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의 끝나지 않는 트라우마 공모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죄책 (작가: , 작품정보)
리뷰어: 김귤, 19년 1월, 조회 49

이번 작품은 피해자의 끝나지 않는 트라우마와 죄책감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신학대 사립 유치원의 교사인 나는 남동생에게 강간당하고 낙태한 기억을 갖고 있죠. 내가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아직 배변습관이 미숙한 아이들의 뒤를 닦아주는 일입니다. 너무 깨끗이 닦아주다가 뒤가 허는 일도 종종 있습니다. 그런 나를 나 스스로 청소도구쯤 된다고 여깁니다.

나의 반에는 태현이란 아이가 있습니다. 식사도 잘 하지 않고 맨밥만 먹는 태현이는 나의 신경을 쓰이게 합니다. 태현이의 엄마는 자기 아들의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매번 다른 변명만을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는 둘이 카페에서 우연히 마주치면서 듣게 되죠. 태현이 엄마는 태현이를 홀로 키우는 미혼모였던 것입니다.

그 날 집에 돌아온 나는 악몽을 꿉니다. 태현의 엄마가 한 말과 자신의 기억들이 뒤섞입니다. 묻어두고 지냈던 기억이 태현이 엄마의 말로 인해 자극받은 것이죠.

성폭행을 당했었죠. 저항할 수 없었어요. 칼을 들고 있었거든요. 칼을 든 사람에겐 저항하지마라,고 형사였던 아버지는 말씀하셨어요. 저항하다 죽을 수도 있다, 죽는 것보다 더 나쁜 결과는 없다, 그런 식으로요.

(중략)

나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어요. 차라리 죽게 놔 두지… (후략)

나의 기억은 태현이 엄마의 꿈속 대사를 따라 재현됩니다. 오래전 그 기억을 다시 한번 되짚고 벗어나려 애쓰지만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깨어난 나는 태현이 엄마의 말을 떠올리지요. 강간당해서 낳은 아들이라고. 자신을 피해 도망치다가 치여죽은 남동생. 근친 강간범이었던 동생을 차마 자기 손으로 단죄하지 못한 나는 내 손으로 끝맺지 못했다는 미완의 트라우마가 남아있습니다.

영민이, 걔 천국 갔을까? 아빠가 그렇게 말했잖아. 회개하면 천국간다면서. 걔 회개했을까? 그래서 천국 갔을까?

나의 꿈속에서의 아버지처럼 실제로 나의 아버지는 남동생 영민이를 두둔하는 방조자였습니다. 가족이라는 이름 하에 딸의 상처에는 눈감아버린 비겁한 인간은 끝내 딸의 물음에도 외면한 채 사라집니다. 태현이는 죽은 남동생 때문에 생긴 아이가 살아있다면 그 나이쯤 됐을 거라고 합니다. 나의 트라우마엔 남동생의 죽음, 성폭행으로 인한 기억, 그리고 낙태한 아이로 인한 고통까지 있는 거겠죠.

태현이 엄마는 나에게 자신의 성폭행 기억에 대해 털어놓습니다. 태현이의 친부가 어떤 외양이었는지 말입니다.

몸집이 작았어요, 키도 작았고, 아토피도 있었어요.

태현이를 보면서 남동생과 닮지는 않았는지 자꾸만 찾아보게 되는 나.

남동생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한 격투기를 배울 돈을 위해 나는 나이든 남자에게 몸을 팔았습니다. 그러나 그 남자는 나와 잔 뒤에 두번 다시 나를 만나지 않았고 나는 또다시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었죠. 나를 청소도구쯤으로 생각한다던 서술에서 느꼈듯 나는 성폭행 피해를 입고 난 뒤 스스로를 존중하지 못합니다.

누나는 나랑 가족하기로 하지 않았냐, 가족끼리벌어진일인데용서해주고넘어가면안되겠느냐……

나의 트라우마는 아버지에게서 들었던 그 말을 태현이 엄마로부터 다시 듣는 순간 태현이가 죽은 남동생의 자식일지 모른다는 강박에 빠지게 만듭니다. 남동생은 강간범이고 그의 아이는 더러운 씨앗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강박은 내가 낙태한 아이와 그의 친부인 남동생을 태현이에게 자꾸만 투영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극복하지 못한 기억인 셈이죠.

사실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한 비밀, 태현이 엄마가 나에게 털어놓았듯 나와 같은 경험을 한 그녀에게 내 기억을 털어놓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겁니다. 남동생의 기억을 떠올린 나는 우발적으로 태현이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합니다. 이후 태현이 엄마와 카페에서 다시 만난 나는 나의 성폭행 피해사실을 털어놓습니다. 그러면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얼마전에 걔한테 당한 사람이 또 있더라고요. 아이까지 낳고 말이에요. 그래서 그 애를 죽였어요. 후련하더라고요. 제가 똥을 잘 닦거든요. 처음엔 더럽다가도 항상 닦고 나면 상쾌해지는데, 딱 그랬어요.

처음에 나왔던 아이들 뒤 닦는 일은 이 부분을 위한 복선이었나 봅니다. 매듭짓지 못한 일. 남동생은 차에 치여 죽었고 나는 성폭행, 성매매, 낙태에 대한 기억 등 어떤 것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태현이의 친부가 남동생 영민이가 맞는지는 알려주지 않지만 여러 정황상 유사합니다. 다만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장치로 쓰였죠. 남동생의 아이가 더러운 씨앗이듯이, 태현이 엄마를 강간한 그 놈의 자식인 태현이 또한 그와 동일시됩니다. 나는 그 애를 죽여서 상쾌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의 트라우마는 계속 이어지고 있으니까요.

태현이는… 애한테 무슨 죄가 있겠어요. 영원히 아빠의 존재를 모르고 잘 커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어머님은 그런 마음도 없으신가요. 어떻게 그런 애를 키우실 생각을 하셨어요?

수술할 돈이 없었어요. 그래서 낳았고, 이렇게 살고 있네요.

태현이가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나의 목소리는 울음이 섞여 있습니다. 결말에서 나의 죄책감은 한없이 고조되네요. 태현이 엄마와 나는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나는 아이를 낙태하고 증오와 죄책감 속에서 살았고 태현이 엄마는 아이를 낳고 자신의 상처를 묻어두며 지냈죠. 둘 모두 피해자이며 그에 대해 책임져야 할 사람은 부재한 상태입니다. 극복하지 못한 정신적 피해는 ‘나’가 태현이를 살해하는 데까지 몰고 갑니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되고 증오는 약자를 향해서 계속 흐르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성폭력이 두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해자에겐 하나의 사건이지만 피해자에겐 비극의 연속입니다. 소설 속에는 친족에 의한 성폭력과 데이트 성폭력을 모두 다루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이러한 비극의 끝맺음은 어떠한 경우에도 성폭력에 대해 방관, 두둔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와 온당한 처벌과 예방을 통해서 가능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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