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악한 일상적 디테일로 세필 서사를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문지기와 공주님은 달로 떠납니다. (작가: 납자루, 작품정보)
리뷰어: 늘보나모, 18년 9월, 조회 66

스포일러 있습니다. 아니 실은 죄다 스포일러 밭입니다. 그래도 뒷부분 정보는 감추려고 노력해 봤습니다만…

(본문을 읽으셔야 리뷰가 이해가 되실 듯도 합니다)

이번 “달 큐레이션” 중, 각종 베지터블인 인물들 이름에서부터 호감이 동해 읽게 된 작품입니다. 이름과 걸맞게도 꼭 슈퍼마리오 세계(게임)나 찰리와 유리 엘리베이터(찰리와 초콜릿 공장 후속편)가 생각나는 분위기더군요. 귀엽고 동화적이고 혼종적 (그저 판타지가 아닌, 현대 세계의 디테일이 난립한다는 점에서) 이었죠.

읽으면서 갈수록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유는요.

 

1 (현대의) 일상으로부터 건져낸 디테일들

키퍼나 콜라비 같은 이름들은 물론 우리가 아는 야채 콜라비와 직종 문지기의 영어 단어이죠. 이름 헷갈리는 문제가 없어질뿐더러 친숙합니다. 근데 친숙한 점은 인명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의 지구에는) 작은 공국이 존재한다는 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는 식사를 하고 간다는 사실, 갤럭시와 아이폰 그리고 이를 이용해서 우주선을 조종하는데 “게임을 많이 해 봤기 때문에” 쉽다는 점. 등등…

이 디테일들은 우선 작품의 전개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극단적으로는 쓸데없다고 할 만한 디테일입니다만…

… 우리의 일상에서 건져왔고 공감할 수 있는 성질을 가지고, 그 성질을 발휘하고 있으므로 모두가 살아있고, 그렇기에 작품 전체가 결이 섬세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마치 세심하게 디테일을 살려서 깎은 나무 조각 같았습니다. 보통 그렇게까지 한올한올 안 깎던데 말이죠.

우리의 일상에서 건져 온 디테일을 넘어서, 시간 차원에도 디테일이 있더랬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감동받은 부분은 이 지점입니다.

…작은 버튼을 하나 발견하고 손가락으로 강하게 눌렀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이게 아닌가…”
콜라비 공주가 그렇게 말 하는 동안 덜컹거리며 금속 문이 열렸습니다.
“그 버튼이 맞았나보네요. 나갑시다 키퍼!”

그러니까 문이 잠깐 안 열렸다가 열린 겁니다. 이 역시, 작품의 전개나 개연성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어떤 관점에선 “쓸데없는 디테일이군”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생함을 줍니다.

전개와 상관 있는 디테일도 있습니다.

비밀번호 관련한 전개에서: 와이파이 비번을 입력하면 주인도 쓰지 못한다. 그러나 리셋하면 된다.
“우리는 지금 인류가 달에 보낼때 사용한 컴퓨터보다 몇백배는 더 뛰어난”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걸 이용하면 우주선을 완성할 수 있다.
펀딩.

등등.

전개와 상관 있는 디테일이지만, ‘동화적’ 이기에 허용되는 어떻게 어떻게 끼워맞춰도 잘 돌아가는 전개를 하죠. 즉, 디테일에 힘입어 강력한 개연성을 부여하려는 수가 아닙니다. 우리가 아는 일상적 디테일이 생생함을 더해주는 데에 그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해당 작품에 한올한올 깎인 디테일만 충천했다면 전개는 흐리멍덩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작품의 척추에 해당하는 전개도 있습니다.

 

2 전개: 문제 심기 및 유예된 해결의 엮임들

문제와 해결 구조가 튼튼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야말로 서사에서는 개연성 (그저 동화적 수준인) 이 아니라 구조가 더 중요하다는 증거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사실 제가 전개 파악에는 엄청 쥐약이라서 제대로는 얘기 못하는데요, 그러니 다른 분들께서 리뷰에서건 댓글에서건 보태서 좀 이야기를 해주셨으면 좋겠습…)

문제-해결 쌍은 이 소설에서 하나가 아닙니다. 가령 베지터블 공국의 중요한 대국적 염원은 이 유명하지 않은 나라에 수입이 없다는 것이었죠. 이 문제의 해결로 “달에 사람을 보내자” 가 등장합니다. 달에 사람을 보내려고 고군분투하고 또 달에 가서 고군분투하는 것이 이 작품의 주요 줄거리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그러는 와중에 베지터블 공국에 심어진 문제가 하나 더 생깁니다. ‘해결’에 해당하는 “달에 사람을 보내자” 를 하기 위해서, 가상화폐 문제가 베지터블 공국에 심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가상화폐 문제는 일단 그냥 넘어갑니다. 가상화폐 문제의 ‘해결’ 은 작품이 한참 진행되고 “달에 사람을 보내자” 라는 해결이 대단한 결실을 맺을 때까지, 그러니까 이 문제-해결 쌍이 완료된 이후에야 나옵니다. 큰 건 아닙니다만.

하나 더 들어볼게요. 우주에 나간 베지터블 공국의 우주선은 미국 미사일에 맞아 유명을 달리할 위기에 처합니다. 이 문제는 비밀번호 바꿈으로 해결이 되죠. (미국이 비번을 리셋하면 다시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을거라는 복선을 남기고서…)

‘미사일 문제’ 해결 덕분에 달에 무사히 착륙한 일행. 달에서는 이런저런 일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이제 집에 가야 되니까 우주로 도로 나옵니다.

리셋된 와이파이 문제는 그제서야 등장합니다. 당연한 등장이지만 유예된 등장이죠.

 

요는, 한번 심어진 문제-해결은 또다른 문제로 이어지는데, 그 문제의 등장이 유예되기까지 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복선을 잘 심는다” 와는 약간 다른 것 같습니다. 전개의 구조니까요. (흠 정리가 어렵군요…)

비슷한 유예를 하나 더 꼽자면 화성의 문X입니다. 달탐사의 성공 그리고 달에서 발견한 XXXX와 연결되죠.

 

3 중요한 정보를 놀랍게 (의외이도록) 보여주기

미국: 달에는 비밀이 있으니까 저 우주선을 쏘아버려야 한다.
사실 우주에서는 예산 문제로 다들 (미국까지) 와이파이를 쓴다.
“나는 녹XXX의 X이라고!”

등등.

이런저런 작중에서 밝혀지는, 의외라서 놀랍게 환기되는 비밀들은, 동시에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비밀들입니다. 눈 앞에 갑자기 들이밀어진 폭로된 정보들은 모두가 앞으로의 전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정보들인 거죠. 그렇기에 작품이 구조적으로 잘 짜여졌다고 보여집니다.

 

 

부족한 깜냥에 읽으며 받은 감동을 리뷰로 풀어놓아 보았습니다만, 씁 어째 정리가 잘 안 되네요. 그래도 감동이 희석되진 않는군요. 그건 그렇고 마지막으로 감동을 하나 더 받았는데, 작품 설명에 앞부분 줄거리를 꽤 상세하게 써두셨더라고요. 보통 그렇게 안 하더라는데 말이죠. 이거야말로 (예상)독자를 배려하는 처사 아닙니까. 왜냐하면 뭔가 읽어보기 전에는 줄거리 요약을 한번 보고 싶곤 하거든요.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리뷰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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