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밴더스내치를 재미없게 보았는가? 공모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진정한 의미의 회귀 판타지 (작가: 유권조, 작품정보)
리뷰어: bard, 19년 2월, 조회 1952

이번에 적는 리뷰는 조금 생뚱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하나는 예전에 본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를 생각하면서 <진정한 의미의 회귀 판타지>를 플레이했기 때문입니다. 둘은, 역시 마찬가지로 선택과 분기의 문법을 가지고 있는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Fate stay night)를 생각하면서 이 작품을 플레이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모 유튜버가 플레이하고 있는 <아마가미>를 잠깐 떠올리기도 했는데 이것은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볼수록, 후자를 재미있다고 생각하면서 전자를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작품이 제게 힌트를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고백하자면 저는 선택과 몰입의 문법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옛날에, 꽤 옛날입니다만, 중학생 때 영재 고등학교 준비를 하면서 사귀게 된 친구가 있었는데요. 그 친구는 컴퓨터와 미연시 게임에 관심이 많았고 저는 판타지와 필기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 친구가 어느 날 PDA를 가지고 와선 갑자기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를 하는 거에요. 당시에 한참 유행하던 게임이었고 저도 이름은 알고 있었습니다. 저도 “해 볼까…”라고 말은 꺼냈어도 실제로 플레이하지는 않았습니다. 선택하는 게 귀찮았거든요.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10분 안에 이해할 수 있는 게임의 구조를 ‘몰입’의 문법으로 재치환해서 4시간, 5시간 즐기는 방식이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친구는 열심히 게임을 플레이했고 저는 여기서 처음으로 아, 내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점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튼, 나중에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에 ‘헤븐즈 필’이라는 루트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그것을 음미하면서 갓 나스라고 말하는 제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는데요. 이것도 몰입의 문법을 그대로 나의 것으로 받아들인다기 보다는 그 문학성에 경도되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진정한 의미의 회귀 판타지>는 선택과 몰입의 문법에 익숙한 분들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 강풀 작가의 작품 중에 ‘타이밍’이라는 작품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걸작이라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시간을 10초 되돌릴 수 있는 주인공이 그 선택이 망할 걸 알면서도 계속 10초 뒤로 돌아가는 심정”을 망하는 선택지를 계속해서 택하는 심정으로 치환하면 선택과 몰입의 문법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작품에는 세 개의 엔딩이 존재하는데 저는 1 – 3 – 2의 순서로 보았습니다.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저는 꼼수를 썼어요. 그런 고로 유권조 작가님의 말을 따르지 않았던 거지요. 하지만 이것도 역시 작가가 의도한 바라면 사실상 꼼수는 꼼수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준엄한 경고가 경고가 안 되는 시점에서 저는 선택과 몰입의 문법에 저항하는 셈이고, 역시 뭔가 다르구만… 고개를 끄덕이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또 뜬금없는 이야기를 하자면 제 전공에서는 세계를 보는 관점이 크게 두 가지 존재합니다.

하난, 세계의 존재자(갑자기 분위기 진지해져서 죄송합니다)는 규칙과 규범에 따르게끔 강제되는 존재이며 안 지키면 합당한 처벌(punishment)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세계의 존재자는 인과법칙에 저항할 수는 없지만, 인간의 규범에 따르게끔 강제되는 존재가 아니며 자유와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입니다.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면 박살이 나겠지만 둘 다 말이 되므로 둘 다 지지자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만약 세계를 메타적인 관점에서 볼 수 있다면, 사실 둘은 동전의 양면이 아닐까요. 인간의 규범에 따르면 지켜야 할 것과 지키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한편으로 보면 이것이 창의성을 제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는데… 만약 규범이 없다면, 후자가 좋아하는 창조와 자유는 그저 카오스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게임에 규칙이 존재해야 그 규칙을 파훼하는 야리코미가 의미를 갖는 것인 셈이죠. 마찬가지의 유비를 비주얼 노벨 전체에 적용하자면, 선택과 규칙이 존재하기 때문에 꼼수가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밴더스내치에는 멋진 꼼수를 발휘할 여지가 없었고, 영상이라는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저는 밴더스내치를 재미 없게 보았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아마도요.

멋진 작품 감사합니다, 유권조 님. 사랑해요 유권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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