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책님의 이름 없는 싸움을 읽고 공모 브릿G추천

대상작품: 이름 없는 싸움 (작가: , 작품정보)
리뷰어: 녹음익, 18년 10월, 조회 187

이하의 글은 이 이야기를 읽으며 제 나름대로 독해한 바를 정리해본 것입니다.

저는 이 소설의 장점으로 우선 생생한 현실감을 바탕으로 한 강렬한 정서와 섬세하게 정돈된 문체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좋았던 것은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의 주요 인물들은 성적 소수자들입니다. 그러나 결말에 이르기 직전까지 그들의 성적 지향성/정체성은 이야기에 있어 전혀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 듯 보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물들의 성적 지향성/정체성을 전부 이성애/시스젠더로 바꾼다 해도 결말부의 환상과 반전 부분을 제외하면 몇몇 사소한 개연성만이 타격을 입을 뿐 전체적인 이야기 전개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결말부를 접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적 소수자라는 정체성 자체는 이 소설이 다루고자 하는 주제가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반면 이 소설에서 절대로 빼 놓을 수 없는 소재는 폭력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폭력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런 목적이 없는 순수한 폭력이 아니라 갖가지 변명으로 오염된 폭력이 이야기 전체에 걸쳐 빽빽이 들어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폭력의 연쇄로 이루어진 난장판에서 성적 지향성/정체성은 그저 타인을 증오하는 변명거리로서만 존재할 뿐 그 자체로는 아무런 비중도 가지지 못하는 듯 보였습니다.

저는 이 소설이 대단한 이유가 바로 그 부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야만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폭력에 의해 발가벗겨진 인물들은 결국 동일한 정체성으로 화합니다. 압도적인 폭력 앞에서 기존에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차별성은 소거됩니다. 그저 폭력을 가하는 사람과 폭력을 당하는 사람이라는, 고착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정체성만이 남을 뿐입니다.

저는 이러한 맥락에서, 폭력과 증오의 굴레 속에서 결국 중요한 것은 힘의 권력구도일 뿐, 누가 어떤 성적지향성을 가지고 있는가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이 소설이 전달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타인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은 그저 약한 자에게 권력을 행사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습성이 원인이며 거기에 아무리 성적 지향성/정체성에 관한 미사여구를 늘어놓더라도 기만에 불과하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주제의식은 폭력의 주체가 성적 소수자 자신들이었다는 설정을 통해 강화되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이 소설에서 성적 소수자들은 온전히 피해자로만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포비아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당하는 위치에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같은 성적 지향성/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혹은 또 다른 성적 지향성/정체성을 지닌 소수자들에게 다양한 핑계로 폭력을 행사하는 입장에 서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폭력의 굴레 안에서 성적 지향성/정체성이라는 위상은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는 메시지를 한층 더 심화시키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 상대방이 성적 소수자라서 폭력을 가했다는 말은 상대방이 장애인이라서, 내성적이라서, 여성이라서, 흑인이라서, 아시아인이라서, 유태인이라서 폭력을 행사했다는 말만큼이나 공허합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이 다른 이들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꼬리표가 붙었을 뿐 궁극적으로는 모두 동등한 한 명의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메시지가 잘 전달되었기에 결말부의 시작점이라고 볼 수 있는 여동생의 고백이 더욱 극적인 동력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주인공이 결국 자신이 자행했던 폭력의 이면에 놓인 것이 오로지 힘과 권력의 논리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지 궁금합니다.

이 소설을 통해, 폭력으로 가득한 인간 사회의 속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직 읽어보시지 않은 분들께도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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