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의 발견
강추위가 물러가고, 따뜻하고 환한 빛이 들어오는 커피숍의 창가 자리에서 ‘어떤 이야기를 읽을까?’ 고르려는 때, 눈에 『소문이 들리는 산장에 가보셨나요?』들어왔다.
소문이 들리는 산장이라… 작품에 서서히 빨려들어갔다.
◆시간의 흐름, 호흡의 조절
이야기 초반은 주인공이 고향 ‘무영동’을 독백하듯이 읊는다. 이야기 중반은 주인공이 10살로 돌아가서, 그 나이의 시선으로 무영동의 소문이었던 ‘산장 또는 흉가 또는 별장’을 친구 보라와 함께 산장을 탐험한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한다. 이야기 후반은 기자가 된 산장 탐험 친구 보라를 만나서 그 곳에서 본 기이한 형상의 이야기를 대화와 독백하듯이 마무리를 한다.
이야기의 시간과 읽는 호흡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단편적인 시선이 아닌 입체적 시선을 필요로 하여 긴장감이 감돌았다.
◆작품과 리뷰어의 어떤 경험
작품의 중반 주인공의 나이 10살은 인지력이 발달하는 때이다. 눈이 카메라가 되어 사진 찍듯이 ‘찰칵!’ 찍은 특이한 현상은 시간이 꽤 흘러도 강하게 남는다.
『소문이 들리는 산장에 가 보셨나요?』를 읽고 리뷰어의 10살 때 친척집 동네에서 본 특별한 집과 많이 겹쳤다.
리뷰어의 친척집은 작품 속 분위기인 ‘무영동’과 많이 닮았다. 논밭으로 수놓은 곳. 젊은이가 떠나고 노쇠한 공간. 70~80년대 농촌 가옥의 개량화에도 제외가 되었는지 벽과 흙담이 무너진 집이 더러 있었다.
그 집에서 사람이 사는지 안 사는지는 개줄에 묶어놓은 개의 컹컹거림이었다.
읍내로 나가려면 시내버스인데도, 시외버스 요금으로 할증이 되는 외진 곳 중에서도 아주 외진 곳이었다.
마을이 빈곤하니 젊은이와 아이들은 없었으며, 명절 때도 나의 친척집만 아이들이 북적거렸다. 작품 본문의 「물 웅덩이에 고요히 갇혀 있는 기분」이 딱 맞았다.
전형적인 시골 오지의 분위기에 도드라진 집 한 채가 있었다. 제법 잘 지어진 단층 주택. 당시에 고급스러운 와인색 벽돌 구조물이었고, 다홍색 지붕이었다. 담장 너머로 보인 넓은 마당은 온갖 관상목으로 빽빽하게 있어서 집의 현관이 아예 안 보였다.
고급스러운 외관과는 다르게 눈으로 본 분위기는 거무름했고 음산했다. 당시에 어린 리뷰어는 호기심에 친척에게 그 집을 물어봤다.
“저 집은 왜 그래요?”
작품 본문에 나온 “거기 그 집?” 질문을 되돌려 받았다.
가장 유력한 소문은, “지역에서 돈 많은 사람의 어떤 집이다.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말고 근처 지나가면 보지도 말라.”
이후에 친척집에 갈 때마다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마실삼아 나와서 담장 앞에서 폴짝폴짝 뛰며 사람이 나오나 안 나오나 봤었다.
‘이 집에 사는 사람은 드라마의 예쁜 어른 여주인공처럼 생겼고, 우아한 드레스 원피스를 입고 교양있는 웃음을 짓고 나와서 이 많은 식물을 볼까?’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몇 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마당의 관상목은 잘 가꾸어진 게 보였으나 사람이 왔다갔다 하는 낌새는 없었다. 마치 그 집만 시간이 멈춰있는 느낌이었다.
무영동 사람들이 말한 추측,「모두 드나든다고 하지 사람이 살고 있다 하지 않았다.」
어린 주인공의 시선이, 리뷰어의 어린 시절 보게 된 집의 호기심을 절묘하게 표현했다.
「나무에 굴을 파고 사는 다람쥐」
이 작품을 읽고 다시 떠올렸다. 본문 마지막 문장,
소문이란 건 산 속에 심어두는 나무 한 그루나 마찬가지에요. 무성할수록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는 반증이란 말이죠.
리뷰 초반의 문장처럼, 리뷰어가 어린 시절 겪은 특별한 집은 10살의 주인공이 ‘무언가를 보고 놀라서 또는 친구가 갑자기 안 보여서 오싹했던 도망가고 싶은 산장 또는 흉가 또는 별장’ 은 아니었다.
리뷰어가 겪었던 ‘유력한 소문만 무성한 집’은 작품을 읽고 현재에서 떠오른 생경한 기억 – 어린시절의 추억 – 신비한 회상의 과정을 만들어줬다. 잊었던 어린 시절의 호기심과 긴장감과 기묘함을 절로 만들게 해 준 신묘한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