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부(富)란 무엇인가?”
지고한 린트부름의 후손, 작중 주인공 중 하나인 빌 더 리저… 아니, 빌러디저드의 질문이다. 이 질문이 최초로 나오는 서장을 살펴보자.
먼저 작품을 이끌어가는 또 다른 주인공 울리케 피어클리벤을 대낮에 납치해 온 용이 한 말이 가관이올시다. “너를 먹겠다.”
아니, 먹으면 먹는 거지 이 점잔 떠는 선언은 또 뭐란 말인가? 지금 공포감 조성해서 거대한 턱 아래 힘없이 잡혀 온 소녀를 말로 먼저 우롱하겠다는 심산인가?
독자와 비슷한 심정인지 울리케 또한 질문한다. 자기한테 허락을 구하는 것이냐고. 이 말에 용은 왜 자기가 먹이에게 허락을 구하겠느냐 반박한다. 그러자 속으로는 벌벌 떠는 주제에 입은 생생히 살아있는 울리케가 자신은 식용에 적합하지 않다 주장한다. 이 먹느냐 먹히느냐의 긴박한 순간 둘은 참 느긋한 템포로 예의를 갖춰 대화를 시작한다. 이렇게 가난한 영지 피어클리벤 남작가의 영애와 용의 전설적인 첫 교섭이 시작된다.
그렇다. 작품소개는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쓰여 있잖은가, 교섭 전설이라고.
교섭이란 단어는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서로 의논하고 절충하는 것이라 한다. 그러자면 서로가 가지고 있는 패를 보여줄 듯 말 듯 하나씩 펼치며 밀당을 하는 과정이 나온다. 우선 빌러디저드는 울리케를 먹기 위해… 아니, 선언하기 위해 먼저 뭘 보여줬는가? 그건 강자는 언제든 약자를 먹을 수 있다는 냉엄한 자연의 섭리를 직접 울리케를 아무런 제지 없이 서리함으로써 증명한 것이다. 몇 번의 대화를 주고받은 후 울리케는 담담히 이 부분을 인정한다.
사실 울리케는 이때 용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미 자신이 가진 패를 보여줘 용의 식사거리를 말린 생선으로 바꿔버린 상태다. 그녀가 가진 패는 첫째, 용의 거대한 이빨 앞에서도 침착한 척 말을 이을 수 있는 배짱이요, 댄디한 우리 용이 무시 못 할 린트부름식 예의범절을 다독(多讀)을 통해 갖췄음이 그 둘째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셋째는 울리케 특유의 사유(思惟)력이다. 주인공 보정의 비범함은 먼저 만나봤던 전사와 현자도 보여주지 못했다며 용이 보증해줄 정도이니 말 다 했다. 자연계 최상위 포식자가 가진 무력(武力)의 패를 한낱 가난한 영주의 여덟째 딸이 지력(知力)의 패로 상대해냈으니 더더욱.
이제 용의 아가리에서 벗어났으니 다음은 집으로 돌아갈 차례다. 용이 알려주길, 17살 난 인간 소녀의 걸음으로는 이틀이 넘는 거리인 데다가 도로는 군데군데 무너진 상태라 하니 갈 방도가 까마득하다. 하지만 우선 배를 채우는 게 먼저였다.
울리케는 귀족 영애답지 않은 생활력을 발휘해 폐성을 뒤져 용이 호기심으로 주워다 놓은 말린 늘대구와 향초, 소금 따위를 찾아 버려진 솥에 물까지 찾아내 담고 요리를 한다. 물론 불도 직접 피운다. 이때 울리케는 자신도 모르는 새 용에게 또 다른 막강한 패를 흔들어 보인 게 된다. 불과 요리는 인류가 인류로서 거듭나기 위해 얻고 만들어야 했던 문명의 초석과 표본이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인간이 가진 두뇌의 진화와 화식(火食)의 상관관계를 한 번쯤 읽어보신 분이라면 잘 아실 내용이고 작가님도 아셨지 싶다. 요리에 대한 용의 호기심은 곧 인간사회에 대한 흥미를 나타냄을 이후의 내용에서 또한 알 수 있다. 저 고고한 용이 고작 음식이나 얻어먹자고 울리케를 강아지마냥 쫄래쫄래 따라다녔겠는가? 그 이상의 것을 보았기에 처음 만난 어린 인간에게 질문을 하고 또 보호해준 게 아니겠는가.
“강자는 약자를 먹을 수 있다. 거기에 정당함이나 정합성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먹겠다던 먼저의 선언을 먹지 않겠다로 뒤집은 용이 생선국을 맛본 후 건넨 말이다. 힘의 논리와 음식. 이 두 가지는 이후 고블린 명장 아우케트와의 만남까지 언급되는 테마다. 겨울을 나기 위해 염소를 약탈하거나 혹은 협상해야만 하는 그들 입장에서 식자재가 되는 타래염소와 그걸 쟁취할 무력은 귀중한 부의 일종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냥과 약탈로만 사회를 유지하던 고블린들이 울리케를 통해 농사의 개념을 받아들인 이후 식자재가 지니던 부의 가치는 지속적 식량 생산이 가능한 토지에 넘어가고 만다. 결국 음식은 사회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그 가치가 가장 먼저 변해버리기 마련이다.
그리고 토지의 가치 때문에 숲이 지닌 그 자체로서의 가치를 옹호하는 서리심과 마찰이 일어난다. 서리심이 말하는 생명과 약속의 가치 또한 자산적 가치와 문서적 증거가 먼저인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빛이 바래버린 부의 하나라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울리케와 아우케트는 그 빛바랜 약속을 존중함으로써 든든한 우군-귀중한 부(富)를 얻게 된다.
이때 서리심 뉘르뉴 역시 고강한 힘을 보여줬기에 교섭의 자리가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이 무력이야말로 용이 찾던 진정한 부에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 힘이야말로 수렵 사회에서 식자재를 얻을 확실한 수단이요, 농업사회에서 토지를 빼앗는 궁극적 도구가 아니던가. 하지만 자신조차 비대칭 전력자산이라며 부의 일종으로 간주하는 용이 원하는 답이 그렇게 단순할 리가 없다.
울리케는 이후 고블린에게 농사 종자로 내어줬을 깨순무를 오물거리며 인간이 지닌 다른 패를 용 앞에 내어 보인다. 용의 질문은 피어클리벤은 왜 가난한가였다. 부족한 인구, 없는 자원, 결과적으로 일차 산업에만 의존하는 구조를 대답하는 울리케인데, 이는 나중에 등장할 크누드 서리엇이 말한 부-사회의 기간(基幹)으로 자연스레 연결된다. 흔히 인프라로도 불리는 도시 기반 시설들은 피어클리벤과 아우셀바프의 비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더할 나위 없는 자산이 아닌가. 단, 인간 사회에 속하지 못하는 용에게는 의미 없었지만 말이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부는 분배되지 않으면 가치가 하락한다는 크누드의 관점이 이미 서장에서 용에 의해 나왔다는 것이다.
“금을 갖고 있다 해도 그것을 다른 자산으로 전환할 수 없다면 단지 반짝이고 무거운 쇠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거래 상대가 팔요하게 된다.”
크누드와 빌러디저드의 만남에서 다시 서장으로 넘어와 보면 야릇한 기시감에 사로잡힌다. 용은 아마도 울리케의 정리되지 않은 대답 속에서 크누드의 대답을 미리 내다보았으리라. 그렇게 발달한 사회와 도시의 기간망은 새로운 자산을 창출하게 된다.
“빈곤은 없음보다 무지에서 비롯하는 것이다.”-20화에서 용이 내어준 현답에 그 자산이 암시되고 있다. 암시장 조합에서 익히 보여준 ‘정보’라는 자산이 그것이다. 사실 아우셀바프에서 주인공 일행이 접하게 된 일련의 사건은 작가가 독자에게 살짝 흔들고 다시 감춘 정보의 패 투성이라 할 수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류그네릭과 파마의 술이다. 주인공이 이런 중요한 정보를 미리 접했기에 앞으로 일어날 혼란에서 변두리가 아닌 중심에 설 수 있었으니 그 가치는 의심할 나위가 없다. 아우셀바프 이후 촌구석 피어클리벤 출신 울리케가 훨씬 거창한 교섭 상대들과 겨룸에 있어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동등, 심지어 우위를 선점할 수 있었던 자산이 바로 정보였으니까. 사실 시그리드와 용은 울리케가 다룬다기보다는 의존하는 위치이기에 이 정보라는 자산이야말로 교섭인 울리케가 능동적으로 다루게 될 가장 막강한 무기가 된다.
다시 서장으로 돌아가자. 용은 이전에 몇 번의 만남에서 실망한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다시금 희망을 걸고자 한다. 울리케라는 작은 인간은 이미 자신이 지닌 가치를 입증하였다. 그리고 그 고향 피어클리벤이 가진 것이 없기에 오히려 용과의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수 있음 또한 알려주게 된다. 비록 울리케 자신은 이때 몰랐지만 말이다. 아마 아우셀바프 같은 도시였다면 가진 게 이미 많기에 용을 더욱 두려워하고 거부했을지 모른다.
울리케는 당장 마수가 들끓는 숲에서 자신을 에스코트해 줄 지킴이가 필요하고 용은 이 현철한 소녀와 가진 것 없는 영지가 탐이 난다. 이제 빌러디저드는 울리케에게 가슴 깊이 숨겨 두었던 마지막 패를 꺼내 보이며 진짜 교섭을 시작한다.
이때 용이 울리케를 위하는 척 꺼낸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이렇다.
“짐승이 들끓는 숲에서 안전하게 호위해줄 테니 네 아버지 피어클리벤 영주를 만나게 해다오. 이는 각자의 부를 위한 교류가 될 것이다.”
물론 황실의 간섭을 염려하는 울리케야 펄쩍 뛰며 피어클리벤의 빈약한 입지를 말하며 제고를 청한다. 하지만 거절하면 집까지 어찌 돌아갈 텐가. 이미 결정 나버린 교섭이오, 떠나버린 화살이다. 너무나 뛰어난 교섭의 자질을 보인 나머지 울리케는 이제 꼼짝없이 용의 후원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용은 새로운 둥지에 더해 시대에 변치 않는 진정한 부를 함께 찾을 교섭인까지 얻게 된다. 이보다 더 훌륭한 교섭의 예가 또 있을까. 교섭 전설의 서장에 어울리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비록 이후에 용의 머리 꼭대기에 교섭인이 앉게 되고 그 교섭인은 후원자 때문에 고생할 미래가 오더라도 말이다.
누가 교섭을 울리케만 했다고 그러던가? 서장에 나온 교섭의 주체는 사실 용이 먼저였다!
앞서 말했듯 서장과 이후 이어지는 내용에서 나오는 여러 종류의 자산을 나열해 보면 마치 인간사회가 발전해온 모습을 재현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울리케와 용이 밀당하며 주거니 받거니 한 힘과 음식이 가진 가치는 수렵사회의 고블린들이 타래염소에 대한 교섭에서 되풀이해 보여준다. 이후 농업사회로 전환하려는 그들과 서리심 사이에 토지와 노동력, 약속의 가치가 상충하게 된다. 그리고 도시를 이루면 정보가, 그 정보를 소비할 사회의 기간이 더 발전된 형태의 자산이 되고 이는 부로서 축적이 된다.
여기에 신이한 마법과 그걸 원천봉쇄할 파마의 술까지 더 해져 이야기는 점점 더 복잡해져 간다. 이 둘은 폭력을 행사하기 위한 전력 자산이란 점에서 용과 비슷하지만 빌러디저드가 추구하는 부는 아니다. 귀금속과 유리의 예에서 이미 말했듯 용은 거래가 원활한 자산을 원하기 때문이다. 크누드가 말했던 분배를 통해 가치가 높아지는 종류 말이다. 권력과 무력은 분배가 아닌 독점 되어야 가치가 높아지는 부이기에 용이 원하는 부와는 대척점에 서게 된다.
아래의 대사를 위에 나온 “강자는 약자를 먹을 수 있다. 거기에 정당함이나 정합성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와 비교해 보자. 둘은 큰 시차 없이 동일 존재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내가 단지 더 강하기 때문에 너희의 생명을 거두는 데 허락이 필요치 않다면, 너희의 재산을 강탈하는 데도 허락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쌓은 부는 거래 상대를 잃을 것이며 내 황금의 빛은 바랠 것이다.”
음식이 약육강식의 논리 하에 만들어진다면 부는 거래 상대가 있어야지만 이룰 수 있다. 때문에 빌러디저드는 무력으로 인간을 위협해 귀금속을 얻는 대신 복잡하고 힘든 길을 택한다. 용을 대리해 뛰어난 교섭력을 발휘할 인재와 그가 속한 터전을 자신이라는 비대칭 전력자산을 내세워 교섭하고 얻어낸 것이다.
이렇듯 인간과 그가 속한 사회를 용이 모종의 수단으로 택했기에 인간 사회의 기간-불과 요리에서 시작된 문명-이라는 부가 과연 ‘빌’에게는 영영 그림의 떡으로 그칠지 또한 이 소설을 보는 재미가 되지 않을까 싶다.
숱한 전설과 달리 금붙이 하나 없이 폐성에 머물던 가난뱅이 용과, 마찬가지로 마땅한 자원이 없어 가난뱅이로 살던 울리케 피어클리벤은 과연 진정한 부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두 존재의 부자 되기 모험은 과연 어떤 파란을 몰고 올 것인가.
따지고 보면 이 모든 모험은 서장에서 시작된 하나의 질문, 그것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집요한 탐구의 여정이라 할 수 있다. 용의 말처럼 그 해답은 무력을 내세운 약탈이 아닌 교섭을 통한 대화와 분배의 길 위에서만 찾을 수 있을 터이다. 혹은 용의 입회 아래 울리케, 아우케트, 크누드가 발견한 단어 ‘사회적 합의’를 통해 새롭게 제시되는 그 무언가일지도 모른다.
이토록 초지일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경제와 사회에 대한 고찰이라니, 서장이 무려 94매나 이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작중에서 앞으로 계속 값어치가 상승하리라 예상되는 자산이 하나 있다. 현실에서도 값비싼 현물 거래 품목으로 수많은 콜렉터가 경쟁하는 고급 주류가 그것이다. 심지어 이건 인간도 아닌 린트부름의 후손 빌러디저드가 그 맛과 향을 보증하고 있지 않은가. 마침 오리지널을 만들 수 있는 류그라들도 있겠다, 이 노주 ‘아베냐드’를 용과 울리케가 찾던 진정한 부로 추천한다는 농담을 마지막으로 이만 리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