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기가 약한 편이라 어려서부터 가위에 자주 눌렸는데, 날이 점점 더워지는 한여름에 특히 심했었습니다.
주로 맹수나 귀신에게 쫓기는 꿈을 꾸는데 마지막엔 항상 막다른 골목이나 절벽끝에 몰리곤 했지요.
바로 뒤에서 무언가 날 쫓는 듯한 뒷덜미의 스산한 감촉과 앞이 보이지않는 어두운 골목을 달리는 막연함이 주는 공포.
이틀에 한번꼴로 겪는 일이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지않던 그 기분은 나이가 들어서도 제게 잘 잊혀지지않는 안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묘한 것은 이제 그런 꿈을 꾸지않게 된 이 나이쯤 되니 예전에 느꼈던 그 공포를 찾아다니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인간이 가진 감각의 간사함일까요?
공포가 주는 카타르시스를 즐기는 건 저 뿐만 아닌 인간의 당연한 본성이지만 청소년시절에 잠드는 것조차 두렵게 만들었던 그 느낌을 찾아다니고 있다는 건 참 아이러니하면서도 재미있는 일입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만, 이 글 ‘사자 소생’은 어릴적 꿈속에서 느꼈던 공포를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강렬한 좀비물입니다.
일단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꿈에서 겪을까 두려운 스릴과 공포감의 실감나는 표현입니다.
예상치 못한 산사태로 터널안에 고립된 사람들에게 닥친 재앙이라는 설정은 좀비물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멋진 무대인데 거기에 더해서 이 좀비는 우리가 흔히 아는 [느릿느릿 걸어오다 머리 때리면 꽈당]하는 그런 녀석이 아닙니다.
머리가 떨어져나가도 상처도 없이 부활하는 재생력에다 육체의 강인함, 민첩함까지 갖춘 좀비를 좁은 붕괴현장에서 피해야 하는 건 말그대로 아포칼립스겠지요.
최근의 좀비물들이 보여주는 설정과는 달리 흑마술에 가까운 좀비의 탄생비화는 과거 좀비물의 태동시기에 등장했던 그것들과 흡사해서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오지만, 이 글의 최고 포인트는 역시 주인공의 섬세한 심리묘사와 긴박감넘치는 스토리입니다.
적절한 동어반복을 통해서 긴장감을 높이시는 것도 좋았고, 너무 끌지않고 빠른 이야기진행을 이어가시는 부분도 이 글을 한 편의 영화처럼 몰입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었습니다.
최근 좀비물을 보면 과거에 인기를 얻었던 몇몇 작품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인물들의 대화나 인물간의 관계표현에 너무 치중하는 글이 많이 보이는데 , 그런 부분들은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재미를 높여주기도 하지만 과하면 공포물본연의 재미와 이야기의 흐름을 루즈하게 만드는 단점이 되기도 하더라구요.
이 글은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인물들간의 관계나 배경설명같은 부분은 줄이고 철저하게 주인공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때문에 읽는 동안 한시도 눈돌릴 틈이 없었습니다.
오랫만에 저를 오래전 악몽으로 몰아넣어준(?) ‘사자 소생’은 스토리의 진행이나 반전같은 건 잠시 잊고 터널안에 고립된 한 청년이 되어 생존자들과 함께 호흡하듯 글에 빠져보신다면 색다른 경험을 주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