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극우 한남에 대한 신화적 형벌 의뢰(감상)

대상작품: 계명, 발광하다 (작가: 리리브, 작품정보)
리뷰어: DALI, 10시간 전, 조회 9

제목이 흥미롭습니다. 「계명, 발광하다」에서 ‘계명’은 주인공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작중에서 중의적이고 은유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특별한 단어입니다. ‘발광하다’도 그렇죠. 계명이란 인물이 발광을 하고 있다는 서술에서 느껴지는 한심한 인간의 이미지는 중반부 이후에 역시 중의적인 방식으로 짓궂게 변주됩니다. 제가 보기에 이 작품 전반부의 재미는 비장한 주인공을 놀려먹는 데에서 오고, 후반부의 재미는 그에게 내려지는 불가역적인 형벌을 감상하는 데에서 오는데, 그 과정에서 몇 개의 낱말이 핵심 부품으로 쓰이는 거죠. 이 분야에서 리리브 작가님의 언어감각은 언제나 돋보입니다.

 

계명은 극우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평범한 한국 남성입니다. 이런 인물이 평범함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실은 오늘의 한국이 짊어진 가장 문제적인 현상의 하나일 텐데, 따지고 보면 계명 정도는 오히려 덜 한심한 축에 들어간다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덜 한심한’ 계명에게마저도 자비 없는 형벌을 내리고, 나아가 그게 마땅한 일이라고 단호히 선을 긋습니다. 그러니 계명 이하의 존재들에게 이 작품이 취할 태도에 대해서는 길게 말할 것도 없겠죠.

 

이야기는 방구석에서 좁은 화면에 텍스트를 욱여넣는 간단한 행위만으로 세상을 좀먹는 게 실제로 가능해진 지금의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극우 한남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굴러가는 이런 행위의 기반이 되는 문화는 이미 그 자체로 덤핑이고 테러입니다. 나서서 전면전을 수행할 역량도 의지도 없는 인간들이 숨어서 테러를 일삼는 거죠. 당연하게도 이런 테러는 효과가 있습니다. 낱낱의 인간으로서는 하잘것없던 인간들도 익명으로 세력화된 뒤에는 무시할 수 없는 위협으로 자리하게 되는 겁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테러 행위를 종식시킬 방안이 현실적으로 요원하다는 겁니다. 어쨌거나 그들도 사람이니까요. 해충을 박멸할 때와 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는 없죠. 게다가 그들 또한 다른 시민과 마찬가지로 나름의 정치적 셈법을 가지고 자기네 세를 불리는 방식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현실에서의 싸움은 더욱 지난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 작품 「계명, 발광하다」를 바로 그런 사회적 맥락 속에서 유의미하게 읽었어요.

 

간혹 이야기는 현실에서 도무지 충족될 수 없는 욕망을 노골적으로 지향하곤 합니다. 종신형을 받아 수감 중인 어떤 범죄자에게, 아무리 생각해도 감옥은 너무 호사스러운 곳이거든요. 때로 그에 대한 벌은 죽음으로도 턱없이 부족해 보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찾아가게 될 곳은 결국 이야기의 세계일 텐데, 알다시피 우리는 종종 여기에서도 배신을 당합니다. 점잖은 이야기들은 대개 악인을 벌할 때에도 규범적 정의가 허락하는 범위를 준수하니까요.

 

「계명, 발광하다」는 일단 그런 규범적 정의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점에서 제게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이 작품은 은근히 뻔뻔한 구석까지 있어서, 한 인간을 끔찍한 고통 속으로 집요하게 몰아넣으면서도 그것이 그리 악하거나 부당한 일로 느껴지지 않게끔 쓰였습니다. 예로 이 작품이 21세기 극우 한남에게 최종적으로 내리는 형벌은 인간 삶의 규모를 아득히 초월하는 신화적 발상에 기대고 있고, 그건 계명이 극우 한남이라는 이유만으로 감내하기엔 분명 과한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애초에 그런 규범에 별 관심이 없고, 보는 동안 그 사실을 충분히 눈치챌 수 있게 쓰였지요. 여기서 계명이 지칭하는 것은 단순히 한 명의 극우 한남이 아니라, 극우 한남이라는 실체적이고 조직화된 현상 전체입니다. 제가 이해한 게 맞다면 「계명, 발광하다」는 그런 극우 한남 현상을 통째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리는, 다분히 유머스러운 이야기입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한 인간에게 죽음보다 더한 영겁의 벌을 내리면서 그것이 인간종뿐 아니라 그 자신에게도 더 이로운 일일 것이라 말하는 무심한 판결문은 어쩌면 21세기 극우 한남에 대한 가장 유쾌한 대응일 수 있겠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다는 이유로 독수리에게 영원히 간을 쪼아 먹히는 벌을 받았고, 시지프스는 신들을 기만한 죄로 영원히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려야 하는 벌을 받았습니다. 21세기의 극우 한남은 그보다 훨씬 추하고 잡스러운 짓을 벌이고도 무려 먼 우주로 추방되어 별이 된다는 그럴싸한 대접을 받게 되니, 이야기의 세계란 역시 근사한 곳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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