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작가님 제목을 저렇게 지어놓으시면 어떡해요
저 막 오따끄-어쩌면 백합-러브코미디 기대하고 찾아왔단 말이에요
근데 이게 딱히 부적절한 제목은 아니라는 게 이 작품의 묘미가 있습니다.
멀쩡한 SF 스릴러입니다. 최애 아이돌 ‘지유’를 응원하기에 적합한 신체를 갖고 싶어서 인간이 되고자 하는 산업 로봇, 이후 얻게 될 이름 ‘란마’의 우여곡절-좌충우돌-아니-뭐-세상에-내-맘대로-되는-일이-하나도-없어-스릴러입니다. 초반부에는 확실히 코미디적인 상황으로 흘러가는데요. 근데 이게 갈수록 진지해져요. 화자인 란마의 태도가 자기 감정이나 가치판단에 관해 지극히 분석적이라 더욱 건조하기도 합니다. SF 하드보일드라고 할 수도 있을까요? 어쩌면 현대의 하드보일드는 감상주의에 빠진 펄프픽션 하드보일드보다는 SF가 더 잘 맞는지도 모르겠네요.
후반부에 들면 어째서 그런 서술전략이 필요했는지가 드러나는데요. 이 이야기는 최애를 위해 인간이 되고 싶었던 로봇이 본의 아니게 안드로이드와 인간을 둘러싼 음모에 휘말리고, 그 음모를 캐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저는 최근에 SF 읽는 버릇을 좀 들이고 있지만 본진은 미스터리 독자인데요,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감각으로 읽어볼 때 이 작품은 정보를 감추었다가 풀고 적재적소에서 독자의 의식을 전화해주는 리듬감이 좋은 것 같아요. SF적으로 읽는다면 아까도 말했듯 란마의 분석적인 태도에서 비롯한 언어사용이 SF감을 전해줍니다. SF적 소재를 쓰기도 했고, 작품이 드러내는 궁극의 문제의식도 SF적이기도 하지만 읽었을 때 가장 와닿는 건 플롯적인 면과 언어사용적인 면에서의 장르적인 성격이었던 거 같네요.
마지막에 드러나는 ‘음모’ 부분은 마치 이토 케이카쿠의 소설이 연상되는, 의식이란 무엇인가-‘나’의 아이덴티티를 무엇이 보증하는가, 그런 맥락의 주제의식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아쉬운 게, 초반부에서 준 인상과 음모론이 가시화되고 난 후의 인상이 너무 다른 바람에 주제를 음미하기가 좀 어러워진 느낌이 있어요.
이게 장편이었다면 이 정도의 톤차이는 별다른 문제가 안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단편인 바람에, 관건인 ‘의식’ 문제가 그래서 ‘아이돌을 사랑하는 나’라는 란마의 마음과 어떻게 연관이 되는 것인가? 혹시… 연관 없는 건…? 내가 너무 거칠게 읽은 건가…???라는 불안감이 남게 되는 면이 조금 아쉽습니다. 물론 제가 잘못 읽었을 가능성도 높다고 보고 잘못 읽었다면 죄송합니다.
읽으며 저력을 느꼈고, 아예 이 세계관과 문제의식으로 장편소설이 보고 싶다는 감상도 들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