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의 위치에서 본 케이팝 슈퍼히어로 SF 비평

대상작품: 아퀼라의 그림자 (작가: 히어로 창작단편선, 작품정보)
리뷰어: 샤유, 17년 2월, 조회 240

[아퀼라의 그림자]를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압도적인 정보량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독자들에게 딱히 친절하게 안내해주겠다는 생각 없이, 처음부터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상황에 던져두는 것이죠. 아마 이 [이웃집 슈퍼히어로] 단편집에 실린 작품 중 진입장벽이 가장 높을 겁니다. 많은 면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케이팝 산업을 재료로 쓰고 있다고 해도요.

그리고 작가는 딱히 우리가 이 작품에 대해서 덜 낯설어지길 바라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극이 진행되는 내내, 케이팝과 슈퍼히어로 이야기와 SF가 복잡하게 혼합된 이 세계는 외부에 있는 우리들로썬 알 수 없는 정보들을 끊임없이 던져줍니다. 그러는 동안, 극의 메인 ‘이야기’인 빅 배드 ‘라스푸틴’을 히어로 그룹인 ‘아퀼라’가 처리하는 이야기는 뒤편으로 물러나 있죠. 당연하지만, 격렬한 액션 같은 건 기대하면 안 됩니다. 대부분은 간접적으로 뒤늦게서야 이야기되는 편이죠.

그리고 이런 태도는 화자가 서 있는 위치가 많이 반영되어 있는 편이기도 합니다. 아퀼라의 ‘그림자’로써 활동하는 화자는 현재 상황에서 히어로들에게 만들어줄 이야기를 설정하고 전체적인 상황을 조율하는 거죠. 케이팝 산업에 대입해 보면 프로듀서와 비슷한 역할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물론, 이런 비유가 그렇듯 잘 맞지는 않지만요.

기본적으로는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프로스페로’ 생태계에 의해 초능력을 갖게 된 아이들이 격리된 한반도 안에서 격렬하게 날뛰지만, 결국 글의 중심을 차지하는 건 그 아이들을 자기 이야기의 한 부분으로 만들려고 하는 수많은 이야기꾼들인 것이죠. 빅 배드가 되어 직접적으로 개입하거나, 권력을 가진 위치에 올라서 흐름을 조절하거나, 아니면 말 그대로 바깥 세상에서 편집된 정보들의 빈칸을 채워가며 팬픽을 쓰거나, 결국 그것들은 모두 자기 이야기로 모든 걸 집어삼키기 위한 몸부림인 것이죠. 그 와중에 진실은 의미가 없어진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이 ‘이야기’ 마저도 작중에서는 간접적으로 제시될 뿐입니다. 이야기에 중독된 인물들의 이야기도 그저 한 삽화 정도로 취급하고 넘겨버리는 거죠. 대신 글을 채우는 것은 이 세계에 대한 수많은 정보입니다. 간접적으로도, 직접적으로도 제시되는 수많은 정보들을 차곡차곡 쌓아올려가면서 이 낯설고 혼란스러운 세계의 모습을 조금씩 완성해가는 것이죠. 그리고, 그 세계의 모습은 (비참하지만) 꽤나 매혹적인 편입니다.

그러나 (이 압도적인 정보량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에는 여전히 많은 빈칸이 남아 있는 편입니다. 그곳들을 자기 생각대로 채우는 것도 흥미로운 감상법이 될 수 있겠네요. 그 결과물이 작가가 생각한 것과는 다른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그게 중요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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