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G에는 다양한 텍스트가 있습니다. 이 소설은 어떨까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짜임새가 있다는 것. 자세히 뜯어보면 마치 ‘소설 쓰기 입문’ 같은 책에 나오는 가이드라인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문장들의 호흡과, 각각의 플롯들에 할당되는 볼륨. 부담스럽지 않은 문체와 선명한 인물들. 적당한 무게의 주제.
글의 줄거리와는 별개로, 그저 형식적인 특징 만으로도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플롯들을 어떻게 배치하고 어떻게 서사를 이끌어가는가. 어떻게 장치들을 보여주고 사용하는가. 분량은 장편이지만 문장들이 어렵지 않으니, 조금만 더 다듬는다면 정석적인 글쓰기가 어떤 건지 재확인 하기에 훌륭한 교재가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내용은 어떨까요. 제가 느낀 바는 이러했습니다.
20회 까지의 글을 전부 읽어나가며, 저는 읽었다기보다는 차라리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조금 더 명확히 하자면, 일본 드라마에서 다룰만한 소재를 가지고 한국 드라마의 방식으로 연출했다고 할까요.
문체를 비롯한 구성에 대한 감상과, 내용 그 자체에 대한 감상을 나누어 쓰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구성에 대한 감상을 먼저 풀어보자면:
저는 소설을 읽을 때 그것의 첫 문장, 첫 문단을 눈여겨 보곤 합니다. 그러한 저의 독단으로 이 소설의 첫 문단을 훔쳐서 무단으로 인용해 보겠습니다. 작가님께서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학교를 다니는 것만으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아니라면 무엇을 더 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 그전에 꼭 도덕적이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학교란 건물은 존재만으로 그런 질문을 부르는 곳이었다.
음. 아마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고, 뭔가 도덕에 대한 질문을 하려는 것 같습니다. 어떤 철학도는 약간의 기대를 가져봅니다. 얼마나 문학적일 것이며, 얼마나 철학적일 것인가. 또한 작가는 어떤 결말을 보여줄 것인가.
하지만 바로 이어 나오는 문장들은 그런 기대에 부응해주지 않습니다. 생동감이 있으나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한 묘사들로 하나의 장면을 설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나오는 문장에는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카톡으로 정보는 빠르게 공유되는 시대였다.’
이걸 소리내어 읽어보면, 저는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듭니다. 구태어 더 예시를 들지는 않겠지만, 소설 앞 부분에서는 충분히 다듬어지지 않은 듯한 문장들이 꽤 있습니다. 고백하자면 그래서 집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어쩌면 이 소설 또한 비범하지는 않은 글이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혹시 어떤 부분을 그렇게 느꼈을지, 작가님께서 궁금해 하실지 몰라 따로 기록하며 읽게 되었구요.
그러나 소설이 진행될 수록 문장들은 더 깔끔해졌고, 7회 정도 부터는 마음놓고 읽을 수 있었습니다. 9회 코멘트에서는 직접 선언을 해주셨습니다. 진짜 중심 갈등으로 돌입합니다, 라고 말입니다. 이때 크게 안도했습니다. 글을 쓰는 능력이 부족해서 그렇게 쓴 것이 아니며, 작가님께서도 최대한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서사가 이어지도록 노력했을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후로 소설의 플롯들이 하나 둘씩 눈에 들어왔고, 글의 완성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인물들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대화들은 더 생명력을 가지게 되었고, 3인칭을 채택하고 있으나 사실상 1인칭 소설이 아닌가 싶었던 저의 오해도 풀리게 되었죠.
각 회에 붙어있는 소제목들도 주목해 볼만 합니다. 글을 차근차근 읽어나갈 때, 이 소제목들은 제게 상당히 묘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너무도 명확하게 현 중등교육의 ‘생활과 윤리’ 과목에서 다뤄지는 개념들을 겨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때 철학적 깊이를 말하기에는 어렵겠다고 속단했습니다. ‘교과서적인’ 이라는 단어도 심심치 않게 출몰하고 있었으며, 그것의 깊이는 허망할정도로 얕으니까요.
하지만 20회의 소제목은 ‘사랑과 도덕은 어떤 관계일까’ 라는, 사실상 소설 전체를 통해 작가가 묻고 싶어하는 질문이 아닐까, 싶은 문장이었습니다. 18회의 첫 문단에서는 이 이야기를 어디까지 절제해야 할까, 하는 작가의 고민이 보이는 것도 같았습니다. 다른 소제목들은 어쩌면 악세사리이고, 마지막 질문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러한 질문들에 작가가 뭐라고 대답하려 하는가. 이건 내용에서 찾아야 마땅할 겁니다.
선, 승훈, 세나. 작품소개에도 있는 이 셋을 주인공으로 봐도 무방하겠지만, 조연들의 비중도 적지 않습니다. 교사들의 관계와 학생들의 관계. 이 소설은 상당히 인물 중심적인 이야기였습니다. 각각의 인물들에게는 각자의 관점이 있으며, 각자의 고민을 가지고 있으며,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도 제각각입니다.
선은 도덕적(도덕적이려고)하지만, 그래서 자신의 도덕은 얼마나 성스러운 것인가 고민합니다. 동료 교사이며 친구지만, 자신의 도덕적 잣대로는 아니꼬울 때가 많은 승훈의 방식에 생리적인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그 자신은 얼마나 위선적인가 갈등하고 있죠.
승훈은 체육교사, 하면 떠올리는 선입견이 가득한 이미지들 그대로의 인물입니다. 젊은 꼰대처럼 보일때도 많지만 사실 생각도 많고 정도 많은, 그런 인물로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 둘은 그리 새로운 인물은 아닙니다. 다른 소설에서도 충분히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들이죠. 음, 그리고 성적인 프레임이 강하게 적용되고 있어서 저로서는 약간 불편했지만,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이 이러한 평범성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세나는 선이나 승훈과는 조금 성질이 다른 인물로 보여집니다. 선와 승훈에게는 전통적인 의미의 성적 역할이 부여되어있는 반면, 세나에게는 수많은 가벼운 만남들을 가지지만 누구보다도 진실된 사랑을 갈구하는, 어쩌면 남성으로서 훨씬 많이 그려지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설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선이지만, 가장 큰 무게감을 가진 인물은 세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른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본문을 읽지 않으신 분들의 즐거움을 위해 굳이 적어놓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모두 필요한 인물들이고, 잘 설계되었다는 것은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장 할 이야기가 많은 것은 물론 소설의 결말입니다. 작가는 ‘사랑과 도덕은 어떤 관계인가’ 라는 질문에 뭐라고 대답하려 하는가. 정말로 유치한 결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마 작가가 말하고 싶은 사랑이란, 그런 유치함을 피하지 않는 것. 사랑과 도덕의 관계는 일률적, 일반론적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 사이의 갈등이 어떤 결과를 내놓을지라도 기꺼이 부딪힐 수 있는 것, 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다만, 한 가지는 비판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에 니체를 인용하는 것이 얼마나 적절했는지 제겐 의문입니다. 소설의 결말로 미루어 보아, 니체가 선악의 저편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을 낭만주의적으로 치환시켜버린 것이 아닌가 우려가 됩니다. 물론 소설 전체에서 논의되고 있는 주제와는 상당히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텍스트는 철학이 아니라 문학의 카테고리에 속해있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문장으로서 인용하는 건 단지 허세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작가님께서 제가 이해하는 방식으로 니체를 이해하실 필요는 전혀 없지만, 베케트처럼 스치며 지나가듯 등장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제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네요. 이 소설은 도덕과 사랑을 묻고 있으며, 여기에서 물어지는 ‘도덕‘의 중심에는 섹스가 있습니다. 바타유가 아직도 태어나지 않은 한국에서, 이러한 시도는 크게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렇게까지 과감하지는 못했다는 한계도 있었던 듯 싶습니다. 섹스가 도덕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극복되어야 할 대상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이는 선악의 저편에 있어야 할 사랑을, 또 다른 이데올로기에 가두는 일이 되지는 않을까요. 글을 읽고 나서 오랜만에 다시 선악의 저편을 펼쳤습니다. 사랑에서 행해지는 일은 항상 선악의 저편에서 일어난다.
소설의 기본을 훌륭하게 만족시키고 있는 글이었고, 여러 생각들을 곱씹어보게 하는 소설이었습니다. 원고지 900매가 넘는 장편소설의 분량임에도 읽는 것이 지치지 않았고, 그렇다고 가십거리에 그칠만한 공허한 내용도 아니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 글도 읽어 보고 싶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