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영원을 향한 동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적어도 긍정적인 인간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기에 인간이 예로부터 유구하게 ‘늙지 않는 방법’, ‘죽지 않는 방법’을 찾아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도교 등으로 불리는 종교적인 방향으로 접근한 사람들이 있었고, 과거 서구의 유럽에는 중금속을 섭취한 사람들이 있었고, 최근에는 줄기세포 등의 기술적인 연구에 기대고 있습니다.
저는 복제인간이라는 개념 또한 영원을 향한 동경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제된 인간을 통해서 살아있는 사람의 목숨을 더 이어간다는 발상은 영원을 향한 인간의 본능적인 동경, 또는 욕망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합니다. 죽은 지 한참 지났지만 여전히 과학 교과서 등지에서 이름을 볼 수 있는 ‘복제 양 돌리’등이 그 욕망의 흔적이죠. 하지만 이런 연구를 통해 만들어진 인간은, 얼마나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요? 그들은 완전히 인간일까요? 진실된 인간일까요?
「안드로이드는 ‘은퇴’를 꿈꾸는가?」는 법정 스릴러라는 형태를 통해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인간을 인간이게끔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많은 학자들 사이에서도 인간, 혹은 인간성이라는 것에 대해서 정의내리는 바는 다양합니다. 그리고 그 지점이 이 단편이 주목하고,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지점입니다.
법정에서 변호사 측은 복제인간 장영수에게는 인간성이 결여되었음을 근거로, 장영수가 ‘사람을 죽였을 경우’에 한하는 살인죄를 적용할 수 없으며, 새로 입법을 한다 하더라도 죄형법정주의에 근거해 입법 이전에 벌어진 장영수의 살-복제인간 사건에는 적용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펼칩니다. 반대로 검사 측은 불의의 일격을 맞은 뒤 유전자가 복제된 인간이라 하더라도 정신까지 완전히 같을 수는 없다며, 복제인간 또한 인간임을 입증해 방어하려는 움직임을 가집니다. 이렇게 둘이 논의를 주고받으며 원하는 판결을 얻으려 하는 모습은 법정 스릴러의 정석적인 모습이지만, 그 사이에서도 형이상학적인 고찰이 묻어납니다.
인간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인간임을 정하는 요소는 무엇입니까? 육체? 지성? 정신? 사회성? 모든 것이 대답일 수 있고, 모든 것이 대답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우리 자신들에게도 아직 명백하지 않은 존재이고, 영원히 답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고찰은 영화 “채피(2015)”, “알리타: 배틀 앤젤(2019)” 등에도 있었습니다. 인간성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안드로이드는 ‘은퇴’를 꿈꾸는가?」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복제인간 또한 인간일까요? 인간에 준하거나 같은, 혹은 그 이상의 이성, 지성을 가지고 있다면 복제된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혹은 위에 언급한 영화들처럼 인간 기반 사이보그나 기계몸이어도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작품 상에서 복제인간은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의 경계 상에 놓인,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진실된 인간이되 거짓된 인간인, 양면이 공존하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이 작품은 그러면서 인간성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질문은 작품이 던졌으니, 우리 모두가 대답할 차례입니다. “인간을 정의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하는 작품의 중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해 접어두도록 하겠습니다. 작품을 읽어주신 뒤에 열어주세요.)
작품이 전개되며 검사 측은 중대한 사실 하나를 발견합니다. 바로 법정에 서있는 장영수가 ‘원본’이 아닌 복제인간 장영수일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후 작품이 진행되며 사실상 법정의 장영수는 복제인간 장영수라고 못을 박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흐름이 바뀔 거라고 예상했지만, 변호사와 검사 양측의 주장이 “복제인간에게는 권리가 없다”와 “진짜 인간 장영수를 죽였으니 살인이다”로 바뀌었을 뿐,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입장은 바뀌지 않습니다.
“복제인간도 인간입니까?” 검찰측은 계속 “예”, 변호측은 꾸준히 “아니요”를 고집합니다. 이 지점이 이 작품이 법정 스릴러임을 공고히 하는 부분임과 동시에 아쉬움을 갖게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철학도로서 조금 더 본질적인 질문으로 다가가 인간성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싶어할 줄 알았거든요. 하지만 양측이 법적인 공방만 주고받는 구조로 인해서 본질적인 문제를 회피하고 법정에서 승리하면 그만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사건, 혹은 질문을 대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결말이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자 하는 글이었다면 아주 좋은 형태였지만, 법정 스릴러라는 형태를 띤 이상 김이 빠지고, 약하디 약한 결말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계속해서 법적인 부분에서 싸우던 둘을 제치고 갑작스럽게 독자에게 형이상학-또는 윤리에 관한 질문을 떠넘기는 모양새가 된 것 같습니다. 물론 작품에서 변호측과 검찰측의 주장을 동등히 다루고 있으니만큼, 법정 스릴러라는 형태에서 철학적 질문을 던지기에는 최악은 피해간 결말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본문에서 법만을 가지고 이야기를 끌고 가기보다는 조금 더 철학적인 질문에 집중을 했다면 결말이 더 납득이 가고, 독자로서 여운이 더 남았을 것 같다는 감상이었습니다. 서두에 서술된 대로, 법은 최소한의 윤리, 도덕입니다. 최소한이라는 것은 사회의 모두가 ‘여기까지는 납득이 가능하다’라고 말한 최저 한계선일 뿐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 최저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법정 스릴러로서는 법정 스릴러의 미덕에 충실한 것이겠지만, 철학적인 질문을 형식적으로나마 던지고 있는 작품이라면 최저 한계보다는 조금 더 나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기서 리뷰를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인간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해 합의가 가능합니까? 여러분이라면 장영수에게 어떤 판결을 내리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