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서울 도심은 급작스런 정적을 맞이합니다. 소리만 들리지 않을 뿐 다른 것은 하나도 없는데도 사람들은 이 상황에 당황하며 쉽사리 적응하지 못합니다. 그런 정적 속에서도 차분하고 여유로운 곳이 있습니다. 바로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수화 카페입니다. 이 곳에 오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든 청각에 손상을 입었고 정적 전과 후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편하죠. 모든 사람이 동일한 선상에 섰으니까요.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 사람들은 불편함을 겪게 되었고 이미 청각을 잃었던 사람들은 편안한 침묵의 세계에서 능숙하게 수화로 대화를 합니다. 수화 카페의 직원인 여자 또한 심한 이명을 겪고 있는 청각장애인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설정함으로써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위치를 역전하는 것은 무척 흥미로웠고 극적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하던 비장애인으로서의 위치에서 내려와, 청각장애인이 처한 현실을 다시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역전하여 하나씩 보여줍니다. 어눌해진 발음을 듣고 웃는 사람들, 소리 없는 공간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사람들, 그리고 밖에서 소리 없는 공간을 찾아오는 사람들. 소리 없는 공간에서 대화하기 위해 수화를 배우는 나의 모습 등.
이 상황에 익숙해지니 많은 것을 새로 보게 돼요.
소설 본문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작가의 의도는 이 대사 한 줄이 아니었을까요? 우리가 일상에서 장애인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것들을 정적이라는 상황을 통해 새롭게 조망하고 살펴보자는 것. 소리가 돌아오자, ‘나’가 만났던 장애인들은 현실처럼 사회 속으로 어딘가 사라지고 찾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래도 소설 속에서는 마지막으로 소리 없는 공간인 수화 카페는 지켜주었습니다. 장애인들이 편히 찾고 쉴 수 있는 곳으로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어떤지 이제 돌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