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인륜적 농담 소설 공모(감상)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좀비말살계획 (작가: penguin, 작품정보)
리뷰어: Campfire, 19년 1월, 조회 277

어찌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글로 웃기는 게 아닌 코미디는 대체로 허망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TV를 볼 때나 일상생활을 할 때 꺽꺽대며 웃기도 하지만 지나고 나면 대체로 그때의 즐거움에 대해 초연해진다.

내가 여러 번 돌려가면서까지 보는 코미디는 글로 웃기는 작품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좀처럼 보기 힘들다. 있더라도 빵빵 터지는 웃음보다는 피식 하게 되는 정도가 대부분이다.

글로 사람을 웃기는 건 힘들다.

그리고 이렇게 밑밥을 깐 것에서 말의 요지를 알아챈 사람도 있겠지만, 요컨대 이 작품은 굉장히 웃기는 작품이다.

이걸 보고 웃었다고 하면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지만.

 

예전에 이런 적이 있다. 몇 년 전 일인데, 반인륜적 농담봇이란 계정을 추천받았었다.

반인륜적인 농담이란 어떤 것인가 하면, 결국 말장난인데, 블랙코미디다.

아무래도 순한 맛의 블랙코미디가 늘어나다보니 더 수위가 강한 버전의 블랙코미디를 반인륜적 농담이라고 부르기로 한 모양이다. 하드록과 헤비메탈의 차이랄까.

예를 들면 이런 농담이 있다.

내가 처음 시작했을 때 그 애가 살아있었으면 네크로필리아가 아닌거지?

처음엔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그때부턴 그냥 웃기기만 하다. ‘어떻게 이런 쓰레기 같은 발상을 할 수 있지(ಠ ∩ಠ)’가 ‘어떻게 이런 쓰레기 같은 발상을 할 수 있지ㅋㅋㅋ’로 바뀌게 된다.

이게 왜 웃기게 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웃기다.

“어떤 사람 머리에 페인트가 담긴 양동이가 떨어진다면 그건 웃깁니다. 하지만 만일 양동이가 그 사람의 두개골을 깨서 그 사람이 죽는다면 웃기지 않습니다. 그건 비극적이죠. 그러나, 만약 어떤 사람이 소시지 만드는 기계에 떨어져서 가게에서 팔리게 된다면 그건 웃깁니다. 동시에 비극적이기도 하고요. 대체 이게 왜 웃긴 걸까요? 전 모릅니다. 확실한 건 이 난해한 부분 어딘가에 모든 블랙 코미디의 비밀이 있다는 겁니다.” -로알드 달-

그러고 보면 다크나이트에서 조커란 캐릭터가 인기 있는 이유가 이해가 안 됐던 적이 있다. 범죄자 캐릭터를 저렇게 좋아한다는 것에 사람들의 인간성을 의심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조커 뿐 아니라 많은 악역들이 인기가 있고, 나도 요즘은 좋아한다.

 

위에 인용한 농담과 관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이 작품은 읽기 어려울 것이다. 블랙코미디로만 이루어진 작품은 아니지만, 빈도가 워낙 높으니까. 6화에서 노인과 바다로 사람을 웃기는 센스를 보여준 후로 3, 4화에 한 번씩은 저런 유머로 웃었다.

웃지 않은 2, 3화가 재미없었던 것도 아니다. 스토리를 세일즈포인트로 삼은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스토리도 나쁜 편은 아니고, 뭣보다 문장이 좋다. 잠깐 집고 넘어가자면, 문장이 좋다는 건 필력이 좋다는 것과는 좀 다른 의미로 썼다. 뭉그러뜨리자면 필력이 좋다고 해도 상관이 없지만, 좀 더 엄밀하게 표현하자면 대상을 바라보는 시점이 좋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필력이 좋다’가->’뻔한 소재로 써도 재밌는 작품’으로 이어진다면,

‘시점이 좋다’->’참신해서 재밌는 작품’으로 이어진다. 가 될 것이다.

어떤 시점이냐면, 긴 말 않고 인용해보는 게 빠르겠다.

벙어리 옆에 평생 공화당을 지지하고 맥도날드에서 왜 일년 내내 맥립을 팔지 않느냐고 점원에게 항의하는 멍청이를 닮은 추레한 백인 노인이 테오 가슴팍을 밀었다. 테오는 그가 버스를 타면 옆자리가 비어도 같이 앉으려는 승객이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건 가장 인상적인 구절에 속하지는 않지만, 그 구절들은 아직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한 즐거움으로 남겨두고자 비교적 중간 레벨이라고 생각하는 구절을 가져왔다.

그러나 중간 레벨이라고 해도 이 구절도 만만치 않다.

백인 노인을 ‘평생 공화당을 지지하고 맥도날드에서 왜 일년 내내 맥립을 팔지 않느냐고 점원에게 항의하는 멍청이를 닮은 추레’하고 ”버스를 타면 옆자리가 비어도 같이 앉으려는 승객이 없을 거라는’ 식으로 묘사하는 건 적어도 나는 할 수 없던 종류의 묘사다.

만약 나였다면 그냥 ‘추레하고 늙은 노인’이라는 식으로 썼지 않았을까? 심지어 내가 쓴 문장은 제대로 된 문장도 아니다. 이미 노인이라고 쓴 시점에서 늙었다는 묘사는 필요 없으니까.

어쨌든 이렇게 대상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묘사할 수 있다는 게 결국 웃음으로도 이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사람이 소시지 기계에 떨어진다는 것도 평범한 시점에 선 사람에게는 쓸 수 없는 비극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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