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설정의 동양풍 판타지 <나무 대륙기> 공모(비평)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나무 대륙기 (작가: 은림 출판, 작품정보)
리뷰어: Ello, 17년 2월, 조회 452

<나무 대륙기>는 이미 완결된 책으로 나와있지만

이 리뷰에서는 브릿G에 공개된 17회차까지의 내용만으로 쓴 리뷰입니다.

 

1.

매우 목말라했던 동양풍의 판타지인지라 초반은 인물과 배경을 이해하느라 늘어지기 마련인데도 집중해서 읽었다. 환상적이면서도 특별한 배경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작가가 새로 창조한 세계 속에서 빠져 나오기가 힘들었다. 아직도 한 편 한 편을 열 때마다 건너가기는 쉽고 건너오기는 아쉬울만큼 그 세계에서 노닐고 싶다. 놀랄만한 상상력이 아닐 수 없다.

무화가 아홉나라 말을 할 줄 안다고 했으니 최소한 아홉 나라 이상의 나라의 등장과 옥인과 어둔 등의 새로운 형태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이곳에서는 사람만이 주인공이 아니다. 나무도 노래를 할 수 있고 배 한 척, 집 한 채에도 방비를 해서 어둑에 대비한다. 이러한 설정 하나 하나에서 얼마나 세심하게 작품을 구상했는지 엿볼 수 있다.

동양풍의 판타지를 보면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떠오른다. 밤이 되면 귀와 요괴들의 세상으로 바뀌는 곳. 공존하고 있지만 딱히 인식하지 않으면 눈치재지 못하는 어둑을 닮아있다. 잘 짜여진 구성과 개성있는 캐릭터들이 있다는 점도 닮아있는데 그 곳에서는 음식을 먹으면 본래의 세상으로 돌아 갈 수가 없다. <나무 대륙기>의 금기는 어떤 것이 있을까. 대부분의 금기는 어둑과 닿아있다. 이름을 부르면 안된다던가, 빛나는 파란 눈(마노가 준 목걸이)을 하면 어둑과 접촉할 수 없다거나 어둑을 통해 이동을 할 때에는 보지 말고 듣지 말고 숨쉬지 말아야 한다던가 하는 점이다. 금기, 뒤를 돌아보면 안된다는 것과 같이 금기는 지켜지지 않을 수록 사건이 커지기 마련인데 이 글에서는 과연 금기를 어디까지 지키고 어디까지 지키지 않을 것인지도 궁금증을 가지고 지켜보게 된다.

 

2.

브릿g에서 준비한 매거진을 읽다가 <나무 대륙기> 작가와의 인터뷰를 읽어봤는데 생각과는 다르게 주인공이 무화와 서미 둘이라고 적혀있었다. 아직은 쌍둥이 같은 그 친구들이 모두 두각을 드러냈다기 보다 무화의 활약이 더 두드러지는지라 무화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서미의 활약상은 이제부터 시작인걸까.

무화는 주인공 버프가 강한 편이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산전(이름없는 산) 수전(마노의 노래하는 나무 상단)을 다 겪었다. 아홉 나라 말을 모두 할 줄 알며, 싸움도 마치 해적처럼 잘 한다. 왼팔은 쓰지 못한다는 핸디캡이 있었으나 이마저도 단풍의 팔찌를 통해 해결됐다. 그 왼팔에는 어둑이 스며있고, 특정 어둑인 밤을 통해 먼거리도 단숨에 이동이 가능하다. 이정도는 되어야 어린 여자 아이들을 홍등가에 팔아넘기는 험한 세상에 자신을 지킬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런 것치고 조금은 과하지 않나 싶다. 이런 점 때문에 당차고 미모를 이용할 줄 아는 반공주인 서미보다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도 있다.

야욕도 있으며 총명하나 그 나이 또래다운 질투심도 있는 서미는 사실은 공주가 아닐 수도 있다는 반전이 상당히 일찍 등장한다. 남이 모르는 상태에서 복선을 하나 둘 깔아두는 것이었다면 독자는 언제 들킬지만 걱정하며 읽을텐데 혼인을 하자는 협박용으로 이용해버린 뒤라 이제는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 혼약을 할지 아니면 이를 역이용할지를 기대하며 볼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전개에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이 소설에서 가장 신경써서 탄생시킨 존재는 아무래도 어둑이 아닌가 싶다. 이 세계에는 절대자는 없다. 대신 불길하면서도 두려움의 대상인 어둑이 있다. 이 불길하고 두려운 존재에 대해 어떤 제의도 행해지지 않은 부분은 좀 의아하다. 보통은 알지 못하는 것, 집 한 채를 꺼지지 않는 ‘물’로 태운 어떤 존재에 대해서는 그 화를 피하기 위해 제의를 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크게는 자연재해에 대해 인신공양으로 해결을 하려고 하거나 작게는 음식을 바치는 등의 제의가 행해지지 않고 단지 방비만으로 쫒으려고 하는 점에 대해 조금 더 깊게 고민해보았다.

어둑은 고래등걸에서는 미신이 아니었다. 그리고 어둑을 해칠 수 있는 적대적인 관계의 옥인도 존재했다. 아마도 너무 하찮게 생각해서 제의를 행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너무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서 행하지 않은 것 같다. 어둑에 대해 알려져 있는 사실들이 꽤 많았다. 단수가 아니라거나 너와 나의 구분이 없다거나 그늘이 없으면 스며들지 못한다던가 하는. 아마도 그러한 사실들 때문에 제의가 소용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어둑은 마치 이영도 작가님의 두억시니 같다. 너와 내가 구분되지 않아 모두 나라는 ‘나들’이라는 복수형을 탄생시키고 그 중에서도 특별히 공을 들인 ‘나’는 ‘갈바마리’라는 이름으로 사모의 곁을 수행하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밤’이라는 이름을 받은 어둑은 특정화되어 무화를 돕는다.

어둑에 대한 설정이 앞으로 나올 동양풍 판타지에 두루 활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질만큼 어둑에 매료되었다.

 

3.

‘밤’이라는 어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름에 관한 설정을 한 번 더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주인공의 이름은 무화와 서미, 어둑에게는 ‘꽃이 없지만 꽃, 작고 붉고 달콤한’ 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름을 본다니 독특한 발상이다.

이름을 보는 발상말고도 이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설정도 있다. 어둑에게 ‘밤’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기 때문에 어둑은 ‘너의 밤’이 되었다. 밤 말고도 다른 어둑이 존재했는데 다른 어둑을 부르면 그 어둑 역시 밤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밤이 다급하게 무화를 말리기도 한다. 그러니까 밤은 김춘수의 <꽃>이란 시에 빗대어 생각하면 무화가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구분되지 않은 몸짓이었다가 무화가 이름을 주는 순간 꽃이 된 것이다. ‘밤’이란 이름의 꽃.

어둑이 나오기 때문에, 부르면 존재하기 때문에 어둑이 사는 산은 ‘이름 없는 산’으로 명명되었다. 이름을 부르면 안되다니 해리포터 속에 ‘이름을 부르면 안되는 그’인 볼드모트가 생각나지만 이는 한국적인 요소도 있다. 이름이 갖는 주술성 때문에 귀한 자식일 수록 아명으로는 흔한 이름을 지어준다거나 동물의 이름으로 고쳐서 수명을 늘린 맹감 본풀이 등을 떠올려 본다면 아주 낯설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름의 중요성. 어둑과 더불어 아주 매력적인 설정이다.

 

4.

<나무 대륙기>는 묘사가 세세하고 공감각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흔히 볼 수 없는 비유를 다량 사용해서 색다르면서도 낯선 느낌을 받았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공간이 가상의 세계인 점을 고려하면 잘 어울리는 문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은 지칠 때도 있는데 예를 들어 ‘비에 씻긴 서늘한 바위 같은 청명한 향기’ 같은 수식어 때문이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비가 내리는 장면을 상상하고 그 비에 씻기는 바위 그리고 서늘한 촉감과 맑은 향기를 떠올려야 한다. 시각과 촉각과 후각을 동시에 활용하지 않으면 정확하게 전달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는 읽는 내내 모든 감각이 깨어있어야 했다.

이런 문체 때문에 꼼꼼히 읽기에는 피곤했지만 다시 두 번 세 번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도 있었다. 반하는 미모를 활용하는 인물이구나, 잘생겼구나 정도가 아닌 조금 더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는 사람처럼 읽을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5.

공개된 분량은 두 권의 책에 비하면 적은 양이라 완결까지 다 읽고 리뷰를 쓰고 싶은 유혹을 느꼈으나 아마도 브릿g에 무료 공개를 하면서 리뷰 공모를 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지레 짐작(!)해서 17회까지만의 내용만을 가지고 리뷰를 적었다. 이제 리뷰를 쓰고 나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읽어 내려 갈 것 같다.

한국풍 판타지라고 부르기엔 이 작품의 세계를 너무 축소해서 보는 것 같고 동양풍 판타지라 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앞으로도 많은 작품으로 동양풍 판타지에 목마른 독자들에게 단비같이 내려주면 좋겠다. 참 좋겠다.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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