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말을 오랫동안 오해해왔습니다. 나는 이게 ‘사람이 선량한 의도를 갖고 한 행위가 무언가를 최악의 결과로 이끈다’는 뜻인 줄 알았거든요. 아니더라고요. 그 말뜻은 선한 의도를 갖고 있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도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항상 좋은 의도를 갖고 살려고 노력하고 그게 잘 안 되면 그런 착각이라도 품고 싶지만, 역시 행동이 따라주지 않으면 죽도 밥도 안 되는 거 같습니다. 그렇게 마음만 부풀다 보면 뭔가 와장창 하고 무너지는 때가 와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뭔가를 ‘한다’는 걸 생각만 해도 납덩이를 한웅큼 삼킨 기분이 되는 때가.
매우 장기화된 행동부전증을 앓고 있는데(물론 이런 병명은 없고 의욕부진과 게으름을 달리 말해본 것뿐이지만) 이 글을 읽은 것도 그런 나날 중 하루였어요. 대충 고슴도치처럼 똘똘 말린 상태로 읽어 나가는 동안 숨이 트이면서 눈앞의 공간이 넓어지는 기분이 들더군요. 처음에는 상쾌한 큰비가 내리는 밤의 냄새. 번갯불로 구워진 공기의 오존 냄새. 그리고 다달다달 갈리면서 피어나는 커피향이 이윽고 맑은 우주의 향기로 변하는 감각적이고 매혹적인 체험이었어요.
향수의 노트 변화를 좇듯이 읽어가다 보면 우주 중심에 결정화된 파인애플의 향기(!)와 만나게 되는데, 작가님이 이 작품의 모티프를 ‘알디프의 스페이스 오디티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 걸 보고 알디프가 뭔지 찾아봤어요. 두시간짜리 티 코스를 운영한다는 걸 알고 예약했고 그다음 주에 남편과 함께 집밖으로 나갔는데, 사실 그게 내 아주 오~랜만의 외출이었습니다. 나가는 것조차 귀찮아해서 통 움직이질 않았었거든요.
알디프 티바에 간 날 공교롭게도 비가 왔는데 둘 다 우산을 가져오지 않아서 쫄딱 맞고 향했습니다. 몸에서 나는 비에 배인 살 냄새와, 티바의 청결한 차 냄새가 섞이는 순간 정신이 깨어나던 감각이 기억나네요. 바테이블에 앉아서 다른 모르는 분들과 봄의 티 코스를 한잔씩 따라가니 점점 뭔가 내가 살아있기는 한 거구나,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경험을 하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아마도 그러면서 내 수명이 수십 년쯤은 연장된 게 아닐까 싶어요.
한편의 글이라는 건 그걸 읽어들이는 머릿속에서 시뮬레이트하는 가상경험의 질에 그 가치가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때로는 실제 경험을 촉발하는 매개가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이 글은 나에게 뭔가를 체험하게 하고 실제로 진짜 경험을 향해 움직이도록 했습니다. 거창한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작가님의 글에는 세계를 경험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건 어떠한 세계상을 보여준다거나 시스템을 그려보인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뭐랄까, 사람이 실제로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을 압축해서 체험하게 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덜 거창하게 말하자면 시적인 진실의 단면을 체험하게 하는 힘이랄까요. 어떤 정서와 인물이 품은 마음, 그것이 구체적인 감각과 함께 전달되는데, 그 화자의 경험이 진부하지 않고 반짝반짝 빛나요. 표현이 이상하지만 ‘살아있다’는 것을 대리체험하는 힘이 있네요.
우리는 태어나서 모두 자기 자신과 세계를 주로 갈등이라는 방식으로 경험하는 것 같지만, 이렇게 세계가 기적적으로 조화롭고 향기로운 순간을 포착한 글을 읽음으로써 갈등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경험으로 한발을 내디딜 용기를 붇돋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