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기 전에 가려했지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그림자놀이 (작가: 천선란, 작품정보)
리뷰어: 탁문배, 20년 1월, 조회 186

SF에 심취한 사람이 아니라도 누구나 기술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어떤 견해에 따르면 행복이란 고통이 없는 상태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아주 오래 전에 설해진 가르침에 따르면 고통이야말로 피할 수 없는 삶의 속성이라고 합니다. 논리학에는 자신이 없지만 종합하자면 기술이 우리를 삶에서 멀어지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그러고 있을 수도 있고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뇌 과학과 심리학 사이 그 어디쯤에 거울상 뉴런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게으름 탓에 최신 과학을 잘 체크하지 않다 보니 그게 실증된 기관인지 가설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렴풋이 기억하기로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추론하고 공감하는 능력에 관련된 것 같습니다. 본 작품에서는 주로 감정을 조명하고 있습니다만, 거울상 뉴런이라는 말이 있기 전에도 공감이란 참으로 인간 세상에서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어디 학교 교훈으로 삼아도 좋을 만한, 역지사지라는 오래된 말도 있지요. 현대에도 여전히 공감은 미덕이고, 타인의 심정에 좀처럼 공감하지 못한 사람은 둔탱이, 심하게는 사이코패스 괴물로 취급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성한 칼라를 통해 모든 생각과 감정을 함께 나누지 않더라도 공감에는 그 나름의 대가가 있습니다. 국민 전체가 비아리안 인종에 대한 비이성적인 증오를 공유하지 않았다면 국가사회주의는 20세기를 야만과 폭력의 어둠속으로 몰고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가깝게는 너무 불쌍해 5년만 대통령 해봤으면 좋겠어가 생각나는군요. 그런 집단적 광기를 차치하더라도, 어쩐지 타인의 기쁨보다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해야 할 때가 더 많다는 점은 나의 행복에 공감능력이 기여하는 바를 의심하게 만듭니다.

다른 한편으로, 사람들의 감정이 배제된 미래세계는 보통 디스토피아물로 분류됩니다. 제가 가장 마지막에 본 건 보이는 게 배트맨의 건 카타 밖에 없었던 이퀄리브리엄입니다만, 본 작품은 약간 다른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딱히 강제화된 것은 아니지만 작중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거울상 뉴런의 기능을 정지하는 시술을 받은 것으로 서술됩니다. 덕분에 화자에 따르면 세상은 담백해졌습니다. 드라마도 없고 예능도 없고 가짜뉴스도 없는 세상.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로 선전포고를 하는 핵불닭볶음면 같은 2020년을 살아가고 있는 입장에서 어느 정도 수긍은 가는 설정입니다마는, 화자의 마음도 마냥 편안한 것만은 아닙니다. 화자에게는 마음의 빚을 진 친구가 있었고 시공을 뛰어넘어 그 친구가 돌아왔거든요. 그것도 20년 만에.

더 이상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화자이기에, 20년만의 귀환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은 정기적금 만기만큼 무덤덤하게 그려집니다. 심지어 친구의 남은 수명이 열흘이 채 되지 않는다는 통보에도 화자의 반응은 제대로 묘사되지 않고 휙 넘어가버립니다. 황망한 독자의 심경은 귀환한 친구가 대변해줄 따름입니다. 너는 누구니? 그리고 또 다른 귀환자의 가족 중에는 화자와 대비되는, 그러니까 수술을 받지 않은 가족이 있습니다. 간호사로서 이들을 돌보던 화자는 모녀의 모습을 통해 비로소 자신과 친구 사이에서 잊고 있던 과거를 떠올립니다. 또 다른 내가 되어 내 아픔을 덜어간 그림자 놀이를 말이지요.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고 함께 나누기를 거부하면 괴로움을 피할 수 있겠지만, 아마도 우리는 그 사람을 잃고 말 것입니다. 친구를 그토록 절망케 한 화자의 눈은 과연 얼마나 텅 비어있었던 걸까요? 그렇지만 희망은 정말로 가슴 속에 있었습니다. 없어진 사지에서 느껴지는 고통처럼, 없어진 마음이 느끼는 통증도 환상통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비록 흉내내기에 불과하지만 주인공은 그 그림자놀이를 통해 친구와 비로소 재회할 수 있었습니다. 불과 며칠 후 다시금 친구를 떠나보내고, 화자는 이제 언젠가 툭 터져 나올 아픔을 기다립니다.

전체적으로 독후감이 착잡한 작품이었습니다. 소중한 사람들이 나름의 이유 때문에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지만 영영 헤어지고 말지요. 그 와중에 잃은 것이 많고, 화자도 그것을 머리로 알고는 있지만 제대로 느끼지는 못합니다. 건조한 서술 덕에 그런 마비된 듯 흐릿한 느낌이 더욱 와닿았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차단막 수술이 대중화될 법하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해당 설정은 현실적이기 보다는 우화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유는 이것저것 주워섬길 수 있겠지만, 일례로 성범죄를 뿌리뽑기 위해 사람들이 성욕을 포기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 컸습니다. 작중의 사람들이 전쟁과 비극에 지쳤다는 말은 있지만, 아무래도 3차대전 정도는 일어났어야 정당화될 것 같은 배경인데 그에 반해 우주탐험을 제외하면 현재와 별로 다르지 않은 환경에 다소 어색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화자와 친구 사이에 상대성 이론에 근거한 상당한 시간차이가 발생한 부분에 대해, 두 사람 간에 있었던 단절을 극대화하는 장치가 될 수는 있지만 화자가 차단막 시술을 받은 시점에서 반드시 의미가 있는 것인지 약간은 의문스러웠습니다. 일기의 내용을 감안하면 친구가 우주에서 겪은 시간도 그리 짧았던 것은 아닌 것 같아서요. 오히려 두 사람에게 같은 시간이 흐르는 편이 차단막으로 인한 대비를 더 선명하게 보여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편, 친구는 2028년에 우주로 떠나서 2037년에도 우주에서 일기를 쓰고 있는데, 화자가 20년을 지구에서 기다리는 동안 친구는 우주에서 몇 년을 보낸 것인지 살짝 혼동되는 부분이었습니다.

잘 읽어 놓고 비평을 위한 비평이나 하고 있으니 한심한 기분이군요. 좋은 이야기로 공감과 타인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게 해준 작가님께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새해에도 모쪼록 건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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