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의심의 호러 궤도를 달리다, 끝내 따뜻하고 숙연한 도착지에 닿는 한국형 생활 호러 비평

대상작품: 특실 손님 (작가: 용복, 작품정보)
리뷰어: herrage, 5일전, 조회 12

산후조리원을 배경으로 한 호러 소설이라기에, 조금 경계하며 읽기 시작했다. 여성들의 아픔과 회복이 있는 장소를 배경으로 삼는 의도가 단지 ‘색다른 소재’ 차용으로 그친다면 독자로서 불쾌할 것 같아서. 평범한 직장인에, 보통 한국 남자의 감각을 지닌 남편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것을 파악하고서도 경계를 풀지 못했다. 건조하고 담백한 문체인데도 디테일하고 현실적인 묘사는 처음부터 강점으로 다가왔다. 작가님이 소설의 주요 줄거리를 사실상 전부 경험한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 소설에는 일지나 일기처럼 생활감이 선명하다.

시점 인물인 자람의 남편 형태는 감정 지능이 그리 높은 인물은 아닌 듯 하다. 자람이 겪는 몸의 변화와 고통, 신생아집중치료실에 있는 아들에 대한 복잡한 심경을 매 순간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하려 애써야 한다. 자신도 복잡다단한 희로애락을 겪고 있지만 미세하게 그것을 알아차리기 보다는 술로 괴로움을 모면하며 출근과 퇴근을 반복한다. 왜 형태의 시점을 택했을까? 원초적 감정을 생생하게 다루는 호러 장르에서 감정이 풍부한 인물을 시점으로 채택하는 장점이 클텐데. 궁금한 마음으로 읽어내렸다.

형태가 알코올 의존증을 보이는 중반부에선 스티븐 킹의 <샤이닝>을 떠올렸다. <샤이닝>도 <특실 손님>처럼 삶의 위기 상황에서 현실을 직시하고 감정을 인정하기 보다 술로 도피하는 남편(잭), 예민한 감각과 감정 때문에 실의와 불안에 시달리는 아내(웬디)라는 대립구도를 띄고 있다. 또한 남편이 귀신(환영)을 보지만 그것은 지극히 세속적인 인물의 가치관 때문에 계속 부정당하거나 알코올 부작용으로만 치부되는 설정도 유사하다. 그 사이 사건은 돌이킬 수 없는 클라이맥스로 치달아가고, 절정을 지나 해소와 결말로 나아가며 성장 소설로 변주된다는 점도 비슷하다.

무감각하고 무기력한, 당사자가 아닌 관찰자에 가까운 남편 형태가 한계를 깨고 나오는 후반부에 비로소 ‘시점 인물이 왜 남편인가’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부부의 아픈 미숙아 아들 ‘강민’이 무사히 퇴원하고 가정 육아에 돌입하는 후반부는 단순히 결말이라기에는 분량이 상당히 길다. 작가가 꼭 길게 넣어야만 했던 이야기인 셈이다. 형태는 강민이 집에 온 뒤에야 비로소 (매일 울고 짜증내며 젖에 집착하는 줄만 알았던) 아내/여성/엄마 ‘자람’의 강인함과 용기, 능숙함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도 용기를 내어 육아에 더참여하고 개입하려 애쓴다. 비관이 아닌 낙관의 마음으로 아이가 있어 그저 고맙고 행복한 부모가 되어간다.

그러니 작가님이 결국 다루고 싶었던 것은 남편/남성/아빠의 성장과 변화였던 것 아닌지. 임신-출산-육아에서 주변인으로만 머물지 않고, 그 경험을 함께 관통해나가며 자기 나름의 의지와 서사와 감상을 가진 남성 인물을 그려내려는 소설적 시도. 형태는 여전히 미숙하긴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발전된 배려심과 이해력을 보여주며, 집안의 분위기와 사회의 분위기 차이를 읽어내는 기민한 감수성도 획득한다.

<특실 손님>은 호러 매니아 독자에게는 너무 ‘순한맛’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덜 무섭고 덜 잔인하고 그래서 좀 어설프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장르의 문법을 철저히 재현하기 보다는 호러 장르 안에 머물되, ‘임신-출산-육아’ ‘부모되기’ ‘산후조리원’ 같은 순문학적인 소재를 택해 섬세하고 성실하게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결국에는 독창적이고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냈다. 좋은 소설은 대개 우리 모두가 겪는 평범한 일상을 비범하게 바라보는 작가 고유의 시선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때, 이 소설에서 배울 점이 크다.

불안과 의심의 호러 궤도를 달리다, 끝내 따뜻하고 숙연한 도착지에 닿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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