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쪽과 저쪽 사이에서 떠도는 군상들 공모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이쪽이세요 (작가: , 작품정보)
리뷰어: 김귤, 19년 1월, 조회 63

상대방이 나와 같은지를 묻는 이쪽이세요? 라는 말을 통해서 ‘나(성환)’과 ‘이쪽’의 관계는 시작되었다. 게이냐 레즈냐 혹은 바이, 트랜스젠더 그런 말을 굳이 붙이지 않고도 이쪽과 저쪽의 경계는 흐릿한 듯 명확하다. 사회에서 권장하고 길러내는 인간의 형태와는 어딘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이쪽이라고 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회는 굳이 이쪽을 돌아보지도 않는다. 인권이란 말이 나왔을 때나 흘끔흘끔 돌아볼 뿐이다.

이쪽은 갑작스레 죽어버렸다. 퀴어문화축제에서 SUV차량에 치여 사망했다. 사람이 뒤엉켜 어지러운 현장에서는 교회신도들과 혐오자들이 많았다. ‘나’는 그때의 충격으로 이쪽이 언제 죽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매번 악몽을 꾼다. 11월의 언젠가인 줄로만 아는 ‘나’는 1일부터 30일까지 이쪽의 제사를 지낸다. 11월 1일부터 시간의 흐름 순서대로 소설이 전개되는 것이다. 글쓴이는 2018년도에 개최하려던 인천퀴어문화축제의 모습을 글에 반영했다. 당시 여태까지의 반대 시위와는 달리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단체행동으로 인해서 몸이 끼어 호흡곤란으로 기절하거나 옷이 찢기고 생채기가 나 다치는 사람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혹여나 당시에 사람이 다치면 어쩌나 혹은 죽으면 어떡하나 걱정하던 퀴어들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한편으론 반대 집회에서 목놓아 고함지르던 사람의 발언도 떠오른다.

“우리는요? 우리보고 죽으란 거잖아요!”

주객이 전도되도 한참 전도되었다. 꼴보기 싫으니 인천을 떠나라던 외침. 인천에 천주교 세력이 큰데 왜 여기서 사서 고생을 하느냐던 비아냥과 핀잔들. 그리고 혐오발언의 아수라장. SNS에서도 혐오발언은 멈추지 않았다. 수년 전 자살로 생을 마감한 성소수자 인권운동가의 이름을 입에 올리며 인권을 위해 왜 죽지 않냐고 조롱하던 계정들을 수없이 기억한다. 퀴어는 이들에 대해 똑같이 대응할 수 없다. 향후 다른 소수자에게 자신의 행보가 발목을 잡을까봐 참을 수밖에 없다.

나는 이쪽을 떠올렸다. 이쪽을 차로 치어 죽인 년을 생각했다. 너같은 쓰레기들 때문에 우리가 죽어난다고, 알아? 나는 그렇게 외쳤다.

‘나’의 삶은 버겁다. 비록 가족은 그를 받아들였지만 ‘이쪽’은 끝내 커밍아웃도 하지 못하고 죽었다. 가족에게 인정받는 문제 외에도 사회적으로 융화되고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큰 산이 남아있다. ‘나’는 ‘이쪽’이 죽고 난 뒤, 식당에서 혐오발화를 내뱉던 사람을 우발적으로 살해하고 교도소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고 혐오발화를 내뱉지만 당사자에게 목숨과 직결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의 이름으로 아멘을 외치던 이들의 신앙은 환불 앞에서는 예수도 별 수 없는 것으로 묘사된다. 신앙은 핑계고 혐오가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이쪽’을 추억하고 회상하며 애도하는 ‘나’의 나날들이 이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카페에 죽은 남자의 동생이 찾아와 난동을 부린다. 아무 짓도 안하고 가만 있는 사람을 죽인 게이새끼라며. ‘나’는 그를 보며 죽은 남자와 닮았다고 생각하며 같이 달려들어 싸운다. 카페단골인 요양원 간호사 ‘세령’이 말리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났을지 알 수 없다. ‘나’의 앞에서 요양원 할아버지가 게이라던 이야기를 마구 늘어놓던 세령도 ‘나’가 게이인 것을 알고 놀라 순간 멈칫한다. 아직도 이게 놀랄 일이라니, 이런 묘사가 어색하지 않다는 게 서글프다.

11월 30일이 되는 마지막 날, 카페에서 나는 ‘이쪽’의 환영을 본다. ‘이쪽’의 기일은 오늘인가보다고 ‘세령’에게 말한다. 채워지지 않는 ‘이쪽’의 자리를 제사상의 음식으로 채우려는 ‘나’의 몸부림이 유독 애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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