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시대(석양)를 살아가는 이‘숲’의 이야기 감상 브릿G추천 이달의리뷰

대상작품: 석양의 숲 (작가: , 작품정보)
리뷰어: 반외, 20년 6월, 조회 101

‘석양’이라는 단어가 주어졌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체로 모래바람이 흩날리는 황야에서 총을 든 채 서로를 겨누는 총잡이일 것이다. 서부영화 마니아에게 ‘석양의 숲’이라는 제목이 주는 이미지란 대체로 그랬다.

 

이를 의도했음인지, 작품에는 기다렸다는 듯 ‘보안관’이 나온다. 총을 쏘는 노년의 여성 캐릭터에 내심 제목을 맞췄다 흐뭇해할 무렵 독자는 저무는 시대를 살아가는 어린 소녀, 이숲을 접하고 기분 좋은 통수를 맛보게 된다.

 

그렇다, 이건 석양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숲의 이야기다.

 

‘석양의 숲’은 제목에서부터 익히 짐작할 수 있다시피 아포칼립스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자원이 고갈된 머나먼 미래, ‘물수제비’란 말은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와 같이 아이들이 이해할 수 없는 사장된 언어가 되어버렸고 통 유리창으로 된 사치스러운 건물은 작은 돌멩이 하나에도 쉬이 깨지는 ‘터무니없이 비효율적인’ 건축양식이 되었을 뿐이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풍족한 자원을 누렸던 어른은 과연 어떤 삶의 방식을 가르쳐줘야 함이 옳을까. 보안관의 말을 신도처럼 따르는 이숲을 보며 독자들은 보안관과 같은 고뇌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사실 아포칼립스라는 소재 자체는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인류는 미래에 대해 걱정하다 못해 가상의 인외까지 만들어 스릴을 즐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아포칼립스 홍수’ 속에서도 석양의 숲을 추천하는 이유는, 단순히 가상의 위기를 유흥으로 소비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포칼립스 시대에 추구해야할 삶의 방식을 진지하게 성찰하기 때문이다.

 

왜 나한테 자꾸만 옛날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생각했는지 알려주려고 해요?”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숲에서 따온 이름을 가진 아이에게, 모든 자원이 풍족했던 시대의 방식을 알려주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인가. 개를 만져본 적도 없는 아이에게 개를 만지게 하고, 죄책감을 알게 하려는 것은 과연 옳은 교육 방식인가. 다정함이 약점이 되는 시대에 그것이 강함이라고 가르치는 보안관의 교육에 독자는 함께 고뇌하고 빠져들 수밖에 없다. 작중에는 ‘물 인질범’같이 어설픈 과거의 지식으로 헛된 꿈을 꾸는 젊은이도 존재하기에 보안관의 고뇌는 더한 무게를 가진다.

 

아이들은 놀아야 한다는 보안관의 철학에, 이숲은 노아는 벌써 열한 살이니 충분히 일할 때가 됐다고 항변한다. 자신을 불쌍히 여기지 말라고 대꾸한다. 열한 살의 아이마저 비둘기 양식 일을 당연히 도와야 하는 시대에 우리네 시대의 방식을 끌고 오는 것은 월권일지 모른다. 그건 풍족한 시대의 이야기이고, 제 몫을 해내지 못하는 아이는 도태되는 것이 석양의 시대에 걸 맞는 방식일지도 모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그 같은 생각을 거듭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 역시 훌륭한 한 사람 몫을 해내는 노동자이며, 아동은 별개의 개념이 아닌 덩치만 작은 성인이라고 여겨지던 시대는 그리 멀지 않은 과거다. ‘아동학대’라는 개념이 확립된 것도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그것들을 다 배부른 시대에 이루어진 합의라고 보는 게 옳을까.

 

석양의 숲에서 다뤄지는 미래는 마치 척박한 중세를 떠올리게 한다. 동시에 현대를 관통하는 것이 마치 끝없이 반복되는 인류사를 대변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보안관이 반복해서 추구하는 가치는 ‘아포칼립스’의 진가를 드러낸다. 자원이 고갈된 미래, 더는 남아있는 여유가 없음에도 인류가 고스란히 도달했던 합의와 가치는 결코 퇴색되지 않는다는 진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다.

 

작중 보안관에 대한 이숲의 의존도는 그 같은 생각에 더욱 확신을 심어준다. 보안관의 말에 망설임 없이 제가 쓰다듬던 개를 쏘아 죽이던 모습에서, 잘생겼다는 보안관의 지나가는 말 한마디에 정말이냐고 되묻는 모습에서. 빵(식량, 기초 생계)과 장미(인간으로서 누려야할 조건들)를 보장받기 위해 인류는 얼마나 많은 투쟁을 감내해야 했던가. 단순히 생존만을 추구했다면 이숲은 보안관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을 터다. 보안관이 이숲에게 건네준 것은 생존에는 하등 도움 될 게 없는 구시대의 생활양식일 뿐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들여 구시대의 방식을 전수하는 보안관의 사랑과 관심은 이숲을 살게 한다.

 

석양의 숲은 구시대의 사랑으로 아포칼립스 시대를 살아가는 이숲의 이야기이다. 아이의 옆에서 총을 꺼내든 보안관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은 자연스레 보안관에 이입해 이숲의 성장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이 소설의 매력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자면 작중에서 드러나는 자연스러운 세계관이나 기타 장치들을 언급할 수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인류가 합의해온 가치가 헛되지 않았다는 시종일관 따스한 작가의 시선에 더 찬사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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