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자신과 ‘다른’ 존재들을 다루는 방식은 두가지로 나뉩니다. 먼저 하나는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프랑켄슈타인’에 나오는 ‘괴물’이 상당한 지능을 가졌음에도 그의 몸이 인간과 다르고 흉물스럽다는 이유 하나로 사람들은 제대로 대화를 나눠주지 않고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르고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괴물’이 자신의 신부를 만들어주면 조용히 오지로 들어가 살겠다고 했지만 창조자인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이런 괴물은 두마리가 있어선 안된다는 이유로 완성 직전 파괴해버린 것만 봐도 충분히 그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그들을 자신의 유희거리로 삼고 괴롭히는 것입니다. 구파도 감독의 2017년 작 ‘몬 몬 몬 몬스터(Mon Mon Mon Monster!)’ 에서는 ‘몬스터’라는 이름의 불량서클이 진짜 몬스터1를 잡은 후 인간에게 할 수 없었던 잔혹한 린치 행위를 가하는 장면이 다수 등장합니다. 장면을 보면서 몬스터가 아닌 인간이 더 잔혹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은 끊임없이 그들의 가학적 성향을 아낌없이 드러냅니다. 영화를 보면서 ‘인간이 더 사악하구나’하는 생각은 덤으로 따라오는 의견이죠.
‘두꺼비’는 후자에 속하는 상황입니다. 자신과 다른 피부(아토피)를 가진 아이를 조롱거리로 삼고 놀리며 유희거리로 삼는 모습은 앞서 언급한 영화 속의 불량 서클과 맥을 같이 합니다. 그 괴롭힘은 점차 심해져 적나라한 모욕을 주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결국 두꺼비 라 불렸던 아이는 한마리의 두꺼비가 되어 그만의 집에 숨었습니다. 자신을 조롱할 사람 없이 오로지 그 혼자만이 존재하는 그의 집 안으로,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동면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두꺼비’를 잠들게 한 이들은 그들의 태도에 반성의 기미가 있었을까요? 작품 속에서는 언급되지 않지만 그럴 확률은 안타깝게도 적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사라진 두꺼비 대신 새로운 두꺼비를 찾아다닐 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괜찮은 타깃을 발견한다면 그가 자신들과 다른 점을 찾아내어 새로운 ‘두꺼비’ 혹은 무언가로 만들지도 모르는 일이죠. 이러한 이야기가 마냥 추측으로 남을 소리가 아니라는 사실이, 그것이 가장 마음 아픈 일입니다. 두꺼비는 영원한 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잠들게 만든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으니까요. 이것이 이야기의 끝이고 해피 엔딩이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더욱 절망적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