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무서웠던 기억이 나요, 대학교 시절 선배를 따라 지리산 등반을 갔는데 하필이면 그날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정말 죽을 뻔 했거덩요, 순식간에 계곡물이 불어난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심지어 선배는 그 사실을 알고 텐트의 위치를 계곡 조금 위로 올려서 잠을 청했는데 잠이 들자마자 비소리와 함께
엄청 시끄러운 물소리가 나서 텐트를 열어보니 바로 앞에 물이 차오르고 있더라구요, 깜짝놀라 선배를 깨워 부리나케
맨발로 가방만 들고 제방 위로 올라갔던 기억이 납니다.. 한순간에 텐트까지 사라지더군요,
벌벌 떨고 있는데 저희들 주변에 그래도 야영하시는 분들이 많아서인지 많은 분들이 나와 계시더군요,
미처 올라오지 못한 분들이 계실 지 몰라 소리도 지르시구요, 전 물소리만 들었 지, 그 분들 목소리는 못들었는데
한참을 소리 질렀다고 하시더군요, 여하튼 비를 피하면서 죽다 살아난 이야기를 그 이후로 수시로 하곤 합니다..
언제나 비바람은 죽음의 냄새를 숨기고 다가오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상당히 흥미로운 호러소설이네요, 폭풍우가 치면 즉은 이들이 돌아온다는 설정이 무척이나 신선합니다..
그리고 외딴 집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흐름이 대단히 재미집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모호한 공간속에서
인간의 근원적인 악의가 드리워진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 외딴 공간속에서는 악의적 욕망이 꿈틀대는 죽음만이
가득함에도 폭풍우로 인해 불어난 계곡물을 피해 이곳을 찾아든 사람들은 숨겨진 악의의 공간속에 자신들의 악의를
추가합니다.. 이 공간속에서는 옳고 그름의 판단이 무의미합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기준조차 알 수 없는 곳에서
이들이 펼치는 악의적 모습은 있는 그대로의 죽음의 냄새와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짧고 간결하지만 작가가 의도한 이야기의 중심적 소재인 한가족의 숨겨진 비극이라는 설정을 도진이라는 인물의
내레이션을 통해 제대로 표현되어진 듯 싶습니다..
어떻게보면 산 자임이 명확한 소영의 입장에서 그녀의 존재에 대한 진실을 잘 전달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전달하는 도진이라는 인물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딱히 없어보여 아쉽기는 했지만 그로 인해
드러난 한 가족의 비극적 진실을 파악하기에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물론 조금 더 공포적 감성들이 문장의 표현들속에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나름 중요한 연결관계인 도진과 소영의
이야기도 풀어주고 긴장감을 조금 더 주었더라면 좋았겠다라는 생각은 합니다만, 마지막까지 작가가 의도한 폭풍우와
함께 드러나는 죽음의 시간과 공간이라는 배경속의 호러적 감성이 상당히 좋아서 즐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