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머금은 꽃 공모 브릿G추천

대상작품: 피를 머금은 꽃 (구 버전) (작가: 포그리, 작품정보)
리뷰어: 비마커, 19년 2월, 조회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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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평소에 웹소설 자주 읽으시는 분이라면 제 글이 웹에서 얼마나 통할지, 통하지 않는다면 어느 부분이 걸리는 지도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라는 얘기가 있어 여기에 얘기를 한정지어 보기로 한다.

얘깃거리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자면,

문장과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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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은 웹소설로서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물었지만, 이에 답하자면 ‘연재해보십시오.’가 가장 적절한 대답이 아닐까 싶다.

출판시장도 아니고, 연재하는 데에 무슨 걸림돌이 있단 말인가? 별로 성공할 것 같지 않은 글이 대박을 칠 수도 있고, 자신만만했던 글이 실패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이 글을 문피아에서 연재한다 쳐도, 71화까지 쌓아놨으니 비축분도 많고 충분히 도전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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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럼에도 한 번 탁상공론을 해보자면.

앞서 문피아를 언급했듯이, ‘제 글이 웹에서 얼마나 통할지, 통하지 않는다면 어느 부분이 걸리는 지’라는 말을 볼 때 추측해보자면, ‘웹’이란 브릿지를 가리키는 말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브릿지에서는 이미 연재 중이고 결과는 나와있으니, 이제와서 물어볼 필요는 없으니까.

이제 거기에다 판타지인 점, 1, 2권으로 끝나지 않는 장편인 점을 보면서 문피아를 떠올렸다. 만약 다른 플래폼을 염두해두신 거라면, 알려주신다면 아는 한도 내에서 따로 답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대표적인 웹소설 등용문인 문피아를 기준으로 살펴보자면(브릿지에서 타 플래폼 얘기하는 게 뭔가 이상하긴 한데..), 이건 그야말로 입지가 안 좋다. 작품을 식당이라고 쳤을 경우, 맛(작품성)도 중요하지만 역시 입지를 무시하지 못한다. 대학가에서 가성비 가심비가 좋은 값싼 음식을 팔아야 하는 것처럼. 혹은 시장에 분식집들 늘어선 곳에 뜬금없이 영국요리 전문점이 있다고 한다면 장사가 잘 될 리가 없듯이.

이 작품은 개인적으로 추측해보자면 문피아에서 크게 성공을 하지는 못할 것 같다.

물론 지금 작품을 보고 성공할 것 같다던가 실패할 것 같다던가 하는 건 결국, 나쁘게 말하자면 뇌피셜이 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문피아만 해도, 10년 전에도 여전히 양산형 판타지와 무협이 많았지만 ‘얼음나무숲’도 그런 문피아에서 연재해서 성공을 거두었다. ‘얼마나 통할지’에서 ‘통할지’의 기준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예를 들어 투베 1위가 목표라면 그건 누구에게나 어려우니 어렵다고 할 수 있다), 회당 1~2만씩 구매수가 찍히지는 않더라도 유료화를 해서 2~3천 명 씩 꾸준히 따라온다면 생계유지가 가능하니 ‘통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혹은 겸허하게 100명씩만 따라와도 통했다고 볼 수도 있고. 얼음나무숲이 1위를 찍었던 적은 없던 걸로 기억하는데(확실하지는 않다..), 그래도 본 사람은 많았고 책도 성공했다.

그럼에도 별로 성공하지 못할 것 같다고 한 이유를 들자면, 유명한 말을 근거로 간략하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그리고 문피아에서 먹히는 작품들을 보면, 대개 비슷한 이유로 성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공한 작품이 나오면 비슷한 스타일의 글이 우후죽순으로 나오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호랑이가 바다를 가리키며 ‘내가 저기서 살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물고기를 가리키며 ‘너는 쟤랑 다르게 비늘도 아가미도 없잖아’라는 식으로 근거를 댈 수 있을 것이다.

‘피를 머금은 꽃’은 문피아에서 성공한 작품들과 별로 닮지 않았다.

 

/3 문장

웹소설로서가 아니라 그냥 작품을 읽고 든 생각에 대해 몇 가지 풀어보자면, 우선 문장이다.

예를 들어 1화에 이런 문단이 있다.

…때문에 장정의 칼은 무엇하나 꿰뚫지 못한 채 얕은 상처만 남겼다.

아버지는 흠칫하며 걸음을 멈췄다. 뜨거운 피가 칼날을 타고 내려와 장정의 손을 적셨다. 장정은 쇳물이라도 닿은 것처럼 소스라치며 칼을 버리고 물러났다. 무게를 못 이긴 칼이 땅에 떨어지자 붉은 선혈이 아버지의 옷에 번져나갔다.

일단 위에서 ‘칼을 버리고 물러났다.’와 그에 이어서 ‘무게를 못 이긴 칼이 땅에 떨어지자 붉은 선혈이 아버지의 옷에 번져나갔다.’의 경우 흐름이 자연스럽지 않다.

우선 상황을 머리에 그려보자. 칼은 얕은 상처만 남긴 상태로 장정의 손에 들려있다가, 장정이 칼을 버리고 물러난다. 칼은 허공에 방치된 상태다.

이때 나는 과연 칼이 땅에 떨어지는 걸 보고 ‘무게를 못 이’겼다고 표현하는 게 자연스러운가 의문을 느꼈다. 이를테면 이런 묘사가 있다고 치자.

‘책상 위에 드라이아이스를 올려놓았다. 드라이아이스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가 무게를 못 이겨 책상 아래로 떨어졌다.’

자연스럽다고 느낀다면 할 말은 없는데, 내가 보기에는 명백히 이상한 문장이다. 논지를 정리하자면 ‘지탱하는 힘이 결여된’ 물체에게 ‘무게를 못 이’겼다는 표현은 이상하다고 할 수 있다. ‘어깨에 시멘트 포대가 하나둘 올라가기 시작했다. 여섯 개 째 되는 순간 나는 시멘트 무게에 못 이겨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라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탱하는 힘 없이 허공에 방치된 모든 물건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모두 땅으로 떨어진다. 자연법칙이다. 즉 이건 무게에 ‘못 이긴’ 게 아니다. 인력을 거스르려는 ‘지탱하는 힘’이 없기 때문에 애초에 ‘싸움 자체가 없었다’고 봐야 한다. 소설의 첫문장을 ‘카라는 마이클 타이슨과의 시합에 참가하지 않았다.’로 한다면 이상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저 문장 자체에는 오류가 없다. 카라가 타이슨과의 시합에 참가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니까. 그러나 카라와 마이클 타이슨은 시합할 일이 없고, 저 세계관에 마이클 타이슨이 존재하지도 않은데 저런 문장을 쓰는 건 어딘가 이상하다.

그리고 인과관계도 이상하다. ‘얕은 상처’로 인해 ‘붉은 선혈이 아버지의 옷에 번져나’가는 것은 알 수 있지만, 그 앞에 있는 문장이 ‘칼이 땅에 떨어지자’이다. ‘칼이 땅에 떨어지자->붉은 선혈이 아버지의 옷에 번져나갔다.’ 이것은 ‘까마귀 날자->배 떨어진다’는 말과 순서가 같다. 즉 상관없는 두 인과를 엮어놨다. 컷 어웨이를 의도한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차라리 아버지의 손에서 칼이 떨어지고 피가 번지기 시작했다면, ‘칼을 놓는 순간이 죽을 때다’ 같은 의미부여가 가능했을 듯).

계속 생각하다 보니 문득 ‘왜 칼을 찔렀을 때부터 선혈이 번지지 않고 칼이 떨어지자 선혈이 번지기 시작한 걸까? 칼에 시간을 멈추는 기능이라도 있는 건가?’ 따위의 생각도 들었다. 이 생각은 좀 어거지긴 한데, 이런 연출을 계속 남용하는 게 가끔 거슬릴 때도 있는 터라 겨우 1화에서 굳이 보여줄 필요가 있나 싶었다. ‘베고 나서 나중에 상처가 벌어지며 피가 솟구치는 식의’ 연출은 중간보스전 정도 전개된 후에야 써보는 연출이 아니었나 싶어서.

길게 적었다만 문장 몇 개의 모순을 지적하고자 하는 말은 아니다.

본론을 말하자면,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서인지 초반에는 전체적으로 힘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글이 무겁다. 무거워서 작가가 글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해 실수도 생기고 가독성도 떨어진다. 필력이 좋은 데도 불구하고 그렇다. 물론 이런 부분은, ‘읽는 도중에는 눈에 밟히거나 신경쓰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읽는 내내 ‘무의식 중에 글이 무겁게 느껴져서’, 다시 꼼꼼히 살펴보니 이런 부분이 문제였구나 하는 정도의 문제다.

비유하자면 어중간하게 무뎌진 칼처럼, 쓸 때는 별 생각없었지만 의식적으로 비교해보면 분명 처음 샀을 때보다 날이 무뎌져있고, 그래서 어쩐지 김밥이 잘 잘리지 않아서 한 줄을 썰면 김밥 한두 개는 옆구리가 터지는.. 그런 ‘기분 좋게 썰리지 않는=기분 좋게 읽히지 않는’ 문장이다.

‘단문 위주의 글’에 대비되는 문체를 뭉둥그러뜨려 ‘만연체’라고 했을 때, 만연체는 많은 딜레마를 안고있는 문체라고 생각한다. 아니, 딜레마라고 까지 표현하며 깊게 파고들지 않아도, 내가 하려는 말은 간단히 요약할 수 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만연체는 능숙하지 않으면 독이다. 이 작품의 문장은 뛰어난 수준이긴 하다. 뒤로 갈수록 점점 잘 가독성이 좋아지기도 한다. 다만 이게 작가가 작품에 익숙해져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내가 작품에 몰입해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찌됐건 초반 부분은 무거웠다. 이 작품을 읽기 시작한 첫 날에는 1화를 읽다가 중간에 나갔다. 그 다음 날에는 1~2화만 읽었다. 그그 다음 날에는 3~4화를 읽고, 어느 정도 지나고부터 10화 씩 쭉쭉 읽기 시작했으니.

 

유달리 아쉬웠던 부분 하나가 있어서 꼽자면,

“공포와 존경이 하나가 될 때, 우리는 그것을 경외라고 부르죠. 경외 받는 지도자는 굶주린 이에게 흔쾌히 곳간을 열어주면서도 쌀을 훔친 자는 가차 없이 베어버려요. 사랑과 증오를 아우르는 경외. 자비와 원칙의 양면성. 정말 멋지지 않아요? 아아, 어서 가로스 같은 분이 하늘을 잡고 이 죄 깊은 세상을 싹 쓸어버려야 할 텐데.”

쭉 다 적지는 못했지만 이전에 더 많은 문장이 있다. 어쨌든 저 문장은 주인공이 별 중요하지 않은 인물들을 모아놓고 하는 말이다. 만약 가로스 앞에서 했으면 이런저런 효과를 불러올 수 있었을 텐데도, 저 순간에 낭비를 함으로서 당장 사람들 사이에 침묵을 불러오는 정도로 효과가 그쳤는데 좀 아쉬웠다.

 

/4 인물

인물에 대해선, 따로 단락을 할애할 정도로 영양가 있는 의견은 아니지만…

나만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주인공처럼 비열한 애늙은이 캐릭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게 가장 컸다. 어른이 애처럼 구는 걸 보는 것처럼. 일종의 불쾌한 골짜기랄까? 개인적으론 카라한테 영 애정이 생기지 않았다.

 

/5

긴 작품이다 보니 리뷰를 정리하는 말도 다른 작품에 비해서 오래 걸렸다.

정리하자면,

이 작품의 결정적인 결점은 아마 이 작품에서 ‘가장 뛰어난 부분이 문장이라는 점’일 것이다. 오히려 다른 부분이 더 부각되었다면 웹에서의 성공 가능성도 긍정적이었을 거고, 브릿지에서도 더 많은 호응을 얻을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럼에도 문장이 좋다.

예를 들어 이런 부분.

사려 깊은 언니는 언제나 동생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세상에 대해 이해시켜줬다. 그것이 시아의 마지막 혈육이 알려준 사랑의 형태였다. -피를 머금은 꽃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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