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라기 보다는 ‘유려流麗’한 미궁의 실타래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언제나 밤인 세계 (작가: 하지은, 작품정보)
리뷰어: 캣닙, 18년 10월, 조회 208

※ 이 리뷰는 작품의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품을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은 유의하십시오.

 

 

이 작품은 호러장르에 올라가 있다. 내용도 호러에 부합한다.

샴쌍둥이들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부모들의 원죄와 그로부터 잉태되었을 모종의 저주가 불길하게 읊조려지는 초반부는 물론, 천사에서 악마로 순식간에 타락해버린 누이 아길라. 그리고 그런 누이의 부모와 세상에 대한 저주에도 불구하고 천사같은 순수를 유지하는 남동생 에녹의 대비는 풀리듯 풀려지지 않는 긴장감을 유지시킨다.

마치 미궁을 안내하는 아리아드네의 실처럼 부드럽고도 팽팽하게.

작가의 개성과 거기서 자아내는 필력이 호러 장르를 이런식으로 그려낼 수도 있구나를 알게 해주는 작품이다. 어린날 에녹과 똑같이 순수하고 선했던 아길라의 모습을 알기에 그 타락이 서글프며 악의 없이 운명의 비극에 휘말린, 기품있는 윌스턴 남작 부부가 받은 저주 역시 그러하다. 순수하고 아름답기에 가장 큰 희생양이 되어버린 에녹, 이후 아길라로 이름이 바뀌는 그의 비극에 가서는 이미 수많은 암시와 복선을 봐 어느정도 예상 했음에도 읽는 사람까지 무저갱의 미궁 속으로 빠져버리는 듯 하다.

헌데 기묘한 점은 아길라-이후 에녹이 되어버리는 누이의 사악한 면모나, 추레하게 일그러져 버리는 윌스턴 부부는 물론, 미궁에 갇혀 정신적으로 무너져 가는 에녹-아길라의 모습마저 기괴하다기 보다는 달짝지근한 맛이 느껴질 정도로 섬세하고도 감미롭게 읽혀내려 간다.  그래서 왠지 아름답다는 수식어가 계속 떠오른단 점이다.

주인공 아길라와 에녹은 시작부터가 꼬여버린 미궁속 인생이다. 나중에 등장하는 진짜 미궁은 앨리스의 토끼굴이 가지는 상징성 마냥 단발적인 세트나 소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아길라-에녹이 새기는 저주의 문자가 소용돌이 미궁의 형태이듯 육체와 영혼이 꼬여버린 두 쌍생아 역시 토끼굴로 상징되는 이상한 나라에서 헤메이듯, 서로가 서로에게 필연의 비극을 주고 회전하며 길을 헤메게 만드는 미궁의 세상을 자아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항상 모종의 아름다움이 존재한다.

에녹과 똑같이 천사의 아름다움을 지녔던 아길라는 악의에 빠진 이후 악마같은 사악함이 추하다기 보다는 동생과는 다른 반전매력을 선사한다. 그리고 거기에 끌려가는 에녹의 순수함은 처연함이 가미되어 그 아름다움이 발전해버린다. 이부분은 모리세이 교수의 증언(…)을 통해 확증된다. 원래의 에녹은 슬픔이 내제된 선한 아름다움이, 아길라가 차지한 에녹의 모습은 악마적인 아름다움이 깃들었다고.

탐미耽美는 누구나 도전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결과를 원하는데로 끌어내기는 쉽지 않을 터인데 이 작품은 그걸 해낸다. 때문에 어둠이 도사린 미궁의 공포를 테마로 그려내면서도 정작 이야기 자체는 미궁 속을 안내해주는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처럼 유려하기 그지 없다.

아길라-에녹의 말마따나 괴물은 미궁에 가둬야 한단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의 실타래는 어둠이 들어찬 미궁의 중심에 누구를 가둘 것이며 누구를 내보낼 것인가? 혹은 미노타우루스 신화와는 또다른 결말로 독자를 안내해줄 것인가.

비록 모든 이야기에는 끝이 있다지만 이 탐미의 미궁이 좀 더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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