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작가님. 작품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우선 사우라는 설정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군더더기가 없고 명확했기에 오히려 신선한 느낌이었습니다. 잘 활용하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아 기대가 많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읽고 보면 정작 사우가 큰 역할을 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제목에도 등장하는 작품의 중심적인 소재인데 등장하는 횟수도 적고 활용되는 방식도 단순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선생님 앞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기 위해 뭐라도 하겠다.’고 선언한 것 치고는 주인공이 너무 나이브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게 부담이 된다면 불구로 만드는 방식을 사용하면 될 텐데 가벼운 상처만 내거나, 가장 위에 있는 우두머리를 먼저 제거해 구심점을 잃게 하지 않고 구태여 맨 아래에 있는 녀석부터 처리해 일진들이 계속 활개치게 두는 주인공의 방식이 많이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거기에 본격적으로 일진들을 처리하기 전에 선생님에게 능력에 대해 자기 입으로 말해 놓고는 그 직후에 ‘대처도 다른 사람들에게 꼬리 잡히지 않게 확실하게 해두었다.’고 말하는 대목에 이르니 그저 당황스러웠습니다. 이런 전략(?)들의 동기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으니까 저로서는 주인공이 사실은 일종의 피학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믿을 것 같았습니다.
중심 소재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기에 스토리에도 진전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아무래도 주인공이 고통을 받는 가장 큰 이유가 일진들인 만큼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 후로 중심이 되는 적은 일진의 우두머리여야 할 것 같았는데 엉뚱하게 선생님과 대립구도를 세우고 말다툼만 하고 있으니 지금까지 긴 분량을 읽어온 입장에서는 허무한 마음만 들었습니다. 물론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가해자를 죽이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라는 것이 이 작품의 주제로 생각되는 만큼 선생님이 핵심적인 반동인물이 되는 것은 타당해 보였지만 둘 사이에 벌어진 갈등이 그다지 인상 깊지 않았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주인공이 계속해서 일진들을 죽이려고 하고, 선생님이 진심으로 그것을 막으려는 의도였다면 둘 사이에 무언가 극적인 사건이 벌어질 것이라 기대를 하게 되는데 결국 절정 부분에서 둘이 일으킨 가장 큰 사건이라는 것이 새벽 1~2시쯤에 전화 가지고 다툼하는 것이니 괴이한 느낌이었습니다. 솔직히 선생님도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주인공이 전화를 받았다 해도 밤새 통화를 할 수는 없을 터인데 전화를 끊고 나서 일이 터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못한 것인지, 차라리 주인공을 자기 집으로 데려와서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인지 저로서는 그 의중을 잘 헤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짧지 않은 분량의 소설에서 이야기 대신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이 학교폭력을 당하고 있는 주인공의 묘사인데, 너무 과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초반부에 학교폭력의 상황을 세밀히 묘사하는 것은 작중의 세계를 구축하고 후반부의 이야기에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필요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 후로도 같은 묘사가 반복되니 피로감을 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괴롭힘 당한다는 대목은 삭제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음악 수업 묘사나, 주인공이 토스트를 먹고 생활패턴에 관해 투덜대는 장면 등등은 왜 나와야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학교폭력을 당하는 주인공이 마치 구속된 것처럼 어떠한 방향으로도 제대로 행동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그대로 기술하기만 했으니 저로서는 학교폭력을 대리로 체험하는 경험만 한 것 같습니다. 학교폭력의 대리체험이라는 것이 가치가 없다는 말은 아니지만, 처음부터 대리체험을 시키려는 목적이었다면 도대체 사우라는 설정이 왜 등장했던 것인지가 궁금한 것입니다.
차라리 팬티를 내리고 극단적인 대리만족 판타지로 가서 주인공이 일진들을 협박해 우위에 서는 형식이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 건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