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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작품: 나의 라플레시아 여왕에게 (작가: 유진, 작품정보)
리뷰어: 주렁주렁, 19년 8월, 조회 79

1.

나는 ‘세계정복을 꿈꾸는 악의 집단’에서 일한다고 자신의 일을 설명한 ‘아’와 함께 강원도 H리의 단독주택 2층에서 동거 중인 연인입니다. 정부측 발표에 따르면, H리는 원인 불명의 사고로 생존자가 한 명도 없는 상태이고요. 얼마전 머리를 박박 민 나는 오늘 열한 번 째 사냥을 하러 나갑니다. 한때 마을사람이었던 좀비를 잡으러요.

우연히 읽은 소설이에요. 어떤 사전 정보도 없이 말이지요. 중단편 카테고리에 올라온 작품들을 보다가 제목이 맘에 들어서 읽었어요. 평소의 저였다면 간단하게 작품을 소개한 글은 읽지 않는데 말이지요. 단숨에 읽었고 읽고 나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내친 김에 @author:유진 작가님의 다른 단편도 다 읽었고요. 오늘은 이 리뷰를 쓰려고 세 편을 꼼꼼하게 다시 읽었어요. 다시 읽으니 제가 놓친 부분도 꽤 보였는데 뭣보다 다시 읽어도 재밌어요.

2. [나의 라플레시아 여왕에게]

‘왜?’ 보다는 ‘어떻게?’를 더 중요시하는 작가이구나 – 가 첫 번째 느낌이었습니다. 가령 왜 한국에 갑자기 좀비가 나타났을까, 이게 순수한 자연발화일까 아니면 뒤에 거대 조직의 음모가 있는 걸까, 왜 하필 나일까….등등 많은 ‘왜?’를 설명할 수 있었을텐데, 이 소설은 오히려 나와 아와 둘의 보금자리였던 강원도 H리 2층을 더 설명하고 있어요. 많은 ‘왜?’에 대한 답이 나오지 않는 소설입니다. 떡밥을 뿌렸으면 작가는 다 수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이야기를 하다 만 듯한 인상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이 부분때문에 더 맘에 들더군요.

꼭 강원도 H리가 아니더라도 제가 사는 동네나 또 어떤 모르는 동네이든 어느 단독주택 2층에 아와 태영이 살고 있고 그 집 마당에는 구덩이가 파여있을 수 있겠다는 상상을 했어요. 아주 순간이더라도, 익숙하고 뻔해서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는 일상과 공간에 좀비와 같은 비 일상적인 소재를 슥 밀어넣어서 지금의 한국을 생각하게 해주는 것, 이게 두 번째 느낌이었어요.

2. 다정한 손님의 살해법

[다정한 손님의 살해법]의 공간은 반지하입니다.  한국의 주거 공간으로 익숙한 반지하에 뱀파이어를 또 살그머니 밀어 넣어요. 주인공이 콜센터에서 장기 근무 중이며 본래는 고시원에 살다가 장기 근무로 모은 돈으로 반지하에 살아요. “저를 죽여주시지 않겠습니까.”라고 다짜고짜, 일년에 두어번 계단에서 마주쳤을까 말까한 옆집 사람이 찾아와 대뜸 저 말을 뱉습니다. 자신이 뱀파이어라는 설명과 함께요. 나는 뱀파이어 헌터가 아니며 뱀파이어 헌터는 내가 몇년전 자캐 커뮤에 쓴(그린) 이야기일 뿐이며 그건 나의 흑역사이고 암튼 난 헌터가 아니니 그러니….아무리 설명을 해도 도와달라 부탁하며 돈을 줘요. 시간 대비 꽤 큰 돈이기에 주인공은 수락합니다. 당연히 주인공의 짐작처럼 일은 흘러가지 않고요.

마지막 부분이 뭔 소리인가 두 번 읽어봤어도 제대로 파악한건지 자신은 좀 없습니다만(설명이 급하다고 느꼈어요), 신파 느낌이 있기는 없는건 아닌데, 그래도 애틋하더군요. 다짜고짜든 어쨌든 뱀파이어는 주인공의 반지하집 문을 두드렸으니까….애틋하더라고요. [나의 라플레시아 여왕에게]의 태영과 아 만큼이요.

제가 느낀 이 애틋함이 가장 폭발한 소설은 [날개, 날다]였어요.

3. 날개, 날다

어느날 갑자기 여러 개의 등에 날개가 생겨납니다. 인터넷에 사진이 올라와도 합성인가 실제인가 긴가민가 하고 올라오는 사진은 점점 더 늘어나고요. 그러다 그 날개로 하늘을 나는 개의 동영상까지 올라오게 됩니다. 이제 세상은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알아내려 하지만 아직 정설은 없고, 여전히 날개달린 개와 나는 개는 화제가 됩니다.

이런 현실에서 H는 강원도 철원의 회색지붕 집으로 들어갑니다. 이모가 살던 집인데 얼마전 이모의 장례를 치뤘고요. H는 대문을 걸어잠그고 마을 사람과 왕래하지 않으며 일주일에 한 번 먹거리를 살 때에만 집 밖에 나올 정도로 폐쇄적인 생활을 합니다. H와 개와 날개가 서로 어떤 연관이 있을지, 어느 지점에서 만날지, 알듯 모를듯한 상태로 흘러가던 이야기가 팍 터지는 순간, 아…정말이지 오랫만에 단편을 읽고 이렇게까지 울컥해봤네요. 그것도 첫 번째보다 두 번째 읽으면서 더 울컥했어요.

[날개, 날다] 역시 여백이 있는 소설이에요. 문장에 설명을 꽉꽉 채워서 해주는 스타일의 소설은 아닙니다. 또한 너무 수동적인 결말이 아닌가, 생각도 잠깐 했어요. 그래도 좋더군요.

 

덧. 세 편 소설 중 두 편의 주인공 직업이 콜센터 직원 같습니다. 세 편 다 그런 것도 같고요. 그러고보니 H가 인간의 이름으로도 나왔다가 마을 이름으로도 나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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