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명으로 시작해 미명으로 끝나는
미명(未明)의 사전적 의미는 ‘날이 채 밝지 않음. 또는 그런 때.’이다. 밤이라 부른다면 밤이고, 새벽이라 부른다면 새벽인 애매한 시간. 빛과 어둠 사이의 시간에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좀비 사태가 창궐한 세상의 생존자 중 하나인 주인공 김 하사가 지하에 생존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지하로 내려가며 시작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도 시간적 배경은 미명이다.
아직 살아있는 자들을 묻는 장례식
작품의 줄거리는 특별할 것이 없다. 김 하사는 지하에 있던 생존자를 발견하지만, 그는 죽어가는 중이었다. 드뷔시를 듣던 그는 밖으로 나와 죽음을 맞이한다. 사실 김 하사는 2년 전에도 생존자 중 좀비에 물린 이를 죽인 적이 있었다. 그는 현 생존자인 예지의 동료였는데, 방심하던 중에 좀비에게 물린 탓에 죽게 된 인물이었다. 아직 살아있는 자들을 묻는 장례식. 김 하사는 이 슬프고도 특별한 장례식을 치르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다.
살인자, 동시에 구원자도 되는 순간
주인공 김 하사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살아있는 자를 묻는 의식을 통해 살인자가 되며 동시에 구원자도 된다. 좀비에 물려 인간성을 상실하기 전에 죽음을 택하는 이들에게 죽음과 안식을 선물하는 역할이다. 이는 야누스의 두 얼굴처럼 보인다. 밤도 새벽도 아닌 미명의 시간에 이러한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 매우 상징적이었다.
사건의 압축과 생략은 다르다
<미명(未明)>은 좀비 장르이지만 특정한 클리셰에 얽매이지 않고 작가만이 가진 특별한 시선에서 삶과 죽음을 다루었다는 데 의의가 있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특정한 시간대인 미명에 벌어지는 장례식 장면들은 하나같이 슬프면서도 담담하게 그려져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마음이 어떨지 짐작해보게 한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시간이 여기저기 오가다 보니 산만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와 2년 전을 오가고, 현재에서도 새벽, 미명 등을 오간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의 핵심은 어떤 부분인지, 또 초점을 어디에 둬야 할지 혼란스러운 느낌이 있다. 물론 중단편이니 당연히 사건이 압축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2년 전 사건과 현재의 사건은 생략된 부분이 많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두 사건 사이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는 있으나, 그것이 압축적이라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조금 더 섬세하고 치밀한 구성이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주인공 1인칭인 이야기라 해도 의식의 흐름대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갈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 전하고 싶은 메시지에 따라 흐름의 조정이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좋은 작품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건필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