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을 좋아하십니까? 감상

대상작품: 미개 외계 생명체 (작가: 아부, 작품정보)
리뷰어: SNACCC, 1시간 전, 조회 4

결론부터 말해 평양냉면 같은 작품이었다.

본 독자는 SF를 좋아한다. 소프트 SF와 하드 SF를 가리지 않지만, 그래도 하드 SF적 기틀 위에 오락적 서사를 매끈하게 녹여낸 작품을 좋아한다. 굳이 ‘하드’라는 척 보기에도 ‘어렵고’, ‘단단한’ 접두어가 픽션 앞에 붙었으니 이것도 퍽 재밌는 지점이다.

소프트 SF가 미래, 우주선, 레이저 총으로 무장한 환상적인 과학 판타지라면, 하드 SF는 그 미래가 어떻게 성립되었고, 그 우주선은 어떤 원리로 작동하며, 레이저 총은 어떤 메커니즘으로 발사되는지를 탐구한다. 소프트는 ‘무엇’을 보여줄지에, 하드는 그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지에 집중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개 외계 생명체’는 소프트 SF라고 생각하고 읽었다. 순전히 어젯밤(210분 전) 잠들기 직전에 읽은 본 작품에 ‘하드 SF’ 같은 태그가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다.

첫 문단으로 워프 항해가 묘사되었다. 초광속 이동. SF의 꽃이자 세계관을 정당하게 만들 H빔이라 생각한다. 워프 드라이브, 하이퍼 스페이스 엔진, FTL, 충격점 항행 등등…. 이 엄청난 매력의 단어가 제시되는 순간 독자의 시선은 빈곤한 태양계를 단숨에 벗어나 스페이스 오페라를 바라보게 된다. 벌써 설렌다. 20년 전 창세기전3 파트2를 플레이하며 ‘모세스 시스템’에 접속했던 그 두근거림이다.

그 우주에서 케리우스, 렐카, 신루스 등의 생소한 이름들을 마주쳤다. 고작 이름일 뿐인데 언급만으로 ‘어디를 기원으로 하는 발음임?’ 같은 의문을 느꼈다. 낯설게 하기에 성공했다. 케리우스는 함장으로서 어떤 외계 행성계에 진입하고, 채취를 준비한다. 플래닛 크랙이다. 수소 90%, 헬륨 10%…

“어라?”

하필이면 세 번째 문단에서 이 데이터를 마주한 독자는 같은 화면 상단에 여전히 남아 있던 작품의 제목으로 시선을 옮겼다.

‘미개 외계 생명체’.

독자의 동공이 본문으로 다시 내려온다. 수소 90%, 헬륨 10%. 케리우스와 렐카라는 낯선 이름들.

“이거 목성 얘기 아냐? 제목은 인간을 말하는 거겠지?”

독자는 작품을 열고 1분이 되지 않았을 때부터 혼자만의 지적 허영심 배틀을 시작했다. 이게 단순히 맥거핀인지 아닌지를 알아보고 싶어졌다. 그 생각이 스크롤을 내리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음을 고백한다.

주인공의 함선은 항해 도중 원시적인 우주선과 충돌했고, 인도주의적 명목 아래 생존자를 수습했다. 좌우대칭, 이족보행, 탄소 기반의 이중나선 DNA. 이 ‘미개 외계 생명체’는 소름 돋게도 주인공의 종족과 닮아 있었다. 작가는 이를 수렴 진화라는 장치로 정당화했다. 이쯤 되니 제목이 ‘태양계의 인류’를 지칭한다는 확신에 가까운 선입견이 뇌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면 이 작품은 단순히 ‘너무 많은 단서를 시작부터 뿌려 반전의 카타르시스를 자체적으로 봉인한’ 작품에 그쳤을지도 모르지만, 작품의 진가는 그 직후부터 시작되었다.

작중 인물들은 교통사고 피해자를 함선에 태웠지만 일정이 바쁘다. 그들은 ‘규정’을 운운하고 ‘비용’을 계산하며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 머리를 맞댄다. 그들이 최적해를 도출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사고 피해자는 자신의 모성으로부터 아득히 멀어지고 있었다. 함선의 목적지는 케플러 438이다. 글리제 581, 로스 128과 더불어 스페이스 오페라에서 곧잘 다뤄지는 골디락스 존 후보지다. 스페이스 오페라 처돌이인 독자는 이곳이 지구로부터 20광년 떨어졌다는 것을 알았고, 비극이 심화되었다.

주인공들은 이 ‘피해자’를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배려하는 한편, 그들을 지배하는 경제 논리를 벗어나는 선택을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자기 종족보다 월등한 신체 스펙을 보며 50년 간 노동시킨 후 모성으로 돌려보낼 적절한 타협안을 구상하기에 이른다. 끔찍한 일이다. 아니, 주인공 종족에게 50년 짧다고 한다. 독자는 본 작품의 ‘케리우스’도 귀끝이 뾰족하거나 길 거라는 의심을 해볼 수밖에 없었다. ‘장송의 프리렌’을 보면 엘프 녀석들은 인간의 50년을 아주 우습게 안다. 귀쟁이들을 조심하지 않으면 늙어 죽는다.

결국 미개 외계 생명체는 지구인 민준이었고 가스행성은 목성임이 드러났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반전을 허술하게 설계하셨는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그건 작품을 중간쯤 내렸을 때부터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예상된 궤적이었으나 허탈함은 없었고 도리어 즐거웠다. 작품을 수수께끼 맞히기 놀이로 소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는 악당도, 악의도 없으나 피해자만 존재한다.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소프트한 껍데기 아래, 작가는 우주 항해 시대의 하드 SF적 교통사고와 비극을 건조하게 그렸다

독자는 이 작품의 가치가 미스터리 풀이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우주의 유일한 지적 생명체가 아니었어도, 삶의 궤적에 Z축이 추가된들 달라지는 건 없다. 냉엄한 관료주의와 자본의 논리 앞에 개인의 삶과 비극은 한없이 초라해진다.

자극적인 양념은 없고 슴슴하고 덤덤하게 풀어간다. 하지만 씹을 수록 생각할 거리는 넘쳐난다. 그런 작품이라고 느꼈다.

목록
이전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