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의 교실>을 읽으며 먼저 떠오른 것은 위기가 닥친 한국교육의 실태가 아니라 영화 <시네마 천국>이었다. <시네마 천국>은 영화 매니아로 출신으로 성공한 영화감독이 된, 덕업일치를 이룬 한 사람의 일생을 다루고 있다. 구체적 형태는 다를지 몰라도 덕업일치를 이룬 한 사람의 인생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두 작품을 맥은 같이 한다. 유명 영화감독이 된 주인공 토토가 다시 고향을 찾은 것도 <여왕의 교실>의 김일두씨처럼 30년만이었다. 또한 그들은 3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가슴 속 깊이 젊은 시절 스쳐 지나간 인연에 대한 온기를 간직하고 있었다.
<시네마 천국>에서 토토의 친구이자 아버지, 정신적 지주였던 알프레도는 청년이 된 토토가 엘레나에 대한 사랑으로 고민하자 그에게 공주와 병사 이야기를 들려준다. 공주를 사랑하게 된 병사가 100일간 창가 앞에서 기다린다면 사랑을 받아주겠다는 공주의 말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99일간 그 자리를 지키다가 마지막 100일이 되기 전, 그 자리를 떠나간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의미를 묻는 토토에게 알프레도는 명확한 답을 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자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공주의 마음을 되돌려 놓을 수는 없다는 것을 병사가 깨달은 것이라는 해석, 병사는 99일째까지 자신의 진정성을 다 표현한 것이며, 선택의 날인 100일째에는 선택에 대한 공주의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해 떠난 것이라는 해석 등이다. 병사가 떠나간 이유는 무엇때문이었을까? 그리고 이 이야기에 대한 알프레도의 해석은 무엇이었을까?
또한 궁금해졌다. 공주와 병사 이야기를 이일두씨가 듣게 된다면 그는 어떤 해석을 내릴까? 그 기나긴 세월 동안 이일두씨의 열정을 불타오르게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 삶 속의 여왕 영숙이에게 바치는 노래를 부를수 있게 될 그 날만을 기다리며, 1년, 2년, 그리고 29년, 30년 영어 발음을 다듬고 기타를 연습하며 희망과 환상을 키워오지 않았을까? 그 지난한 세월에도 그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던 건 그 날 그 교실에서 여왕과 나누었던 몇 마디 대화때문이었을 것이다.
30여년이 흘러 김일두씨는 보헤미안 랩소디의 가사처럼 기회를 잡고 그만의 진실을 세상에 펼쳐놓을 수 있게 되었다.
Too late, my time has come. (너무 늦었지만, 내 시간이 왔다.)
Gotta leave you all behind and face the truth. (이제 모든 것을 뒤로하고 진실을 마주하러 가야해.)
<여왕의 교실>은 짧은 글임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반전을 곁들인 감동이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감동을 방해한 건 약간은 현실적인 제약때문이었다. <Bohemian Rhapsody>는 아카펠라, 발라드, 오페라, 하드록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이색적인 구성과 독창적인 스타일로 널리 알려진 전설적 명곡이다. 때문에 원작자인 퀸도 라이브에서는 아카펠라 부분은 스킵하고 오페라 부분에서는 무대 뒤로 멤버들이 아예 퇴장한 채 CD를 틀어 연주를 대체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오페라 파트는 합창단이나 중창단을 동원한게 아니라 180여번에 걸친 오버더빙으로 멤버들이 직접 스튜디오에서 한땀 한땀 만든 것이니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아무리 30여년을 이 한곡만을 수련해왔다고 해도 혼자서 아카펠라와 하드록을, 그것도 브라이언 메이의 기타 솔로를 포함한 악기를 통기타 반주 하나만으로 소화한다는 것이 환상에서 현실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곡의 가사 처럼 Is this the real life? Is this just fantasy?)
하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김일두씨의 선곡은 현실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유효한 것이다. 자유인의 광시곡이라는 곡명에 걸맞게 그의 선곡은 그에게는 물론 독자들에게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임을 믿는다. 여왕의 기대에 충족해야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30여년을 기다려온 기회인데… Why not?
Any way the wind blows. (바람이 어느 쪽으로 불어오든)
Nothing really matters to me. (내게 아무런 문제도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