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없는 너의 세계는> 감상

대상작품: 저녁이 없는 너의 세계는 (작가: Xx, 작품정보)
리뷰어: 소나기내린뒤해나, 2시간 전, 조회 7

 

 

인간이 남길 수 있는 ‘흔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물질적인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보이지 않아도 그 울림만큼은 선명한 형태로 발견되는 경우 또한 더러 있습니다.

 

이번에 읽은 <저녁이 없는 너의 세계는>에서도 누군가가 남긴 흔적을 발견하게 됩니다. ‘머리카락 보일라’라는 숨바꼭질 놀이에서 흘러나오는 노랫말의 유래를 되짚으며 시작되는 이야기는, ‘영태’라는 이름으로 기억하던 아이의 실종사건을 떠올리는 매개로 작동하며, 화자가 발견하게 되는 기묘한 ‘흔적’들을 포착하는 과정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흔적’으로 변주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이 작품의 기술적인 능력을 엿볼 수 있는 하나의 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이 작품에서 가장 먼저 포착되는 흔적은, 화자가 만든 노랫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숨바꼭질에서 통용되는 ‘치맛자락 보일라’라는 구절이 영태라는 아이와 엮이며 ‘머리카락 보일라’라는 과정으로 변화하게 된 것은, 화자 본인이 의도적으로 만들어 낸 ‘영태’라는 아이의 흔적으로 비춰집니다. 그 노랫말은 주변사람들을 넘어 대중들에게 각인됩니다. 실종되어서 끝내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어느 아이의 상황을 고려하면, 화자는 그 아이의 흔적을 영원히 세상에 남겨준 셈입니다.

 

그 흔적이 있을 리가 없는 누군가의 존재로 나타나는 과정은, 괴담과 비슷한 결을 띠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 영태가 실종되었던 사건은 ‘숨바꼭질에서 노래를 부르면 귀신이 나타난다’는 식의 뒷목이 선득해지는 소문으로 퍼지며, 보이지 않아도 피부로 실감되는 흔적으로나마 그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이 ‘숨바꼭질’이라는 화자에게는 조금 어두운 기억으로 남은 놀이를 통해 엿보게 되는 현상은, 마치 초자연적인 존재와 엮인 심령현상과 같은 오싹함이 느껴지는 편입니다. 하지만 화자에게는 기묘하고 두려운 위화감인 동시에, 언젠가 세상에서 지워졌다고 여겼던 어떤 존재를 더듬어보는 과정으로 비춰지는 것은 독자들에게 적지 않은 여운을 전해줍니다. 술래는 숨어 있다는 것을 가정합니다. 그것은 곧 보이지 않아도 존재한다는 것을 가정하기도 합니다.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 그 자리에 있었다는 존재감조차 마모되었을지도 모르지만, 화자는 그 흔적을 쫓습니다. ‘술래잡기’는 화자에게 흔적을 발굴하기 위한 유아적인 의식일지도 모릅니다.

 

이 과정에서 제목에 명시된 ‘너’의 존재를 떠올려볼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 ‘너’는 평생 찾을 수 없는 무언가일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손을 잡고 눈을 맞출 수 있는 가벼운 인사조차 나눌 수 없이 떨어져 있을지도 모르죠. ‘너의 세계’는 그런 물질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경계를 상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신문 기사에서조차 발견할 수 없게 된, 마치 흔적 자체를 세상에서 거세했다고 여겨졌던 어떤 아이의 흔적은, 화자가 무의식적으로 오려붙였던 ‘머리카락 보일라’라는 노랫말로 그 공백을 채우고 있습니다. 그 노랫말이 앞으로도 같은 놀이에서 같은 음율로 불러질 것을 생각한다면, 화자가 저녁 무렵에 새겨놓은 흔적이야말로, ‘너’를 세상에 남겨놓는 가장 인상적인 방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멋진 이야기 감사합니다. 다음 작품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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