. 그는 마누라의 무시, 불편한 다리, 딸이 자길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불안감이 한데 얽힌, 어떤 ‘공포’를 내리친다. 그리하면 죽어 없어지기라도 할 것처럼.
쥐를 한없이 내리치는 그의 얼굴 주름 하나하나에 공포가 스민 장면이 눈에 선하다. 작가는 달국씨의 공포와 쥐 뿐 아니라 순식간에 읽히는 글로 독자의 마음까지 잡아낸 듯 하다. 어쩐지 아릿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