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중학생 때 제일 친했던 친구가 일란성 쌍둥이였어요. 고등학교는 다른 곳으로 가서 중학교때처럼 자주 보진 못했지만요. 처음 언뜻 지나가다 보면 와 쌍둥이구나 싶지만 한 시간 정도만 같이 있어보면 다른 점이 많이 보여요. 음색의 높낮이가 미묘하게 다르고, 쌍꺼풀 두께가 다르고, 누구 눈이 좀 더 크다거나…..분위기가 다르다기보다는 육안으로 확연히 구분할 차이점들이 많았어요. 제가 주의 깊게 봐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요. 이런 경험 때문인지 구별을 못해서 사고를 친다거나 그런 이야기를 제가 잘 이해를 못합니다.
노말시티님의 [일란성]을 읽기 전에 작품설명을 그렇게 주의 깊게 보지 않았어요. 본 것 같긴 한데 기억에 안 남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제 멋대로, 남자주인공과 똑같은 일란성 쌍둥이가 갑자기 나타나 남자주인공에게 공포상황을 만드는 단편소설이라 생각하고 읽은 것입니다. 읽으면서 계속, 언제 남주랑 똑같이 생긴 사람 나타나지? 기다리고 있었어요. 음….아닙니다. 이 소설에서 일란성 쌍둥이는 남자 주인공이 아니라 여자 주인공(?)입니다.
낯익은 소재이지요. 일란성 쌍둥이 자매. 지금은 예전처럼 자주 쓰이지 않는 것 같지만요. 한 남자를 자매가 같이 좋아한다거나, 한쪽이 병을 얻어서 다른 한쪽이 언니인척 하면서 배우나 작가 본인인척 한다거나, 아니면 부모의 이혼으로 어릴때 헤어졌다 커서 만나 서로 바꿔치기 한다거나 등등.
능력이 없으면서 내 자리를 뺏는 얼굴만 나랑 똑같을 뿐인 존재 – 에 대한 공포/불안은 언제나 있었던 것 같아요. 꼭 쌍둥이 자매 얘기 뿐만 아니라 바디 스내쳐처럼 몸 안 쪽을 차지하는 외계인 이야기도 있는 것 보면은요. [일란성]을 읽고서 곰곰히, 그동안 제가 읽거나 본 창작물에서 남자 일란성 쌍둥이가 있었나 따져봤지만 글쎄요….제가 본 것 중에선 없더라고요. [태양은 가득히]의 리플리처럼 남의 모든 것을 빼앗아 그 사람인 양 행세하는 남자주인공은 있었지만 쌍둥이는 아니었죠([데드 링거]란 영화가 쌍둥이 남자 주인공이었던 것 같은데 보질 않았고요). 왜 남자 쌍둥이 얘기보다 여자 쌍둥이 얘기가 더 많은가? 글쎄요….막연히 후자가 독자에게는 더 공포스럽고 더 그로테스크하리라, 짐작을 할 뿐이지 확실히 이거다 까지는 모르겠어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관련 자료를 찾아서 더 파보고 싶긴 해요.
다시 [일란성] 이야기로 돌아와 낯익은 소재였기에 어떻게 전개될지 기대를 했었습니다만 정해진 길로 간달까? 익숙한 길로 간달까? 그렇습니다. 이게 꼭 단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장르의 클리셰를 잘 밟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고요. 단지 저 자매는 왜 저런가? 쌍둥이라서 그래요, 저 남편은 왜 저런가? 피해자여야 하기 때문에 그래요. 이렇게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딱히 특별한 동기가 없지요, 특히 자매에게요. 이런 점이 저는 아쉽게 느꼈는데 또 어떤 분들에게는 더 막연함과 공포를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더랬어요. 저는 남자주인공인 남편이 수시로 쪼그라들었다거나 잘 안 된다거나 징징거리는게 꼭 순문학 남자주인공 같아서 아주 싫어하면서 읽었습니다.
결말에서는 스티븐 킹의 [애완동물 공동묘지]가 생각났어요. 탈출구 없이 꽉 닫힌 결말? 소설이 막 철퇴를 휘두르는데 뭐랄까요, 공평하게 등장 인물 전부에게 다 휘두르는 느낌? 철퇴를 휘두른 것 자체로 의의가 옮겨가버린 느낌이랄까 그랬어요.
다 읽고 나니 고민이 되더란 말이죠. 리뷰를 쓰기에는 석연치가 않고, 그렇다고 넘어가자니 좀 아쉽고. 제가 노말시티님 작품 중에서 처음 읽었던 [시공간 왜곡 연구단]보다는 굉장히 술술 읽힌다고 느꼈어요. 문장이나 사건 전개가 매끄러워졌단 말이지요. 그래서 일란성 다음에 올라온 단편은 없으려나, 같이 묶어서 쓸 수 있다면 좋을텐데, 하면서 보니 다행히 [등라모연]이란 무협 단편을 올리셨더라고요. 저는 [등라모연]을 단숨에 읽고는 따로따로 리뷰를 쓸 결심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