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을 읽고 처음 떠올린 생각은 ‘400번의 구타’라는 제목이었다. 프랑소와 트뤼포 감독의 영화 Les Quatre Cents Coups의 한국어 제목으로, 나는 어디서 잘못 본 것인지 ‘아이는 400번의 구타를 당해야 어른으로 자라난다’라는 프랑스 격언이 있고 거기서 따온 제목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웃길 정도로 과격했던 제목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구타’라는 단어의 어감이 과격하니, 한국 정서에 맞게 번안하자면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정도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400회에서 1000회로 횟수는 2배 이상 늘어났지만 뉘앙스는 부드러워졌다.
그러나 본래의 뜻과는 다른 유한 의미라는 것을 아는 데도 불구하고 내가 직관적으로 ‘400번의 구타’라는 제목을 떠올린 것은, 이 작품이 관용구의 본래 의미와는 반대로 ‘400번의 구타’라는 문장이 가진 날 선 감각 그대로를 독자의 면전에 들이밀기 때문이다.
작품은 무력한 일상을 살아가는 청년의 현재와 부친으로부터 폭력을 당하는 어린 시절(꼬마)의 잔혹한 성장기를 교차하며 보여준다. 여기에 변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청년에게 찾아온 ‘미래의 자신’이다. 여느 때와 같은 나날 중에 주인공은 의문의 남자에게 습격을 당한다. 그 후 미래의 자신으로부터, 빚을 청산하기 위해 과거의 자신인 청년을 합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냥감으로 팔아넘겼다는 설명을 듣는다.
청년은 전기충격기를 사는 등 나름의 방비를 하지만 미래에서 오는 적들에게는 속수무책이다. 그것은 부당한 폭력이란 점에서 어린 시절 부친으로부터 당했던 폭력과 다르지 않다. 미래의 자신은 과거의 자신을 착취하며, 너 또한 나처럼 될 거라고 암시한다. 가해자가 곧 피해자이고, 피해자가 곧 가해자가 되는 연쇄 속에서 청년 또한 폭력을 학습한다.
작가의 장편 중에서 가장 오락성이 약한 작품이라 부득이하게 주제에 대한 얘기가 길어졌다. 반대로 이전 작품들의 마치 서커스를 보는 듯한 현란한 스토리 전개가 줄어든 대신 테마성이 더 부각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나는 누구나 독서가 어느 경지에 오르게 되면 작품 하나하나의 평가보다 작품들로 그려내는 작가의 궤적을 더 우선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작품은 하나의 작품이자 동시에 이전 작품과 다음 작품을 잇는 교두보로 작동한다. 이 작품 또한 독자로서 작가의 다음 행보에 대해 기대감을 가득 부풀리게 만드는 작품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는 penguin 작가에 대해 관심이 있는 독자가 있다면 이 작품을 작가의 작품 중 가장 마지막에 읽는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