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SF어워드 본심에 진출한 브릿G 작품들 감상

대상작품: 온도계의 수은 (작가: , 작품정보)
리뷰어: Campfire, 19년 3월, 조회 130

https://britg.kr/community/freeboard/?bac=read&bp=79295

를 보고 흥미가 생겨서 쭉 읽어봤습니다.

작년도 수상작 중에 브릿G에 올라와 있는 작품도 있는데,

바로 이 작품입니다. 2017년 SF 어워드 중단편 부문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었죠.

 


작품 순서는 분위기의 경중에 따라 정했고, 먼저 소개하는 쪽일 수록 분위기가 가볍다.

‘플롯 구성에 특히 방점을 두는 작가’라는 평이 정확히 들어맞는 작품이었다. 207매라는 많은 분량은, 세 가지 파트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소설 초반에 제시된 위기는 세 파트에서 조금씩 변주되어 다른 방식으로 인물들을 곤혹스럽게 하지만, 공통적으로 ‘책임회피’를 목적으로 인물들이 서로에게 위험부담을 떠넘기는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같은 세 파트 다 같은 플롯이다. (위기발생)->(반목)->(타협안)->(실패=위기발생)->(반목)…의 패턴을 그려보면 된다.

한 가지 더 눈에 띄는 점은, 역시 문장이다. (관용사스러운 비유지만)스티븐 킹이 연상될 정도로 아주 진득한 문장을 구사하는 만큼,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글맛이 있는 작품일 것이다.

 

이런 프로그래머를 주인공을 내세운 SF는 일종의 생활밀착적인 느낌이 있어서 인기가 있는 듯하다. 로그를 뒤지고 코딩을 하는 것에서 전문적인 느낌은 있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전문적이지는 않은, 딱 적절한 수준의 전문성으로 인해 기존의 SF주인공들보다 다소 널널한 성격을 가진 새로운 타입의 주인공상을 SF에 도입할 수 있게 되었고, 이에 공감함으로서 SF란 장르의 진입장벽이 낮아지는 효과가 있어서일 것이다.

개인적으론 마지막은 좀 주인공의 행동이 치사하지 않았나 싶다. 아니, 거기서 그걸 내버려둬놓고 다시 만났을 때 얼굴에 철판 깔고 그 대사를 한다고? 라는 느낌.

 

헤겔이 말했다. ‘역사에서 사건은 두 번 반복된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말을 인용하며 첨언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이 작품은 작중 인물들은 진지하지만 사실 코미디스러움을(아무리 어둡게 보려해도 블랙코미디임을) 피할 수가 없다. 친구와 해외여행으로 러시아를 갔는데, 거기서 친구가 죽는다면 그건 비극이다. 하지만 이름이 ‘나폴레옹’인 친구가 러시아로 여행을 갔는데 죽으면 그건 좀 유머로 느껴진다.

이 작품도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이고, 인물들은 나름 진지한 이유로 행동하지만 어딘가 몹시 가볍다. 태그로 달린 ‘슬로우아포칼립스’처럼, 슬로우라이프가 연상되는 느긋한 분위기의 작품이다.

 

늘 그렇듯, 짧은 분량인데도 공모전에서 수상하거나 어느 곳에 노미네이트되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이 작품은 여러모로 의외의 매력이 있었던 작품이다. 분량이 긴 중편들이 오히려 하나의 확고한 컨셉을 잡고 일관되게 전개하는 데에 반해, 49매 분량의 짧은 이 작품은 읽고 나면 ‘아, 이게 이런 이야기였구나..’라고 이야기의 변화에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 있다(반전이랑은 느낌이 다르다. 복선을 깔고 미스디렉션을 걸며 마지막에 터트리는 그런 의미의 뒤통수가 아님).

마지막을 보면 타임리프물이 생각나기도 했다.

 

공포 단편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이고, 또 책으로도 한국 공포 문학이란 이름을 달고 나온 작품이긴 하지만, 역시 SF로서의 정체성 또한 분명히 존재하는 작품이다. 두 성향은 서로의 정체성을 깎아먹는 상극적인 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둘이 같이 있기 때문에 서로가 더 눈에 띄게 되는 상생하는 두 요소이다. 공포 문학 속에 있으면 SF적인 요소 때문에 눈에 띄게 되고, SF 사이에서는 공포 요소 때문에 눈에 띈다. 실제로 [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밤]에서 가장 특이했던 작품으로 기억한다.

‘오치가 있다’는 표현이 있는데, 사실 이 표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느낌으론 알겠는데 말로는 잘 안 다가온달까. 그래도 남겨두지 않기에는, 내게는 이 작품에 대한 코멘트로선 가장 적절한 문구라 일단 남겼다. 느낌적으론 ‘땋은 머리를 고정하는 마지막 매듭’, 같은 느낌의 말이다. 어쨌든 이 작품은 그 표현이 그대로 들어맞는다. 오치가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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