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캐릭터는 소설에서 지극히 중요한 요소이고 소설가는 현실감이 있으면서 흥미롭고, 언동에 적당히 예측 불가능한 면이 있는 인물을 작품의 중심에 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하루키는 ‘리얼하고 흥미롭고 어느 정도 예측 불가능한 것’ 이상으로 소설 캐릭터에 특히 중요한 것은 ‘그 인물이 얼마나 이야기를 앞으로 끌고 가주느냐’하는 점이라는 사실도 언급하고 있다. 하루키는 등장인물을 만든 것은 작가지만, 참된 의미에서 살아 있는 등장인물은 어느 시점부터 작자의 손을 떠나 자립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라고까지 주장한다. 소설이 어느 정도 궤도에 어르면 등장인물들이 독자적으로 움직이면서 이야기가 제 마음대로 흘러가고, 그 결과 소설가는 단지 눈앞에서 진행되는 것을 그대로 문장으로 받아쓰기만 하는 소설가로서는 그저 행복하기만 한 상황이 연출된다는 것이다.
캐릭터가 소설가의 손을 잡고 그가 미처 예상조차 하지 못한 뜻밖의 장소로 이끌어준다는 것인데, 하루키는 구체적인 사례로 자신이 집필한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제시하고 있다. 이 소설의 줄거리를 간단히 말하면 다음과 같다.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는 고교시절 네 명의 친한 친구들에게 이유도 듣지 못한 채 절교를 당하게 되고, 18년이 흐른 후 성인이 되어 그의 연인에게 마음속 깊은 상처로 남았던 이 일을 털어놓는다. 그의 연인인 사라는 그에게 즉시 고향으로 돌아가 18년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봐야 한다고 조언하고, 쓰쿠루는 그 말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가 옛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다.
하루키는 주인공의 연인인 ‘사라’가 그런 말을 하기 전까지 다자키 쓰쿠루가 네 명의 친구를 만나러 가는 스토리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가 구상했던 소설은 주인공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한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인생을 조용히, 미스터리하게 살아가야 했다는 비교적 짤막한 단편 소설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극 중 인물인 사라는 스토리를 단편에서 장편으로 확장시켰을 뿐만 아니라, 베일에 가려져 있던 네 명의 친구들의 캐릭터와 그들이 걸어온 인생까지 구체화시켰다. 소설상의 등장인물의 말 한마디로 인해 소설의 방향과 성격, 규모와 구조가 뒤바뀌어버린 것이다. 어쩌면 ‘사라’가 말을 건넨 대상은 ‘다자키 쓰쿠루‘가 아닌 소설의 작가인 하루키였는지도 모르겠다.
<추리소설 속 피해자가 되어버렸다>는 여러 면에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독자가 소설 속에 투입된다는 설정, 특히 단순히 소설에 개입하는 걸 넘어 기존 등장인물 중 한 사람에 투영되어 스토리 전개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은 신선한 설정이었다. 하루키는 등장인물은 어느 시점부터 작자의 손을 떠나 자립적으로 움직인다고 주장했지만, 반대로 작가는 자기가 만드는 세계에 대해 완벽하게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작가도 존재한다. 정유정은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에서 작가는 자신이 만드는 세계에 대해 신처럼 알아야 그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유정은 작가가 만든 세계에서는 파리 한 마리도 멋대로 날아다녀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추리소설 속 피해자가 되어버렸다>는 하루키의 세계관도 정유정의 세계관도 아닌 그 두 가지가 혼합된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작가는 세계관을 설정하고, 심지어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독자까지 소설 속 세계로 끌어들일 정도로 신적인 존재지만, 소설의 스토리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고 등장인물 간 상호작용으로 인해 생기는 변수에 의존하고 있다. 물론 소설 상 등장하는 작가 이외에 실제 이야기의 창조자인 현실의 작가가 존재하는 액자식 구성이지만, 소설의 설정상 작가가 세계를 신처럼 장악하고 있진 못하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이러한 독특한 설정은 독자들이 소설을 흥미롭고 신선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매력적인 요소를 충분히 가지고 있고, 웹소설 기반의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 트렌디함도 느껴진다. 또 원소설의 스토리와 상이하게 진행될 향후 전개에 대한 기대감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반면에 몇 가지 단점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어느 순간 보니 독자가 소설 속의 한 인물이 되어 있다는 것은 단순히 판타지적인 설정으로 넘어가기에는 개연성이나 명분이 좀 부족한 느낌이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평범한 독자인 ‘나’는 시간이 난 김에 웹소설을 몰아서 정주행했을 뿐인데, 소설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다는 이유로 소설 속으로 끌려들어왔다. 아직 완결된 작품이 아니므로, 추후에 설정이 세분화될 수도 있겠지만, 왜 ‘나’ 여야만 했는지, 소설의 작가가 가진 힘과 현실세계와 소설 속 세계와의 관계 및 각각의 세계에서의 규칙 등이 더 소개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추리소설 본연의 전개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독자가 소설 속 인물이 되는 설정에도 조금 더 신경을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하나는 현실세계 독자인 ‘나’가 소설 속 인물 ‘레나 브라운’으로 분하게 된다는 설정에서 오는 어색함이다. 독자인 ‘나’가 처음 소설 속 인물인 ‘레나 브라운’이 되었을 때, 원소설과 모든 면에서 바뀐 소설상의 설정처럼 ‘레나 브라운’의 외연에 독자인 ‘나’가 틈입하여, 이야기의 경계를 허물고 주도적으로 스토리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13화>를 보면 ‘나’가 레나의 기억에서 정보를 얻어내기도 하고, 무의식중에 갑자기 레나의 수다쟁이 버릇이 튀어나오기도 하는 대목이 등장한다. ‘레나 브라운’의 몸을 빌린 독자인 ‘나’가 온전한 의지로 새로운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것이 아닌 소설 속 ‘레나 브라운’과 독자인 ‘나’의 이중 인격이 존재한다는 의미인지, 읽으며 좀 혼란스러웠다.
전체적으로 추리소설로서의 본연의 역할에 집중하면서 소설의 무대를 확장시키며 향후 이야기 전개에 기대감을 불러오는 소설의 설정이 기발하다고 느꼈다. 본 소설의 독자로서 앞으로의 이야기 전개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