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이 게시된 지는 2017년이니 생각보다 오래 되었습니다만, 작가님의 소개글에 적힌 여유로움 탓인지 작품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 날 이후’를 본 후 제가 느낀 건 ‘이 분은 진짜다’ 라는 강한 확신이었습니다.
가상의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이 글은 과거에 여러 영화나 소설에 등장한 주제인 전쟁의 참상에 대하여 아주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묘사한 글인데 많은 묘사와 서술을 쓰지 않고 간결하게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전달하시는 작가님의 기술이 ‘아, 이 분은 프로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능수능란합니다.
현재 남과 북의 상황은 단편에 풀어내기엔 너무나 복잡하고 오랜 기간 쌓인 앙금들이 많아서 이런 주제의 글을 보면 지식이 많은 분들의 경우 배경 설명에 지나치게 지면을 할애하다 글읽기가 피로해지거나 이념과 감정에 눌려 글이 너무 무거워지는 경우를 더러 보았는데, ‘그 날 이후’ 엔 그런 기우가 전혀 느껴지지 않게 하는 얇지만 날카로운 이야기의 힘이 있습니다.
추측이지만 작가님은 한국군의 장교로 계셨거나 그에 상응하는 시간을 군 관련 기관에서 보내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작가님의 글에는 어떤 지식을 글에 넣으시기 보다는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를 연구하신 분의 통찰 같은 것이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저처럼 그 방면에 기본 지식이 없는 사람도 이야기의 주제인 전쟁에 몰입할 수 있게 됩니다.
아마도 그것은 분단된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모든 독자분들이 느끼실 공감대의 영향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에서 특히 감탄했고 최고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전투의 묘사입니다.
어떤 일이 생길 것인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상황에서 글에서 눈을 떼지 못 하게 하는 흡입력이 너무나 뛰어납니다.
부대의 이동, 소소한 대화들과 주인공의 좋지 않은 예감까지 앞으로 벌어질 사건을 앞두고 서서히 긴장감을 높여가시는 작가님의 솜씨는 어떤 스릴러의 장인 못지 않습니다.
몇 년전 보았던 미국 영화 ‘허트 로커’가 떠오르는 전투의 묘사는 복잡하지도 늘어지지도 않고 그 상황의 긴장감만 독자들에게 가감없이 전달되는데, 작가님이 많은 고민을 하신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겠지만 길게 풀어놓는 것보다 짧게 축약하면서 의미는 분명하게 전달하는 게 사실 상당히 힘든 일인 것 같거든요.
그리 길지않은 이 글 속에서 독자들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한반도에 살고 있는 내 삶은 어떻게 바뀔까?’, ‘전쟁이 끝난 후엔 어떻게 될까?’와 같은 작가님이 던져 놓으신 화두 속에서 고민하게 될 겁니다.
이 글에는 예전 월남전을 다룬 영화 ‘디어 헌터’의 느낌이 묻어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영화에서 너무나 평범하고 아름다웠던 젊은이들은 의미 없는 전쟁에서 다른 이의 생명을 빼앗고 자신의 영혼도 빼앗깁니다.
‘그 날 이후’의 주인공들도 평범한 대학생이었고 육상 선수를 꿈꾸었던 아름다운 젊은이들입니다.
그들은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전쟁이라는 환경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고 버텨내려고 노력하지만 다른 이의 생명을 빼앗은 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북한의 어린 소년병은 다른 이야기에도 자주 등장하는 클리셰입니다만, 빼앗기고 빼앗으면서 그 죄를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끔찍한 책임의 무게를 전달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생각합니다. 결국 주인공은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 속으로 다시 발을 들여놓게 되는데, 이것이 남겨두고 온 전우들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러시안 룰렛에 중독된 ‘디어 헌터’의 닉과 같은 것인지는 작가님만 알고 계시겠지요.
무거운 주제를 다룬 이야기라 처음에 진입 장벽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에 부족한 독자인 제가 감히 자신있게 드릴 수 있는 이야기는 이겁니다.
다른 어떤 것을 제쳐두고서 이 단편소설은 단언코 재미있습니다.
단편을 좋아하시는 분들과 전쟁물, 밀리터리물을 좋아하시는 분들, 순수하게 글의 재미를 추구하시는 분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훌륭한 글이라고 자신있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모쪼록 더 많은 독자분들이 이 글을 읽어보시고 작가님의 다른 작품들도 함께 읽어보셨으면 하는 바램 간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