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납작해지자, 하나도 빠짐 없이. 감상

대상작품: 배니싱 트윈 (Vanishing Twin) (작가: 김민주, 작품정보)
리뷰어: 청새치, 47분 전, 조회 2

사람이 나오는 영화를 3D, 그림이 움직이는 걸 2D라고 한다면, 소설은 1D인가 생각했던 때가 있습니다. 글자는 가로와 세로가 있으니 화면과 마찬가지로 2D겠지만, 그러면 영화도 실제가 있든 없든 화면에 나오니 2D지 않을까요? 몇 차원이고 다루는 수학자나 물리학자에겐 간단할 질문이 제게는 무척 혼란스러워서, 지금껏 답하지 않고 어물쩍 남겨 뒀던 게 떠오르는 작품이었습니다.

어릴 때 쌍둥이를 부러워한 적도 있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함께하는, 나와 거의 모든 걸 공유하는 존재가 특별하게 보였거든요. 영화나 만화에서 보면 동시에 같은 말을 하거나, 멀리 떨어져 있어도 상대가 뭘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맞추기도 하잖아요? 당연하게도 실제로 만난 쌍둥이들은 미디어와는 전혀 다른 평범한 남매였던 탓에 환상도 동경도 없어지고 말았지만, 쌍둥이는 특별하다는 인상만은 남았습니다.

그렇지만 정확히 절반이 사라지는 건 역시 쌍둥이가 아니지 않을까요?? 일단 단일 개체를 쌍으로는 보지 않잖아요? 정보가 되면 누가 뱉은 숨이든, 아기든 외할머니든 같다고 하지만, 그래도 역시 상반신과 하반신을 한 쌍으로 볼 수는 없어서 왜 절반씩 사라졌나는 두 번 읽고 나서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주인공이 이 현상에 집착하게 될 만큼 엄청나게 강렬한 광경인 건 상상할 수 있어도 말이죠. 책에서 건물이나 배의 구조를 설명할 때 보는 단면도와는 규모부터 차이가 나니까요! 서식지가 불의 고리인 탓에 죽고 만 동물들은 안타깝지만요….

다행히도 인간은 몇몇 직종을 제외하면 보통 바다 속이나 위에서 살지 않기 때문에 갑자기 신체의 절반이 잘려 죽는 일은 없었지만, 이미 습득한 개념이 하나씩 소멸해 가며 일상을 유지할 수 없게 된 건 인상 깊었습니다. 특히 오로지 신체의 자극만으로 움직이게 되었는데도 음식을 만들어서 차려 먹고, 배변을 여전히 화장실에서 처리하는 부분이 그렇게 깔끔할 수가 없었어요! 이건 뇌 질환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이 정보로 변하면서 인지 불가능하게 된 덕분이겠지요.

읽을 때는 크게 의문을 가지지 않았는데 리뷰를 쓰면서 자세히 읽으니 시간이 사라진다는 게 또 신기했습니다. 예전에 동영상으로 본 시간은 실존하지 않는다는 얘기랑 비슷한 걸까요? 마찬가지로 공간이 정보로 변하는 바람에 원근감을 못 느껴서 먼 물체가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이거나, 여러 층을 가진 건물에 있는 모든 사람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들린다는 것도 꼭 블랙홀에 관한 설명 같았습니다. 물질이 강한 중력에 의해 산산이 흩어져도 그 안에 담긴 정보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설명은 몇 번을 들어도 이상야릇해서 왜 예전 사람들이 의학 및 과학적 지식이 해박한 사람을 미친 사람 혹은 마귀 들린 위험한 사람 취급했는지 이해가 가더라고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지, 언어적 소통 다음으로 육체를 제어하는 능력이 사라진다는 순서도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평소에 이런 걸 전혀 생각하지 않으며 지내니 이야기에 나오는 뭔들 안 흥미롭고 안 신기하겠냐마는, 굉장히 인간 친화적인 순서라고 느꼈어요. 문명의 발달은 도구 덕분도 크지만, 문자로 기록되었는지 기준으로 역사적 기간을 나누잖아요? 문자 이전에도 몸짓 언어가 존재해서 서로 의사소통했을 텐데, 물리학의 기본 개념 다음으로 문장 구성 능력이 없어지는 건 아마도 한 명이 태어나기 전에 사라진 가족의 이야기를, 모든 것이 정보로 변하는 순간까지 이어가기 위함인가도 싶네요. 말을 제대로 못 해도 움직일 수 있다면 어느 정도 의도를 전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는 아무래도 힘들겠죠?

그리하여 끝내 홀로 가장 사랑받고, 누군가의 대용품이 아니고 싶어 평생 애썼던 화자이자 주인공인 현서는 다른 모든 존재와 동일하게 정보로 변해 그 속에서 오롯함을 느낍니다. 그 장면의 묘사가 무척 평온하고, 그걸 사라진 햇님이가 흡수한다고 말하는 게 제겐 죄책감의 해소처럼도 보였네요.

이제 어떠한 오해도 생기지 않을 세상은 앞으로 누구도 방문하지 않을 도서관 같았습니다. 여긴 시간도 공간도 똑같은 책일 뿐이니, 시간이 흘러 낡거나 외진 곳에서 잊힐 걱정도 없겠죠. 그래서 제목으로 끝나는 작품을 마지막 문장까지 읽은 순간, 현서의 정보를 모두 열람한 기분이 들어서, 뭐랄까요, 삶의 무상함을 느낀 순간 허탈하면서도 한편으론 후련해지는 거 있죠! 한 세계의 끝을 보고 이런 기분이 드는 게 재밌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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