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서 공모(감상)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무너진 다리 (작가: 천선란, 작품정보)
리뷰어: 비연, 19년 8월, 조회 191

천선란, 무너진 다리

 

스포일러를 걷어내고 또 걷어내다 보니 할 수 있는 말이 하고 싶은 말의 절반도 되지 않아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누군가 이 글을 읽지 않고 내 리뷰부터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엄청난 자의식 과잉일지도 모르겠으나, 아주아주 미미한 확률로라도 그런 분이 계실 수 있다면 스포일러를 철저히 배제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혹시라도 아직 이 글을 읽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오늘이 기회다. 절대 이 가슴 뛰는 글을 놓치지 마시길. 종이책으로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계실 수도 있으나 모바일로 보는 <무너진 다리>와 종이책으로 보는 <무너진 다리>가 같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제발, 두 재미를 모두 즐기시길.

 

천선란 작가의 글은 늘 불완전한 단단함을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이야기 속 인물들의 특징이기도 하고 이야기 자체의 특징이기도 하다. 너무 일찍 단단해져 버린 미성숙한 개체들의 위태로움과 같은 것들. 그리고 그 특징이 SF라는 장르와 참 찰떡같은 궁합을 자랑하지 않나 싶다. 안아 주고 싶던 인물이 나를 안고 있고 잔잔했던 호수에 던져진 담담한 문장 하나가 큰 파동을 일으키는 경험은, 아직 상상으로 그려낼 수밖에 없던 근미래의 이야기를 어느새 우리 안에 자리 잡게 한다. 어떤 표현들은 표현 자체가 아이러니 같아서 쓰지 않으려고 하지만, 천선란 작가의 글에는 아이러니 만큼이나 잘 어울리는 단어도 없는 것 같다. 이제 막 인물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줄까 싶어 그들이 노크할 것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이미 이야기의 바다에 빠져 함께 울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순간을 가장 자주 선사하는 작가이므로. 이렇게나 덤덤하며 이렇게나 어리숙한.

 

끔찍한 것들은 생각보다 통증이 없다. 고통의 범위를 넘어선 것들은, 뜨겁거나 아프거나 처절하지 않고 차갑고 무감각하고 침착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경험을 딱 두 번 겪었다. 두 번이면 많은 것일까, 적은 것일까. 인간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순간마다 느끼는 통증의 온도처럼 지구 표면의 온도가 내려갔다면 한철 기온이 오십 도를 육박하는 일이 발생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지만 인류의 염원으로 인간의 수명이 갈수록 길어지고 길어져, 한 세기를 거뜬히 지났으니 죽음은 기약 없는 과제처럼 미뤄져만 갔다. 이 지구의 인류 모두가……. 돌아올 수밖에 없는 생각처럼 지구의 멸망도 이런 식으로 계속 귀결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갑작스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마블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영웅 서사 자체를 좋아하지 않기도 하지만, ‘미국 대통령이 돕는 미국 영웅’이 세계를 구한다는 내용을 두 시간이나 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썩 유쾌하게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정도의 자본이니 만들 수 있는 영화이고 미국이 만든 영화이니 미국 영웅이 나올 수밖에 없음은 이해하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늘 같은 선상에 있지는 않았다. 갑자기 영화 이야기를 꺼낸 것은 <무너진 다리>에 등장하는 미국은 이들 영화가 다루던 미국과 너무도 다르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근미래를 작품으로 하는 소설에서 미국을 배제할 수 있을까. 미국 영웅이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름 어려운 등장인물들로 가득한 작품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현재 혹은 가까운 미래 어쩌면 먼 미래까지도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은 오지 않을 것을 안다. 미국인이 몽땅 사라져도 미국 대륙은 남는다. 그러니 미국과 미국인과 미국 대륙을 모두 배제한 채 근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억지스러울 정도로 불가하다. <무너진 다리> 역시 미국이 등장한다. 어쩌면 주요한 배경이 미국 대륙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죽어버린 미국. 그러나 죽지 않은 미국. 그리고 죽은 것과 죽지 않은 것을 확인하기 위해 그 파멸한 땅으로 떠난 동양인. 같은 미국일지라도 그간 수많은 소설에서 영화에서 다루어졌던 미국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이, 그리고 미국으로 떠난 이가 ‘영웅’으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새롭고도 마음 편안한지.

 

임 교수가 지나치게 인간의 습성을 휴론에게 적용시켰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그에 대한 여론은 어디에나 들끓었다. 로봇은 인간처럼 행동할 수 있게 하는 것에 대해 인류의 반은, 어쩌면 인류의 대부분이 부정적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편히 쉬는 것, 옆에 있는 것과 다른 것, 자신만의 무언가를 가지는 것, 인간뿐만 아니라 꽃이, 벌이, 나비가, 강아지가, 코끼리가, 참새와 매가……. 이 행성에서 살아있다고 분류하는 모든 개체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특성이라고 이 교수는 반박했다. 로봇청소기를 만들 거였으면 안드로이드의 개발을 추진해서는 안 되었다. 스스로 지능을 갖게 할 안드로이드를 만드는 순간부터 그것들에게는 필수불가결적으로 행성이 공통적으로 가는 습성을 전부 따라야 한다. 1세기 전, 처음으로 만들었던 로봇에게 두 다리를 물려준 시점부터 휴론은 새로운 개체로서 지구의 행성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전부 부여받게 된 것이다.

 

등장하는 인물이 참 많다. 고백하자면, <무너진 다리>를 두 번째 읽을 때는 A4 용지에 이름들을 적고 서로의 관계를 정리하며 읽었다. 이름마다 문화권도 얼마나 다른지, 아인, 주연, 베벌리, 나딤이 한 소설 안에서 나오는 이름들이라니. 처음 읽을 때 놓친 이름과 관계가 얼마나 많았었는지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다. 어려웠다는 말은 아니다. 모바일로 두 번 종이책으로 세 번 읽으시라는 의미다. (헤어날 수 없는 주접의 늪.) 이 많은 인물과 다양하게 얽혀있는 인물 간의 관계를 하나하나 되짚다가 아인이 탔던 우주선이 ‘펄서’였음을 떠올린다. Pulsar, 중성자별. 자전하며 X선을 포함한 고에너지 방사선을 내뿜는 별. 논의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마 펄서 주변에서는 생명체가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추진력만 100톤에 달하는 핵이 떨어진 대륙과 같이.

 

그런 환경에서는 생명체가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건, ‘우리의 생각’ 아닌가?

 

<무너진 다리>의 작품 소개는 이렇게 적혀 있다. ‘파멸한 아메리카 대륙. 그곳으로 추방된 800대의 안드로이드로부터 이상한 진화가 시작되었다.’ 안드로이드. 진화. 인격. 인간. 내가 작품 소개를 적었다면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탄탄한 이야기의 향연!’과 같은 말을 덧붙였겠으나 역시 작가 본인이 쓴 소개라 겸손하다는 생각을 문득 한다. 농담이다. 그렇지만 진심이다. 농담 주변에도 진심이 살 수 있…….

 

늘 리뷰의 끝맺음이 어렵다. 매번 마지막에 다다를 때 즈음 끝맺음까지 잘 하는 리뷰어가 되려면 아직 한참 남았음을 느낀다. 오늘도 어렵다. 종이책으로 만나자고 하자니 종이책으로만 만나자고 하는 것 같고, 더 자주 많은 글로 만나자고 하자니 언제는 자주 글 안 쓰셨나 싶고. 그러니 그저, 지금처럼 글을 써주세요. 오래오래 천선란의 온도를 품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세요:)

 

완결과 출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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