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작품은 사람 고기를 씹어먹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식인이 인간사 최대 금기라는 걸 생각하면 충격적인 도입부고, 이후에 사람 고기를 씹어먹는 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묘사되는 건 더 충격적이죠. 솔직히 하나도 충격을 받진 않았네요. 굉장히 익숙한 충격이라서 그런가 봅니다. 요즘은 창작물에서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일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닌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인육을 먹는 것이 취향 정도로 넘어가는 이 작품의 미래상과 지금의 현실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요즘은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취향을 충족시키는 작품이 굉장히 많으니까요. 사실 저도 자주 쓰고요.
이야기가 샜네요. SF작품으로써 이 글은 굉장히 현실과 가깝고 실현이 가능할 것이 100% 확실한 과학 기술과, 그로 인해 촉발될 미래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정말 가까워서 어쩌면 작품에서 제시된 2029년에 찾아올 수도 있는 그런 미래요. 그 시점에서 이 작품이 어떻게 읽혀질지 상당히 궁금하긴 합니다만, 그건 미래의 비평가들에게 넘겨주고 현재 시점에서 이 글을 보죠.
핵심 소재는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딱히 디스토피아도 아닌데 식인을 하는 미래. 기술의 윤리적인 고민 끝에 도달하는 등장인물들의 결론…… 제가 흥미롭게 느끼지 못하는 건 그저 굉장히 가까운 얘기라 그런 것 같아요. 식인도, 배양육 기술도 말이에요. 따로 놓고 보면 충분히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 해결 방법에서 꽤 어색한 방법을 취하고 있습니다. 다른 소재들이 현실과 밀접하며 가까운 기술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면 굉장히 그러하다고 여겨지는데, 굳이 인간의 지능을 가진 천재 앵무새를 등장시켜야만 가능한 서사였을까요? 그리고 또한 그 천재 앵무새의 등장이 또 다른 과학 기술의 발전이 아닌, 진짜로 우연히 발견된 천재적 지능을 가진 개체로 설명될 필요가 있었을까요? 굳이 주인공을 생물심리학 석사 학위 보유자로 설정했으면 더 나은 방법이 있었을 것 같고, 그래야 마땅할 것 같은데요.
동물에게 허락을 받아서 배양육을 공급한다는 발상 자체는 굉장히 참신하고 윤리적 담론이 필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만, 저는 이 소설이 그 지점까지 접근한 다음 굳이 이제껏 현실에 등장한 적 없었던 천재 앵무새를 등장시킨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소재가 굉장히 가까운 현실이라는 점에서 특히 그러네요. 물론 소설에 천재 앵무새가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뭔가 잘 맞물리지 않는 느낌……. 수화에 능한 침팬지를 소재로 했다면 좀 달랐을까요?
하지만 작가님이 그냥 새를 좋아하시는 것 같으니 모든 게 납득되기도 하네요. 결국 취향의 문제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