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작가가 독자의 세상을 끝내는 방법 공모 브릿G추천

대상작품: 세상은 이렇게 끝난다 (작가: 이산화, 작품정보)
리뷰어: 최광훈, 18년 9월, 조회 296

» 폭발은 브릿G 하단의 작은 작품란에서 일어났다. 작은 폭발은 아니었다. 트위터 건너편에서 한가로운 덕질과 고양이들을 감상하던 내 타임라인에도 요란한 리트윗 소리가 들릴 정도였으니까. 후딱 원고를 해치우고서 트잉여짓을 하던 트친들 얘기론 백합과 캐해석이 크게 치솟고 감탄이 사방으로 돌아다녔다지만, 직접 작품을 본 게 아니니 어디까지가 과장이고 또 어디까지가 리얼 목격담인지 알 길이 없었다. 다만 탐라를 올리며 텔러와 오펜하이머 썰을 보며 그 파괴력을 추측해볼 수 있을 뿐이었다. 원래 트위터에서 이산화 작가님을 팔로잉했지만, 지난 〔오류를 발견했습니다〕를 손에 넣은 뒤로는 혹시 원치않은 스포일러라도 당할까 하고 뮤트한 걸 깜박 잊은 상태였고, 그래서 나오자마자 읽는 기쁨은 불행스럽게도 누리지 못했다.

이 작품 또한 놀라울 정도로 금방 읽혔다. 사실 ‘읽혔다’고 말하기도 좀 애매했다. 피어오르는 떡밥 주변에 모여든 독자들로부터 좀 떨어져서 근처를 서성이고 있다가, 뒤늦게 달려온 내가 헐레벌떡 감상에 참여하고 난 후에도 작가님은 열심히 소통하고 있었으니까. 단순히 읽는다는 행위 너머로 작품을 주제로 대화하는 작가님의 태연한 트윗이 웅성거리는 탐라 속에서도 또렷이 보였다.

“저도 그 코지 미스터리로 기획하고 쓰긴 했는데요, 탐라에 오펜텔러를 던지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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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발붙이고 사는 이라면 누구나 학창 시절에 대한 추억쯤은 몇 가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기왕이면 그런 지난날이 미국 드라마처럼 프롬 파티와 치어리더 퀸 같은 단어나 일본 만화처럼 다양한 학교 축제와 어딘가 엘리트적인 학생회같은 낱말로 표현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이미 우리는 입시경쟁, 내신, 수능, 스승이라기보단 선생이라고 불러야 할 님들, 학생들간의 기묘한 대치와 공감 이런 키워드 속에 파묻혀있다.

우리의 고등학교 생활은 웅크리고 억눌리고 짓밟혀있으며 꽉 막히고 숨을 헐떡여야 하는 감정과 기억이 항상 함께했다. 그랬던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했을까? 그걸 이 작품, 「세상은 이렇게 끝난다」(이하 세이끝)는 답하고 있다. 폭발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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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은 어떻게 일어날까? 다같이 SKY반에 들어간 것처럼 배운 내용을 상기해보자. 일단 뭔가 화학작용이 일어나야 하고, 그게 엄청나게 부피를 불려야 한다. 보통은 연소로 시작하는데, 연소의 3요소는 연료, 열, 산소가 되겠다. 연료는 작가와 독자를 포함한 한국인들이 지난 세월동안 끊임없이 모아왔다. 작중에도 열심히 흩뜨려놓는다. 기도 모임이 있는 미션 스쿨, 부정행위를 했음에도 얼렁뚱땅 넘어가는 행태, 입시에 관련된 것만 강조하는 풍조, 슬쩍 창조과학을 수업에 넣는 화학선생. 이 모든 것은 우리의 학창시절 곳곳에 화약고처럼 잠들어있었으나 어떻게든 나아간 사회생활로 인해 푹 젖어버렸다. 그러나 세이끝을 읽으며 깨닫는다. 그렇게 푹 적셔버린 세월의 피 땀 눈물은 물이라기보다는 석유나 알코올이라는 것을. 학교를 나와서도 변하지 않는 세상은 이렇게 끝나지 않는구나 하는 교훈을 내던져주었다. 울분은 타지도 못하고 쌓여만 왔다.

작중 화자인 오펜하이머는 냉소적이다. 학교의 모든 걸 비꼰다. 선생님을 비꼬고 학생들을 비꼰다. 그럼에도 우리가 오펜하이머에게 불편함이나 불쾌함을 느끼지 않는 이유는, 실제로 그 모든 것이 꼬여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보고 바르게 표현하는 학생은 논구술에 최고점을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오펜하이머는 이어폰이다. 어딘가에 꽂히면 그걸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런 오펜하이머가 학교라는 주머니에 3년 가까이 들어가있으면, 주머니의 요정이 엉키게 만들어버린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아주 잘 알고 있다. 꼬이고 엉킨 게 계속되면 매듭이 된다. 고등학교 생활을 매듭지으며 오펜하이머는 자기를 한칼에 풀어줄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차가운 시선이 기본으로 깔려 있기에 그 위에서 차츰 불어나는 열기가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텔러다. 에드워드 텔러이자 스토리텔러다. 본인의 이야기를 가지고 본인의 행동으로 본인의 결과를 결정짓는 텔러. 큰 불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작된다. 학교에서 가장 인적이 드문 곳, 타기 좋은 마른 종이뭉치가 쌓여있고, 화재가 확산하기 좋게 먼지가 흩날리는 곳, 관리되지 않은 목재 가구가 듬성듬성하지만 빈 곳 없이 들어찬 곳. 큰 불은 누구나 알지만 지나치는 것들에서 시작한다. 모두가 배웠으나 궁금해하지도 이상해하지도 않는 나트륨 폭발, 임시조치만 취하고 동기도 원인도 알려고 하지 않는 사고, 학생을 사람이 아니라 점수로 파악하는 편의. 모래 상자도 소화기도 모양새는 있지만 아무도 손에 들지 않는다. 그 뒤에서 텔러는 조용히 세상을 불태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학교는 숨을 막히게 한다. 생각을 멈추게 한다. 그러나 그 속에서 오펜하이머가 끝을 붙잡고 나아가게 하는 힘은 지식에서 나온다. 학교가 점수로 학생을 분류할 때 오펜하이머는 과학자로 학생을 분류한다. 학교가 입시를 근거로 사고를 무마할 때 오펜하이머는 화학을 근거로 사고를 파헤친다. 학교가 시험으로 선택지를 제시할 때 오펜하이머는 역사로 선택지를 걸러낸다. 지식은 산소다. 숨을 쉬는 목적이다. 숨이 막히는 이유다. 살기 위해 지식을 우겨넣는 곳이 학교이기에 숨이 막히지만 그곳에서 배운 것들로 오펜하이머는 숨을 돌리며 찾아나선다. 그렇게 도달한 장소는 산소로 가득해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지식으로 가득한 도서실이다.

오펜하이머와 텔러가 만난 순간은 이 글에서 가장 뜨거운 열기가 와닿는 때가 아닐까. 무려 천 개의 태양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과학자 오펜하이머가 원자폭탄을 보고 인용했던 구절이다. 오펜하이머는 텔러에 닿아 발갛게 달아오른다. 텔러도 오펜하이머를 만나 웃음을 터뜨린다. 나트륨은 부드럽고 가볍지만 차가운 물에 닿으면 폭발이 시작된다. 차가운 시선을 가졌던 오펜하이머는 부드럽지만 금속인 텔러에 스파크를 일으켰다. 그들 안에 가득한 지식의 산소가 도서실을 넘어 학교를 가득 채운다.

오펜하이머도 텔러도 역사 속의 인물이다. 화자 오펜하이머와 묘사되는 텔러도 작품 속의 인물이다. 하지만 이들의 경험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 확장된다. 팽창한다. 우리가 거닐었던 운동장 한 구석에는 어쩌면 폭발했을지도 모르는 연못가가 있고, 채플을 들었던 강당 어딘가엔 도킨스가 『만들어진 신』을 꺼내놓았을 것이다. ‘세상이 끝났으면 좋겠다.’ 생각 한번 해보지 않은 학생이 어디 있으랴. 작중 등장인물의 성별과 외양 묘사를 자제한 만큼 독자는 그들과 스스로를 쉬이 동일시할 수 있다. 전체를 모아보면 판타지라 할지라도 모든 순간은 수필의 이어붙임이다. 그렇게 우리 안의 화약고를 소설을 통해서나마 소진시켜준다. 세이끝의 화학작용이 우리 내면에 공감의 소용돌이를 팽창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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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끝내는 재료는 입학 홍보지 뒷편에 숨겨져 있었다. 세상을 끝내는 방법은 졸업 앨범 사이에 숨겨져 있었다. 오펜하이머는 세상이 끝나는 순간은 알아도 세상이 끝나는 범위는 모른다. 세상을 끝내는 데 오펜하이머의 동의가 있었으니까. 동시에 세상을 끝내는 건 오펜하이머의 의지가 아니었으니까.

한국 사회는 모두에게 무언가를 끝내야 할 때를 고지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할 때. 대학교를 입학해야 할 때. 취직해서 밥벌이해야할 때. 결혼해야 할 때. 집을 사야할 때. 아이를 낳아야 할 때. 그러나 아무도 우리에게 어떻게 끝내야 할지를 알려주지 않는다. 얼마나 좋은 고등학교를 나와 대학을 가야 성공한 인생인지. 돈이 없어도, 사랑하는 사람이 동성이어도, 비정규직이어도, 기혼 여성직원에게 불이익을 주는 회사에 다녀도 왜 이 때 결혼해야 한다고 하는지. 나는 오늘의 내 세상이 어떻게 끝나는지 항상 알고싶었지만 언제나 실패했다.

‘세상은 이렇게 끝난다’고 알려주는 소설은 더없이 친절했다. 독자들은 제각기 오펜하이머가 되어 같이 세상을 끝내줄 텔러를 찾아헤매고 있을 것이다.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세세한 설정들, 톡톡 튀지만 과하지 않은 등장인물,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분명 있음직한 사건은 작가의 역량의 얼마나 높은 경지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십분 포함되어있음을 밝히고 있는 만큼이나, 독자인 내가 실제 저런 고등학교에서 보낸 경험이 이 단편에 깊이 빠져들어 허우적거리는 사태를 불러일으켰다. 나의 텔러는 어디 있었나, 하고 생각해보니 내가 오펜하이머가 아니라서 없지 않았나 하는 실망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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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끝이 화제가 된 까닭에는 오펜하이머와 텔러의 (로맨스적이든 아니든) 커플링도 한몫 한다. 다만 이 리뷰에서는 이에 대해 크게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등장인물의 외양에 대한 묘사를 이토록 자제하고도 각 인물의 특징과 매력이 이만큼이나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좋은 예라고 말하고 싶다. 무엇보다도, 작가가 다루지 않았기에 온갖 방식으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긴 커플링인만큼 내가 한마디 얹어서 그런 순수한 (동시에 불순한) 감상을 망치고 싶지 않다.

이 리뷰를 읽고 있다면 이미 작품을 감상한 후일테니, 다른 이들의 세이끝에 대한 여러 의견과 감상을 찾아서 읽는 즐거운 한때를 보낼 것도 추천한다. 정말, 이렇게, 많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고등학교 생활을 한 것에 대한 충격과 정말, 이렇게, 많은 다양한 인물해석과 결말에 대한 논평, ‘가장 좋아하는 과학자가 누구인가?’를 필두로 한 별별 과학자 인명의 캐릭터 창조가 생겨나는 모습에 흥미를 동시에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예상외의 인기로 흥분 속에 트위터를 하는 작가님의 그때 그시절도 검색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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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끝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독서가 결코 이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작품이 진행되는 동안 몇몇은 웃었고, 몇몇은 울었으나, 조용한 사람은 없었다.

작가가 작품 조회수에 대한 자랑을 마치고서 리뷰 공모전을 연다고 공지할 때 나는 교과서의 한 구절 『연소의 3요소』 를 떠올렸다. 이공계생은 아무리 졸업을 하고 시간이 지나도 이과적 마인드를 못 버린다. 리뷰 공모전이 시작되자 저 옛날에 공부했던 ‘화학’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독자에게 200코인을 심어주기 위해 이산화는, 그 작가는 에일리언9의 오오타니 유리의 형상을 취하고서, 한 손으로는 고양이와 과학자와 지적설계론자와 에어프라이어 전도사가 모두 올라가 있는 타임라인 아래쪽을 가리키고, 또 다른 손으로는 브릿G를 살짝 내보이며, 소리 없이 이렇게 트윗했다.

“”골드코인 후원 받은거 리뷰공모로 좀 털어야겠다. 피드백 충분히 받지않았냐고요? 충분히가 어딨어요 세상에.“”

그때 나는 아마도, 어떤 식으로든, 공모전에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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