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의 저는 리뷰를 쓴답시고 아무것이나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을 써제낍니다. 하지만 이 리뷰는 의뢰를 받아 쓰는 것이고, 명백하게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소 딱딱한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빨리 나아지라고 쥐난 사람 팔다리를 주무르는 기분인데요, 제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점을 몇 개 적어보겠습니다.
1. 독자는 내 글에 관심이 없다.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꼭 드리고 싶었던 말씀입니다.
독자는 의외로 내 글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인내심도 없습니다. 적극적으로 댓글을 다는 사람은 일부이고, 대부분은 지켜보다가 재미가 없으면 바로 빠져나갑니다. 당신의 쩌는 설정에도 당연히 관심이 없습니다. 재미있으면 읽고, 재미없으면 읽지 않습니다. 우리가 제임스 조이스 같은 문학을 할 것이 아니라면 응당 이 인내심 없고 내 글에 관심도 없는 독자를 신경써야 합니다.
이것은 타협이 아닙니다. 만약 이걸 ‘타협’이라거나 ‘대중에 영합’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3년 정도는 감금되어서 밥값하게 책을 읽어야 합니다. 반대로 생각해 보세요. 책을 펼쳐서 읽는데 다음 내용이 궁금하지 않다면 그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겠습니까? 무식하고 예술을 모르는 대중과 대결하는 사람도 뭐 있기야 있겠지만, 그게 우리는 아닙니다.
다음에 쓰는 건 꼭 이규훈 님의 글만 그런 것은 아니고, 기억나는 것들을 종합적으로 모아놓은 것인데요.
* 도입부에서 하나를 기억하기도 벅찬데 나중에 제대로 등장하지도 않을 캐릭터를 우다다다 내보낸다.
* 독자가 아직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는 특이한 개념어를, 제대로 된 설명이나 해설 없이 우다다다 내보낸다.
* 모르는 게 너무 많은데 설명을 전혀 안 해주거나, 반대로 1절 2절 3절 뇌절 그랜절 설명만 주구장창 해대는 식으로 독자의 흥미를 빼앗아간다.
* 나는 모르는 이야기를 캐릭터들이 계속 하는데 가까운 시일 내에 설명도 주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작가가 혼자서 독자를 따돌리는 짓은 하지 맙시다. ㅠㅠ
『눈물을 마시는 새』를 예로 들겠습니다.
이 글의 도입부는 하나의 사건으로 시작합니다. 그것도 독자가 놀라기에 충분한 사건이라 우리는 자연스럽게 주의를 집중하게 되지요. 이 사건을 압축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주막의 주인! 어떤 남자가 막 걸어오는데 이상한 검은 선이 보이네? 엥 저게 뭐지? 으악! 피잖아!!
짧기는 하지만 이걸 분석해 볼까요?
주막 주인의 시선은 사실 독자의 시선입니다. 독자는 이 세계에 처음 떨어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일부러 주요 인물이 아닌 사람으로 배치한 것입니다. 이야기의 도입에서 상대방의 기묘함을 느끼고 저 사람 기묘하다고 바로 생각할 수 있는 인물로 시작한 것이지요. 거기다 독자의 시선을 끌어당길 수 있는 요소도 넘쳐납니다. 우선 우리는 주막 주인의 사고를 따라가다가 이상한 검은 선에 시선을 집중하게 되고, 여기서 짤막한 미스테리가 발생하지요. 마침내 검은 선이 피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독자는 놀라게 됩니다. 피를 줄줄 흘리며 걸어오는 남자가 범상한 사람일 리 없으니 이 남자, 케이건 드라카의 첫인상을 강렬하게 자리매김하는 효과도 있지요.
이런 식으로, 소설가는 독자가 전혀 모르는 새로운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이곳저곳 열심히 장치를 심어놓아야 합니다. 잘 쓴 작품을 읽어보세요. 치밀할 정도로 독자가 자연스럽게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이도록 설계를 해 놓습니다. 웹소설에서 그렇게 클리셰가 나오고 틈만 나면 회귀 빙의 환생하는 게 다 이유가 있다니까요. 5500자라는 분량 안에 빠르게 독자를 설득하면서 다음을 클릭하고 싶을 정도로 흥미를 이끌어내야 하니까 최대한 독자에게 직관적으로 때려박는 것입니다.
요약해서 말씀드리자면.
독자는 어떤 상황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모든 상황을 관대하게 받아들여 주지는 않습니다.
내 글을 보면서 독자가 어떤 생각을 할지 끊임없이 생각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2. 군상극은 감당이 될 때 쓰자.
이 글이 군상극이라고 하셨는데 http://konstellatio.blog.me/221038725963 저도 나무위키와 각종 서브컬쳐 관련 서적 외에는 군상극이 정확히 무엇인지 레퍼런스를 찾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군상극이라는 개념이 우리나라에 제대로 안 잡힌 이유는 정말 오랫동안 연재해야 가능한 형태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무위키에 실린 정의를 보니까 주인공이 없이 서사 중심으로 전개가 된다고 말하는데요. 으음… 간단하게 쓰자면, 저는 군상극 쓴다고 말하는 사람을 백이면 구십 정도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다음에 쓴 글은 제 편견이 담겨 있을 것입니다.
군상극의 정의가 ‘주인공 없이 서사 중심으로 전개가 된다’ 이것이라고 나무위키에서는 말하는데, 최대한 이해해보면 고전적인 의미의 주인공(극 전체를 관통하는 주동자)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의미겠지요. 인물이 이끌어나간다는 느낌보다 무슨 역사책에 등장하는 것처럼 거대한 사건 안에 인물이 있다는 느낌일 테고요.
그러면 ‘군상극’이라는 물건은 분명한 서사가 있어야 성립하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어지간한 사람이 아니면 이 군상극이라는 물건에 도전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사가 길어지면 제대로 완성을 못 하더라고요. 너무 많은 사람이 나오니 주요한 서사는 실종되고 앞에 나왔던 인물들은 그래서 왜 나온 것인지 모르겠으며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사람들을 챙기느라 정작 주역에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캐릭터 한두 명 나와도 질질 끌려다니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요소를 일부러 더 늘리나요.
무엇보다 저는 (분명 아직 분량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 이야기가 굳이 군상극이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잭 야마를 주인공으로 삼고 분명한 목표를 주기만 해도 이야기가 훨씬 괜찮아질 것 같아요.
이미 아시겠지만 안정적인 구성과 전개가 나쁜 것은 아니잖아요.
3. 책을 많이 읽고 분석을 해 보자.
가장 현실적인 조언을 드리자면, 지금보다 책을 더 많이 읽으셨으면 좋겠어요.
무슨 책을 읽으셨는지 저는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지만, 좋아하는 소설을 놓고 구성과 전개를 진지하게 분석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좋아해서 『모방범』을 읽고 진지하게 분석한 적이 있지요. 하지만 이건 너무 볼륨이 크니 권장할 방법은 아닙니다. 적당한 소설을 두고 어떤 식으로 구성했고 어떤 식으로 전개했는지 살펴보세요. 내 소설과 분명히 다른 지점이 보일 것입니다.
제 생각에 독서량이 부족하셨을 리는 없고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쓰는지 자세히 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이것저것 많이 읽으세요. 그리고 계속 그 소설의 구성과 전개를 분석해보세요. 대사 묘사 설명 다 뜬금없이 배치된 곳이 없습니다. 현실을 이야기하면 차라리 낫습니다.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납득시키는 과정은 없거든요. 허구는 정말 섬세한 세공품이라서, 조금이라도 잘못 힘을 주면 깨져버립니다. 이규훈 님께서 보다 정교하게 환상을 조직하는 능력을 갖추셨으면 합니다.
저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데요. 심심해서 13화 26화 이런 애니메이션을 놓고 1화에서 무엇이 나오고 2화에서는 무엇이 나오며 몇 화부터 반전이 있고 몇 화에서 위기 절정 결말인지 죄다 적어놓았습니다. 그것보다 더 긴 애니메이션은 저런 서사구조가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그냥 봤지만요. 만화도 그랬습니다. 몇 페이지의 몇 번째 칸에서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지 죄다 적어놨어요.
소설은……. 미야베 미유키가 특별했던 것이지 그거 하나 하고 나니까 진빠져서 못 하겠더라고요.
아무튼 마구 읽기는 한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요.
그 책들은 제가 19금 BL 쓰는데 톡톡한 도움이 됩니다. 매우 고급 레퍼런스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너무 매운 말만 잔뜩 한 것 같은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