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엽편 또는 엽편에 가까운 초단편이 참 애매하다. 짧은 글귀로 내용을 담으려다보니 이야기가 쉽고 가볍게 읽히는 건 좋은데, 정말 짜투리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감상하는 정도의 만족감, 그 이상을 보기 힘든 탓이다. 이것은 독자나 작가에게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아주 짧은 분량’이라는 측면 때문에 거의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일이잖은가 생각한다.
허나 종종 어떤 글들은 적은 분량이라는 제한폭을 비웃기라도 하듯 풍성한 느낌을 전달해주곤 한다.
작가 석아산이 나에겐 그러하다.
가장 먼저 접한 작품은 <브레인 서커 Brain Sucker>였다. 흥미롭게 읽은 작품이었다. 독특한 발상, 일견 장자의 ‘호접몽’을 떠올리는 발상 하나를 오롯이 살린 엽편이다. <브레인 서커> 외에도 선명한 아이디어 하나를 날 것 그대로 접시 위에 올려놓은 듯한 엽편들이 제법 있으니, 구미가 당긴다면 작가의 엽편들을 찬찬히 보시라 슬그머니 제안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머지 작품들도 찬찬히 살펴봐야겠다고 생각만 했을 뿐, 내가 작가 석아산의 작품 일련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리뷰를 작성할 줄은 예상도 못했다.
“아이디어 하나를 초단편의 짧은 분량으로 날렵하게 구사하는 분이구나” 라고 생각하던 찰나,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독수리가 떨어뜨린 거북이 맞아 죽은 작가>와 <나의 사부님, 팔대산인(八大山人)>은 각각 고대 그리스와 중국 청말명초기의 소재를 작가가 특유의 상상력으로 뼈를 잇고 살을 붙여 만들어낸 이야기였다. 물론 분량은 30매 남짓한 짧은 분량이지만, 그 짧은 분량 안에 ‘이야기의 흐름’이라는 게 분명하게 살아있다. 적은 분량 안에서 분량에 비해 제법 긴 시간을 다루는 작품들, 그런 작품을 쓰는 작가들을 보고 있자면, 솔직한 말로, 부럽다.
그런가하면 작품을 다 읽은 순간 가슴 한곳에 아련한 느낌이 톡, 하고 터지는 경우들도 있었다. 위에 열거한 세 작품이 그러하다. <벤지 이야기>는 좋은 리뷰도 달려 있으니 작품을 감상하는데에 보탬이 될 것이며, <벤지 이야기>가 마음에 드셨다면 다른 두 작품도 취향에 맞으실 거라고 추천드린다.
<999개의 팔을 지닌 소녀>도 가슴 한 곳에 아련한 느낌을 자아내는 작품이다. 방사능 피폭으로 999개의 팔을 가지고 태어난 기형의 소녀, 그런데 그 결과 방사능에 노출되어도 문제가 없다는 특이한 능력을 가진 소녀, 그리고 그런 소녀를 이용하려는 자들, 과연 소녀가 도달할 결말은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이 결말, 참 좋았다.
내가 <999개의 팔을 지닌 소녀>의 내용을 깊이 파고들지 않은 대신 작가 석아산의 작품 몇몇을 소개한 까닭은, 저 작품들을 일일이 전부 리뷰하자니 어쩐지 쑥스럽(?)기도 하고, 이 중에 작품 하나만 딱 골라서 써보자고 생각했지만 다른 나머지 작품들이 소개되지 않는다 생각하니 아깝다는 마음이 들어, 작가의 작품 일련을 끌어들이고 말았다. 아무래도 이분은 재담꾼-이야기꾼이다.
소설이 이야기(story)에서 출발하지만 이야기가 곧 소설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역으로, 이야기와 소설이 같은 개념이 아니라는 이유로, 소설에서 ‘이야기’를 덜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자신의 창작물이 이야기의 측면에서 소홀하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들을 종종 보았다. 그런 점에서, 작가 석아산은 이야기꾼이다. 짧은 분량의 작품들을 모음집으로 엮어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소개글을 보니 이분 이미 기담집 한권 출간하신 이력이 있었다. 어쩐지.
999개의 팔을 지닌 어느 소녀의 이야기를 빚어내신 분이라면, 아마 앞으로도 999개 쯤 되는 아름다운 이야기들 혹은 재미진 이야기들 또는 의미 있는 이야기들을 도라에몽 주머니마냥 주섬주섬 하나씩 꺼내놓으실 것 같다. 끝이 없는 재담꾼에게 이야기는 999개 쯤은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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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내용에 끼워넣기가 살짝 애매해서 본문에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이 작품도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으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